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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직한캐치업 Sep 19. 2016

여행이면 되는걸까?

#2. 목적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 날짜와 코스까지 정해놓고는 여행 목적에 대해 뜬금없지만 진지하게 생각했다.

생각되어야만 됐던 것 같다. 

이렇게까지 여행을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도 떠날만한 가치가 있어야 했다. 남들이 보기에, 내가 느끼기에도 번듯한 직장이었고, 이직 후에 이만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거란 자신이 없었으니까. 오랫동안 진지하게 사직을 고민할 정도로 내겐 안 맞는 직장이었으나, 그 직장 덕분에 나는 한 달의 한 번이라도 숨통 틔고 살았기 때문에.


'여행 목적'

그저 꿈을 꾸는 듯한 이미지로 품고 있던 내 오랜 로망에 목적은 아무래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게 '유럽여행'은 연초마다 세우는 '운동하기'나 '저축하기'보다 더 실천하기 힘들지만 끝을 보고 싶은 새해 목표 같은 항목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설고 먼 나라에서 내가 모르던 자아 찾기?

대개 유명한 여행 에세이 작가들은 여행에서 삶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얻어오던데.. 일상에 너무 지쳐서인지, 나를 잘 안다고 자만해서인지, 그곳에 간다 해도 나를 발견하거나 성찰해오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가볍게 관광을 목적으로 삼는 건 이미 틀린 것 같았다. 너무 많은 사진들을 봐온 탓에 사진에서 봤던 풍경을 내 눈으로 본다 해도 놀라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먹방이라고 표현하는 식도락 여행은 내 취향과 맞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숙소에 치르는 비용보다 관광지 입장료로 내는 돈을 알차게 썼다고 생각하는 게 나의 여행 스타일이니까.


답이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끝내 답을 하고 싶어, 도돌이표를 몇 번을 돌아 목표를 두 가지나 찾아냈다.


SNS에 잔뜩 올리게 사진 많이 찍어 오기.

즐겨보던 SNS가 결국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이 찍은 것만큼 찬란하게, 하지만 나만의 알찬 스토리를 담은 차별화된 #감성 사진을 한 장, 한 장 올려가며 나의 여행기를 재잘재잘 떠들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먹고, 느끼기.

하나를 보더라도 온전하게 느끼고 싶었다. 예를 들어, 에펠탑을 보러 왔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에펠탑의 모습들, 에펠탑 주변의 햇살과 바람의 온도도 느껴보고, 나처럼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 모습, 에펠탑 앞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 혹은 싸우는 연인들의 모습들을 모두 아우른 에펠탑을 보고 싶었다.


 어려운 목표였다. 정하면서도 알았다.

나 홀로 가는 여행도 아닌데, 한 장소에서 꽤 긴 시간과 감성을 투자해야하는 여행이라니.


실천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고 생각하면서도 위의 두 가지를 목표로 설정한 이유는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런 목표는 다시 세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려고 회사도 그만 뒀으니, 이렇게 꿈 같은 계획정도는 세워줘야 참된 자유를 찾는 기분이 들지 않겠는가. 현실적인 표현으로 바꿔 말하면, 사직에 대한 두려움을 보상받고 싶었던 것 같다. 여행 후 새롭게 시작해야 될 막막한 미래가 걱정되니까. 그 울적함을 여행의 추억으로 달래야하니, 여행의 모든 순간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담아오고 싶었던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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