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저출산의 다층적 구조

농업혁명으로 맬서스의 악령에서 벗어난 인류가 이제는 저출산의 늪에 빠지고 있다. 한때, 인구 폭발로 식량기근, 지구온난화, 전쟁등의 문제를 초래했지만, 이제는 인구부족이 인류의 미래에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남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어, 이제는 선진국병이 아니라 인류전체의 병이 되어가고 있는 저출산의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일까?


1) 저출산의 문제는 무엇인가?

저출산은 국가의 번영에 걸림돌이 된다. 국가 경제성장률이 국민들의 행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국가 경제성장률의 성장은 번영을 의미한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기업은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더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국가는 이전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고 국민들에게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를 제공할 수 있다. 이처럼, 높은 경제성장률은 국민들이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저출산 국가에서는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경고등이 커진다.


저출산 국가는 대부분의 정부예산을 노령인구 복지예산으로 지출해야 한다. 노년층은 생산성이 낮아지면서 현업에서 은퇴하고, 복지의 수혜자가 된다. 생산성이 높은 20대에서 40대의 인구가 노령인구보다 많은 구조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노령인구가 노동인구보다 많을경우 국가가 거둬들이는 세수가 충분치않다. 국가는 경제 발전을 위해 세금을 생산적인 분야에 사용해야 한다. 도로 항만 인터넷 전기등 국가 기반산업 뿐만 아니라 교육 대학 연구등의 분야에도 충분히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 처럼 세수는 줄어드는데 반해 노령인구에 대한 지출은 불가피해, 국가 재정은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진다. 뿐만 아니라, 노령인구의 낮은 생산성은 국가경쟁력에 심대한 타격을 준다. 안타깝게도 시간은 인간의 신체적 능력뿐 아니라 인지 능력도 약화시킨다. 늙은 인간의 몸은 예전과 같은 생산성을 달성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데, 노령인구는 기술을 익히고 생산성으로 전환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2) 그렇다면 저출산의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이 저출산의 원인으로 꼽힌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사회적 지위의 하락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거의 10개월간의 임신기간을 거치고 짧게는 4개월 길게는 2년 동안의 긴 회복기간과 아기를 케어하는 기간은 여성들의 커리어에 큰 타격을 준다. 남성 동료가 경력을 이어가는 동안 자신의 커리어가 정체되는 것을 체감하며, 여성은 출산을 부담으로 느낄 수 있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교육적 수준도 낮고 직장에서의 위치도 낮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기를 선택하기 위해 자신을 버려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위에 서있다.


둘째, 산업의 변화로 인해 아이는 생산재에서 소비재 특히 럭셔리 상품으로 바뀌었다. 농업중심 사회에서는 아이는 노동력이었다. 소규모 농업에서는 한명한명의 노동력이 필수적이었고 아이는 커가면서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하지만, 농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바뀐 지금 아이는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떠한 재화도 생산하지 못한다. 오히려 부모들은 아이를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매개로 사용한다. 따라서, 이들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노력과 자본을 쏟아붓는다. 이는 가족이 2명의 아이를 갖는 것 조차 버거워하게 한다. 따라서, 1명 혹은 아이를 가지지 않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다.


3) “커플의 위기”

위의 이유들은 선진국에서의 저출산 현상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는 저출산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킹스 칼리지 런던의 앨리스 에반스는 그녀의 책에서 “커플의 위기”를 말한다. 그녀에게 저출산은 여성의 지위향상이나 가족 내에서 아이의 지위변화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커플들의 흔들리는 관계 또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의 발달은 삶을 즐기기 위해 이성과의 intimacy를 필수적 조건 아래로 끌어내렸다. 예전에는 이성과 식사하고 여가를 같이 즐기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방에 자신을 맞추고 상대방이 주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그 모든 고난의 끝에는 이성과의 달콤한 관계가 기다린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티비가 아무런 어려움없이 즐거움에 도달하게 해준다. 나가서 돈을 쓰거나 눈치 볼 필요없이 클릭 한번에 내가 원하는 세상이 펼쳐진다. 이성과의 친밀감을 쌓고 얻는 행복은 다이어트를 통해 fit한 몸을 얻는 즐거움이라면, 스마트폰과 스마트 티비는 마약과 비슷하다. 짧은 순간에 어떠한 고통도 없이 얻는 즐거움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이는 친밀감을 쌓고 행복을 느끼면서 얻는 믿음을 삭제한다. 믿음이 있어야 아기를 낳고 모든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을 얻는 과정이 삭제되면서 같이 파괴된 믿음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용기 또한 파괴한 것이다.


틴더와 같은 인터넷 매칭사이트도 믿음의 파괴에 한몫한다. 예전에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나를 바뀌는 과정이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만나는 사람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것이라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매칭사이트에서는 손가락만 튕기면 내가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 현대의 연애는 변화와 타협의 과정이 아니라, 클릭 몇 번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소비 행위로 변질되었다.


결국 저출산은 단지 출산율이 낮다는 통계적 현상이 아니라, 인류 문명이 진화하면서 직면한 심층적 변화의 징후다. 더 이상 아이는 생존을 위한 필수 노동력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소비재가 되었고, 여성의 경력과 자아 실현은 더 이상 가족에 종속되지 않으며, 커플 간의 관계는 믿음 위의 헌신보다는 효율과 즉각적 쾌락의 논리로 재편되었다. 이는 단지 출산 장려금이나 보육 정책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인간 관계의 회복, 사회적 신뢰의 재건, 여성과 남성이 함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의 마련, 그리고 아이를 '짐'이 아닌 '미래'로 다시 상상할 수 있는 문화적 전환이 필요한 때다. 저출산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어떤 사회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가? 저출산이라는 거울은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다.


참고 기사: https://www.nytimes.com/2025/05/29/opinion/dating-marriage-children-fertilit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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