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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이 주는 위로

날씨처럼 따수운 세비야의 사람들

by 응당




세비야로 떠나는 날 아침이다. 숙소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나서 카페로 들어가 빵과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산츠역으로 출발했다. 7-8년 전에 배낭여행을 하면서 기차로 이동하는 시간에 풍경을 보며 알차게 잘 쉬었던 경험이 있어서 그것을 기대하고, 일부러 세비야로 이동하는 수단을 기차 렌페로 선택했다. 심지어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환승도 해야 하고, 값도 꽤 나가는 비 효율적인 루트였다.



‘풍경을 보며 일기를 써야지’하고 기차에 탄 순간! 세상에, 창문이 없는 좌석이었다. 3시간 정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답답하게 끙끙대며 마드리드로 향했다. 심지어 환승을 해야 했기에 마드리드에서 세비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그래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환승한 기차에서 티켓에 적혀있는 내 좌석번호가 열차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직원들에게 문의하면 알아보고 오겠다고 했지만, 당연히 그들은 돌아올 리 없었다. 결국 캐리어에 앉아서 가고 있는데 어느 중년의 여성분 한분이 짜증 섞인 스페인어로 나에게 뭐라고 했는데, 스페인어를 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여기서 있지 말고 나가라는 말이었다. 천천히 내 상황을 설명하려 한 순간, 옆에 있던 어느 분이 그분을 다그치며 나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중 지나가는 직원을 잡고 다시 이야기하니 그제야 임시표를 받아 그 좌석에 앉아서 세비야까지 갈 수 있었다. 기다리는 과정에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앞칸으로 뒷칸으로 다니며 지쳤고, 그 상태로 세비야에 도착했다.


숙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고, 하차 버튼을 눌렀지만 문이 열리지 않는 것. 갑자기 참고 있던 분노가 올라와 주먹으로 문을 두들기자마자 버스에 타고 있던 세비야 로컬 사람들이 모두 버스 기사님에게 화를 내며 문을 열어달라는 시늉을 해주었다. 버스에서 잘 내리고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 사람들의 오지랖과 햇살이 너무 좋아서 마음속의 차오르는 독기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평소에 오지랖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타지에서 이런 오지랖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험난했던 세비야 오는 길과는 대조적으로 숙소는 정말 아늑하고 평온하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진심과 착함이 느껴지는 호스트의 환영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짐을 풀었다. 세비야 사람들의 오지랖이 주는 위로에 세비야의 첫인상이 부정적이지 않아 다행이다. 남부라서 그런 걸까, 날씨처럼 사람들도 꽤 따숩다.


피곤하지만 그래도 저녁 산책을 다녀와야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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