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열 번 안에 말을 듣는 아이

아이를 움직이는 건 분노가 아닌 숫자다

by DK

나의 흑역사


아이가 30개월쯤 되자 집은 장난감 천국이 되었다. 그러면서 장난감을 정돈할 일도 잦아졌다. 몇 번 좋게 말해도 안 들으면 훈육을 가장한 비수의 말을 쏟기도 했다. "내일 아침 이 장난감들 밟고 '아야'한다. 그럼 병원에서 이만한 주사 맞아야 해. 의사 선생님이랑 병원에서 살아야 할지도 몰라. 의사 선생님이랑 살고 싶구나?" 위협과 조롱 섞인 말은 아이의 기분만 상하게 한다. 아이에게 규칙을 인지시키지도 못한다.



감정이 아닌 시스템


아이의 마음을 덜 다치게 하면서 습관을 교정하기 위해 필요한 건 '시스템'이다. 비교적 단시간에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알려진 행동주의 기법들을 아이에게 적용해 보기로 했다. 두 가지 방법을 결합해 나는 여기에 '카운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나는 '고장 난 레코드(broken record)'다. 레코드가 고장 나면 같은 구간이 반복되듯이, 감정을 절제하면서 같은 지시를 반복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부적 처벌(negative punishment)'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일정 시간 거둬갔다가 돌려줌으로써 자기 행동의 결과를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카운팅' 실행 방법


자기 전에 장난감으로 어질러진 거실을 정돈시키려고 할 때, 다음 절차를 따랐다.


1. 지시하면서 숫자를 세기: 먼저, 아이를 바라보며 지시한다. 지시를 반복할 때마다 숫자를 센다. "장난감 정리하자. 하나.", "자동차를 서랍에 넣자. 둘.", "장난감 친구들을 집에 보내주자. 셋." 일정한 페이스가 아니어도 된다. 아이가 꾸물거릴 기미를 보이면, 조금 빠르게 세면서 아이를 자극해 본다.


2. 행동의 결과를 인식시키기: 만약, "장난감 정리하자. 열."까지 해도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장난감 하나를 압수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고지한다. "이 장난감은 내일 이 시간, 24시간 뒤에 돌려줄 거야." 이때 아이가 떼를 쓸 가능성이 높다. 아이가 떼를 써도 장난감을 돌려주지 않는 게 핵심이다.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며 묵묵히 기다리면 아이의 떼는 가라앉는다.


3. 훈육하기: 아이의 감정이 가라앉으면, "이제 괜찮아졌어?"라고 하며 "자기 전에는 놀고 난 걸 정돈해야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자, 이제 장난감 정리하자."라고 다시 말한다. 만약 여전히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1번으로 돌아간다.


4. 보상하기: 정돈을 다 마치면, "우와, 장난감 친구들 다 집에 갔네. 이제 친구들도 편히 잘 수 있겠다. 친구들이 OO한테 고마워하겠네!"라고 하면서 아이를 칭찬한다. "진작에 하지. 꼭 압수를 당해야 하니?"와 같은 핀잔은 금물이다.



숫자를 세며 배운 것들


카운팅의 핵심은 일관성이다. 압수한 장난감은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되, 약속한 시간이 되면 돌려주어야 한다. 부모가 약속을 지켜야 아이가 부모를 신뢰할 수 있다.

아이가 성장해 가면 이 방법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 초등학교 입학이 가까워 오면, 처벌은 서서히 줄이고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좋다. 이제 초등학생이 된 우리 아이에게서 나는 물건을 압수하지 않는다. '고장 난 레코드' 기법만 몇 번 활용해도 충분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카운팅에는 부차적인 효과도 있을 수 있다. 아이는 열까지 세는 과정을 거치며 숫자에 대한 감을 익히고, 24시간 뒤에 장난감을 돌려받는 절차로 시간 감각을 기를 수 있다.


처음 카운팅을 시행하고 몇 주가 지났을 때였다. "카운팅 한다."라고 하며 지시와 숫자 세기를 시작하면 아이는 전보다 빠르게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얻은 소득이 아이의 순종만은 아니었다.


숫자를 세는 시간은 내게 분노를 다스릴 시간을 선물했다. 아이는 스스로 움직일 기회를 얻었다. 훈육은 아이를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함께 견뎌가며 더 나은 곳으로 가는 일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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