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출국
출국날이 왔다.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무덤덤해진 것은 일상을 벗어나는 일에 신나지도 않고, 실감도 나지 않게 된 것인데, 출국날 역시 그랬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로망이다, 꿈같다, 했던 여행인데 말이다. 3주간의 살림살이를 채운 캐리어를 차에 싣고 인천공항에 가고 있는데도 내 기분은 마치 제주도로 떠나는 가벼운 들뜸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머릿속의 계획들을 척척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했기 때문에 평소 같은 기분을 유지했던 것 같다.
항공사에 가서 체크인을 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다. 동행자가 갖고 있던 기프티콘으로 커피를 받아 우아하게 면세점을 지나갔다. 3월의 어느 평일이었다. 직장이었다면 새로 들어온 신입 사원들 신경 쓰느라, 올해 새롭게 시행해야 할 업무를 진행하느라 회의에 치였을 하루였을텐데. 그런 일상을 벗어나, 비싼(그것도 기프티콘으로 받아 공짜로 먹게 된) 프랜차이즈의 커피를 들고 공항 면세점에 있다니. 이 순간만으로도 꿈꾸는 것 같았다.
외국항공사를 이용해서 그런지 탑승구가 멀었다. 덕분에 셔틀 트레인도 처음으로 타보게 되었는데, 그제야 멀리 떠나는구나 싶었고, 탑승할 비행기의 외국인 승무원을 보니 또 그제야 해외여행을 실감했다. 탑승한 승무원의 50%는 한국인이었지만, 나머지 50%의 서양인 승무원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촌티 나는 줄 알고 억지로 눈길을 끊으려 했지만, 어쩌랴. 일생을 한국에서만 살아서 외국인을 별로 접해보지 못했던 것을.
헬싱키를 경유해서 가는 항공편이었으므로 비행시간은 총 16시간이었다. 최소 16시간은 연락이 안 될 가족들에게 잘 다녀오겠다, 도착해서 연락하겠다,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비행기 모드로 전환했다. 이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이 여행하게 된 동행자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의 동행자는 고민할 것도 없는 친구 A였다. 알고 지낸지는 15년이 넘었지만, 둘이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가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는 같이 다녔지만, 그 후로는 시간 날 때 겨우(많이 보면 분기별로 1번) 만나 서로 살아왔던 얘기, 공통의 관심사로 그간 못했던 이야기를 실컷 떠들었다. 서로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우리는 매일 수다만 떠느라, 추억이라고 할 만한 이벤트가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게 여행 적금이었다. 같이 여행 갈 목적으로 적금을 들었다. 서로 유럽 여행의 동행을 꿈꾼 것이다. 적금 만기가 됐고, 퇴사 시기가 맞았다. 시간, 금전, 같은 목적을 가진 동행자까지 갖추었으니 '이건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우리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함께 하기로 했다.
동행자는 가까운 해외에 자유 여행을 다닌 경험이 있었지만, 나는 첫 해외 자유 여행이었다. 후에 이 사실은 우리의 여행에 제법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됐는데, 여행을 계획하고 출발할 당시에 이 사실은 단지 나 혼자 느낀 약간의 불안함 정도였다. 그랬기 때문에 처음 떠나는 유럽에 설레는 감정을 공유하면서도, 간단한 출국 수속조차도 헤매는 나를 도와주는 동행자에게 좀 더 의지하게 됐다. 평소 뭐든 혼자 해내는 성향이라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사실이 어색했지만, 낯선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어색함도 금방 무산시켰다. 그렇게 나는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 스페인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탑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