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바라보며
가우디 애비뉴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늘의 목적지 산 파우 병원이 나온다. 가우디 건축물들에 비하면 덜 알려져 있지만 가우디의 선생님이자 라이벌이었던 건축가 도메네크 몬타네르의 작품이고, 적극 추천하는 후기들을 보고 온지라 외관에 살짝 실망했다. 건강검진도 싫어하는데 여행 와서 웬 병원을 가야 하는 건지 싶었다. 하필 또 방금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지나쳐 왔기에 ‘괜히 온 건 아닐까’라는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천천히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진 산 파우 병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산 파우 병원은 실제로 바르셀로나의 역사적인 병원이었다. 산 파우 병원에서 태어난 많은 바르셀로나의 시민들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건축가 특유의 색감과 장식이 건축에 투영되기 시작한다. 빈티지하고 부드러운 색감에 디테일한 타일 패턴들까지.. 정말 이게 병원이라고요? 입구에서의 의구심(내가 감히)을 잊은 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훌륭한 공간이었다.
마카롱 먹는 꿈을 꿀 것 같은 병원이다. 치료보다는 치유라는 표현이 더 와 닿았다. 예전에 수술 때문에 3-4일 정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치료에 대한 고통보다는 폐쇄된 공간에서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는 것이 가장 참기 힘들었다. 흔하고 흔하기만 한 매일매일, 보통날이 그렇게 그리울수가 없었다.
병원의 중앙 통로 쪽에는 큰 오렌지 나무가 있다. 흰색에 파란색 로고, 네모난 병원들만 보다가 이렇게 귀여운 장난감 같은 병원을 보니 병원 특유의 긴장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병원은 아픈 곳을 낫게 해주는 고마운 곳임에도 불고 늘 반갑지 않은 곳의 이미지였다.
건물 벽의 대부분의 패턴 모양은 서로 다르지만 대부분 식물을 모티브로 한다. 불행이나 죽음이 아닌 생명, 순환, 탄생의 이미지로 희망을 주는 듯 보였다. 이후에 도메네크 다른 작품인 음악당에서도 비슷한 문양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 문양들이 도메네크의 시그니쳐처럼 건물을 감싸고 있었다. 심지어 산 파우 병원의 창문들은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보이는 방향으로 위치해있다고 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있어야만 하는 환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일까.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바라보며 보통날을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고양이가 아파서 일주일째 종일 아무것도 못한 채 애쓰고 있다. 아무 일도 없던 매일매일의 보통날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아플 때야만 알 수 있는 보통날의 소중함. 나도 지금 산 파우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바라보며 간절히 소망하고 싶다. 제발 보통날로 돌아가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