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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카공족

잉여로운 그러나 절실한

by 응당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날이다. 물론 2주 뒤 다시 돌아올 예정인데도, 왠지 모르게 조바심이 났다. 관광지에서 아주 살짝 떨어져 있는 포블레누 지구를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관광지를 두 블록 정도 벗어나자 바로 건물들이 허름해지기 시작하고, 포블레누 지구에 가까워 올수록 공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성수처럼 공업사와 소소한 카페들이 섞여 있는 동네 같았다.


Espai Joliu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는데 빵! 터졌다. 노트북 금지 그림이 붙어있었다. 바르셀로나에도 우리나라처럼 '카공족'이 많은가 보다. 사람 사는 것 똑같네. 노트북 들고 카페를 자주 가는 나도 살짝 뜨끔 했다.



카페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나만의 '작업하기 좋은 카페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2년을 버티지 못하는 카페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카페들이 사라질 때마다 몇 달을 정착하지 못하고 피난민처럼 여기저기 다른 카페들을 기웃거리곤 했다. 특히나 요즘 유명하다는 (인스타) 카페는 의자도 뭔가 불편하고, 테이블 높이와 의자 높이의 합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다가 결국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짐을 싸서 나와야 했다.


각자의 잉여로운 그러나 절실한 담금질의 시간.

'카공족'이라는 말이 돌면서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할 때 부정적인 시선을 받을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가 보기엔 할 일 없이 잉여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나도 손에 만져지는 결과물을 얻기까지 꽤 몇 년 동안 잉여로운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별 의미 없는 끄적거림이 내면의 담금질의 시간이 되어 준다고 믿는다. 이것이 쌓여가면서 절실했던 내면의 무언가를 끄집어 내준다고 합리화를 해보자. 이곳에서 이런 카공족 금지 스티커를 보니 바르셀로나의 카공족들에게도 응원을 보내고 싶다.


바르셀로나의 카공족 금지!


카페에서 쉬고 나서 바르셀로네타로 걷는 길 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그래도 떠나기 전날이니까, 마치 숙제를 하듯 자전거를 빌려 바르셀로네타 해변으로 달린다. 한 겨울임에도 해변에는 서핑하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바람이 점점 거세져서 자전거를 도저히 탈 수 없는 지경이라 렌트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반납하고 숙소에서 먹을 만한 것들을 장보기로!


겨우 며칠 있었다고 숙소로 돌아오니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반짝반짝한 것들을 잔뜩 보고 돌아와도 결국 내 집이 좋은 것처럼, 어느새 이곳 숙소에도 정이 들었나 보다. 내일 버릴 수 있도록 쓰레기도 분리수거해두었고, 짐도 대충 정리해두었다. 내일은 이제 남부로 떠난다. 훨씬 긴 이동 시간과 비싼 돈을 주고 기차표를 사두었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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