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려 『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스웨덴의 정신과 의사 다비드 에버하르드는 이 책에서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도 적당함이 필요하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부모는 아이의 자존감을 세워주려다 '적당함의 선'을 놓치곤 한다. 부모의 지지와 칭찬이 적정선을 넘으면 아이는 오히려 건강한 자존감의 뿌리를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아이의 승부욕을 잘 관리하면 건전한 자존감을 키워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승부욕을 가진 사람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지만 패자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안다. 내가 지더라도 승자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넬 수도 있다. 이야말로 단단한 자존감의 증거다.
우리 아이도 승부욕이 대단하다. 부모와의 놀이에서 질 것 같으면 금세 표정이 어두워진다. 이기기 시작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화색이 돌지만, 결국 패배로 끝나면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런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놀 때 계속 술래가 되면 울음을 터뜨리던 내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영락없는 내 아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승부욕을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닌, 아이의 마음 근육을 길러줄 기회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아이의 승부욕을 관리하기 위해 부모는 먼저 승부욕이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승부욕을 잘 기른 아이는 훗날 목표를 이루고자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성인으로 성장한다.
승부욕은 아이가 '반칙'을 해서 이기려 들 때 문제가 된다. 이때 부모는 단호해야 한다. 놀이 도중 아이가 반칙하면 바로 놀이를 멈춰야 한다.
"놀이의 규칙을 지켜야 해. 반칙해서 얻은 결과는 인정할 수 없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다시 시작하되, 반칙을 반복하면 놀이를 중단한다. 일정 기간 해당 놀이를 할 수 없음을 고지하고 실제로 이행한다. 아이의 행동이 교정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해야 한다.
반칙까지는 안 하지만, 패배를 못 견디는 아이도 있다. 아이가 징징거리면, "이기고 싶었는데 져서 속상하구나."라고 하며 일단 아이의 감정을 읽어 준다. 그리고, 아이의 감정이 가라앉기까지 기다려 주자. 만약 아이가 화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 이럴 때의 훈육은 잔소리만 되기 때문이다. 멀찍이서 아이가 안전한 지만 확인하며 스스로 진정할 때까지 시간을 준다.
아이가 차분해졌을 때가 진짜 교육의 시간이다. 아이를 바라보며, "속상한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정말로 멋진 사람이야. 졌다고 마구 화내고 심술부리면 함께 노는 사람도 기분이 상하게 돼. 결국 친구들도 OO랑 놀고 싶지 않아 질지도 몰라."라고 해주자.
그리고, 마지막에 이 말을 꼭 덧붙인다. "지더라도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이긴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아. 엄마(아빠)는 우리 OO가 그런 멋진 어른이 되길 응원해."
스포츠의 세계는 냉정하다.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리고, 승자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다. 하지만,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결과에 승복하며, 승자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선수는 모두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런 선수는 기억에 오래 남아 귀감이 된다.
누구나 1등을 꿈꾸지만, 모두가 왕관을 쓸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도 그렇다. 그렇기에 부모는 키워줘야 한다. 승리의 때만 반짝이는 가짜 자존감이 아닌, 패배의 고배를 마셔도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말이다.
건전한 자존감을 가진 아이는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세상의 중심은 아니어도, 다른 사람 또한 각자의 우주를 가진 소중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비록, 오늘 졌을지라도 '나'라는 존재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 그 믿음을 품은 아이는 타인의 승리에도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진짜 강한 사람으로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