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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되고 축축한 하루의 보상

평온을 찾아서

by 응당




포르투의 숙소는 언덕 아래 큰 돌계단을 내려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그 계단에는 터줏대감 고양이 두 마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이 옆을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영역을 고수하는 터줏대감 냥이들을 보며 우리나라의 길냥이들이 짠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 길냥이 밥 셔틀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이렇게 길에서 평온하게 지내는 길냥이들을 보며 부럽고 분하다. 가방을 뒤져 츄르를 꺼내 길냥이에게 내밀어 본다. 포르투갈에서 일본산 고양이 간식을 든 한국인, 하하. 포르투 지형이 대부분 언덕과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지 지붕 위의 고양이, 계단 위에 고양이, 잔디 위에 고양이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아도 고양이들이 갸우뚱 바라보고 있다.


귀여움을 보여주었으나 통행료를 내라냥!


오전 시간, COMBI COFFEE에서 포르투에서의 첫 커피를 마셨다. 비틀스의 Here Comes The Sun이 흘러나왔다. “으으 좋구나.” 평온한 분위기의 카페였고, 라떼도 꽤 꼬수웠다. 간혹 나처럼 한국인 혼자 온 사람도 보이고, 오전 시간에는 대부분 1명이 와서 조용히 마시고 가는 분위기라 나도 편하게 일정 정리하고 밀린 일기도 쓰며 시간을 보냈다.



KakaoTalk_Photo_2020-01-26-22-32-07.jpeg 평온을 주는 포르투의 카페 콤비 커피.


이날은 비가 와서 최대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와이너리 투어를 가야겠다 싶었고 온라인 예약을 시도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결제가 자꾸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와이너리에 직접 가서 저녁 타임을 예약했다. 비가 점점 심하게 내리기 시작했고, 강한 바람까지 더해져 돌아오는 길이 쉽지 않았다.


돌아가기 위해 동루이스 다리를 건널 때 사건이 발생했다. 걷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너무 강했고 차도와 도보 사이에 보호난간이 없어서 힘겹게 건너고 있는데 무언가 나를 심하게 미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다리를 안전하게 건너야 했기에 급하게 서둘러 걸어왔다. 역시나 다리를 건너고 안전한 장소까지 와서 보니 백팩이 아주 활짝! 열려 있었고 그렇게 나는 포르투의 가장 아름다운 동루이스 다리에서 소소하게 털렸다.


긴장가득 축축한 하루, 숙소로 피신

숙소로 돌아와 온풍기 온도를 높여 젖은 신발과 옷, 가방을 말리고, 에그타르트를 입에 물고 이불속으로 숨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와이너리 투어를 위해 저녁에 다시 그 다리를 건넜다. 살짝 긴장한 채로 뻣뻣하게 다리를 건너 와이너리에 도착했고, 투어가 시작되었다. 투어는 예상했던 대로 가문 자랑, 와이너리 자랑 위주였고 영어 가이드라 잘 못 알아들어도 끄덕끄덕하며 적극적인 K-리액션으로 투어를 마쳤다. 그리고 와인 시음을 하며 파두 공연을 듣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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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 투어에 끼어있는 공연이라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꽤 수준급의 공연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10곡 이상을 들려주었다. 포트와인은 워낙 도수가 높아 제대로 즐기지 못하였으나 파두 공연 자체 만으로 긴장하고 축축했던 하루를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다시 평온한 마음으로 돌려주었던 공연이었다. 물론 다시 돌아갈 때 다리를 건너야 해서 다시 경계모드로 돌아갔으나 별일 없이 숙소로 잘 복귀했다. 다행이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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