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화내지 않기로 작정했다
나는 아이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아이가 21개월이던 날이었다.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데, 아이가 호기심을 가지며 기기를 만지작거렸다. "만지지 마. 저쪽에서 놀아."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결국 아이는 전원을 꺼버렸다. 파일을 복원하면 될 일이었지만, '내 말을 무시하네'라는 생각이 먼저 치고 올라왔다.
"만지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
순간 고함이 터졌고, 겁에 질려 우는 아이를 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날 이후 다시는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단호하게 훈육하는 일은 있었지만, 고함을 치는 일은 한동안 없었다.
그리고, 아이가 만 5세일 때쯤 두 번째 일이 터졌다. 먹다 남은 과자 봉지를 버리라고 했지만, 아이는 장난감 놀이에만 몰두했다. 몇 번을 말해도 쓰레기를 식탁에 올려놓고, 씩 웃으며 바닥에 던졌다. 단호하게 한 번 더 말하자 아이는 안방으로 도망가 침대에 누웠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빨리 버려!!"라고 고함을 질렀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나는 "왜 울어! 네가 잘못했잖아!!"라고 더 소리쳤다. 한참 후 진정은 되었지만, 아이는 계속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얘가 잘못한 건데'라는 생각이 뒤엉켰다.
그때 상담실에서 만난 부모와 자녀들의 얼굴이 스쳤다. 그들 앞에서는 분노 조절을 말하면서 정작 내 아이 앞에서는 이를 지키지 못하는 나를 마주했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잘못된 방식으로 화낸 걸 사과하고, 아이의 잘못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했다. 다행히 우리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그날 밤,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다시는 아이에게 그런 식으로 화내지 않겠다고.
상담실에서 나는 부모들에게 종종 '자신만의 분노 제어 장치'를 만들라고 제안한다. 이는 아이 앞에서 화를 폭발시키지 않게 붙잡아 주는 자신만의 강력한 이유다. 나 역시 그런 장치를 마음속에 설치했다.
1. '방구석 여포'는 절대 되기 싫다
아이에게 터뜨린 화는 전형적인 '전치(displacement)'였다. 밖에서 참은 화를 집에서, 그것도 연약한 아이 앞에서 터뜨리는 모습, 스스로가 봐도 초라했다. 이런 사람만큼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2. '상담사로서의 나'와 '부모로서의 나'의 모순이 싫다
상담실에서는 분노 조절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내 아이에게는 지키지 못한 모습이 부끄러웠다. 내가 전하는 말을 나도 실천해야 상담실에서 만나는 부모와 자녀들 앞에서 떳떳할 것 같았다.
3. 우는 아이가 너무 가엽다
내 고함 소리에 겁에 질려 우는 아이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니, 어린 시절 부모님께 억울하게 혼나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울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그런 기억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에 이 세 가지 '분노 제어 장치'를 만든 뒤로, 아이에게 격하게 화내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화는 안 내면 더 안 내게 된다. 생각, 감정, 행동, 몸은 서로 연결된다. '화내지 말자'는 '생각'이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몸'의 긴장을 풀고, 말과 행동도 차분해지게 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나는 화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이 생기고, '앞으로도 이렇게 하자'는 생각이 강화된다. 선순환이다.
첫째, 아이에게 화내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해서 화가 사라진 건 아니다. 아이의 말대꾸나 말썽에 당연히 화는 난다. 다만, 고함치며 화내지는 않을 뿐이다. 화라는 감정을 건강하게 전달하는 방법은 충분히 있다.
둘째, 어떤 부모는 화를 안 내면 훈육이 안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 반대다. 감정을 절제하면 부모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더 선명해져 훈육의 효과가 커진다.
이 두 가지를 이해하고 실천하면서 나와 아이의 관계는 더 안정되었다. 그렇게 아이도 나도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