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레드 카펫 말고 디딤돌을 놓자

아이에게 필요한 건 혼자 해 볼 기회다

by DK

우유팩을 마주한 아이들


작년 학부모 간담회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급식 우유를 처음 받은 날, 아이들의 반응은 세 갈래로 나뉜다고 한다. 우유팩을 혼자 잘 여는 아이, 혼자 해보려고 애쓰다가 도움을 청하는 아이, 받자마자 선생님께 열어 달라고 하는 아이.

첫 번째 아이들은 이미 충분한 연습을 거친 아이들이다. 부모가 지향해야 할 지점은 두 번째 유형이다. 반면, 마지막 유형은 가장 경계해야 할 유형이다. 아이를 자립적인 사람으로 기르려는 마음과 달리, 부모는 때로 자기도 모르게 아이의 의존성을 강화한다.



기회를 앗아가는 선의


아이는 혼자 해 볼 때 자립심이 자라난다. 하지만 부모는 여러 이유로 아이가 해 보는 기회를 앗아간다. 사실, 그 기저에는 대개 '선의'가 있다. 잘 안 돼서 괴로워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대뜸 대신해주고 만다.

때로는 '급한 마음'이 화근이다. 부모가 하면 1초면 끝날 일을 아이가 하면 한 세월이 걸리니 기다리기가 어렵다. 혹여 어설프게 뚝딱이다가 우유를 쏟는 '대형 참사'가 일어날까 봐 조마조마하다. 부모는 그 순간을 못 참고 아이의 손에 들린 우유팩을 낚아챈다. 결국, 아이는 자립의 기회를 잃어버린다.



'자립심'이라는 유산


아이가 성인이 되면 혼자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만난다. 이때 성인이 된 아이를 지켜줄 무기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가짐, 즉 '자립심'이다. 이야말로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이다.

아이는 매끈한 레드카펫이 아닌 띄엄띄엄 놓인 디딤돌을 건너야 자립심을 키울 수 있다. 디딤돌을 건너듯 쉬운 일부터 서서히 혼자 해내는 경험이 쌓여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디딤돌 놓기


디딤돌을 놓는다는 건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과제부터 서서히 시작해서 어려운 일까지 혼자 해내도록 이끄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우유팩 여는 일을 다음 과정을 거쳐 아이에게 시켜볼 수 있다.


1단계: 시범과 예고

부모가 아이 앞에서 우유팩을 여는 모습을 보여주며 여는 방법을 설명해 주되, "다음에는 OO가 해보자."라고 하며 아이의 마음을 준비시킨다.


2단계: 단계적 시도

아이에게 처음부터 혼자 다 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우유팩의 90% 정도만 열어준 뒤, 남은 10%만 아이가 열게 해 본다. 아이가 해내면 "잘했어. OO가 했네!"라고 하며 격려한다. 다음에는 부모가 여는 부분은 점점 줄여가면서 아이가 열어야 할 부분을 늘려 간다.


3단계: 공감과 격려

잘 안 돼서 아이가 짜증을 내면, "마음만큼 잘 안 되니 답답하구나. 처음이어서 그래."라고 한다. "혼자 시도하는 게 중요한 거야. 계속하면 잘하게 돼."라고 하며 시도 그 자체를 격려한다.


4단계: 침묵과 대기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 아니라면 부모는 묵묵히 기다려준다. 부모가 견디는 시간은 아이의 자립심이 자라는 시간이다.



미운 아이에게 레드카펫, 이쁜 아이에게 디딤돌


예전에 아이와 운동하러 나갔을 때였다. 가방에서 꺼낸 줄넘기가 칭칭 엉켜 있었다. 내가 하면 단 1분 컷이었겠지만, "한 번 풀어 볼래?"라고 하며 아이에게 줄을 건네줬다.

아이는 낑낑대며 엉킨 줄과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지켜보다가 아이가 답답해하는 기미를 보이면, "잘하고 있어.", "조금씩 풀리고 있네."라고 하면서 격려했다. 아이는 꽤 오랜 시간의 분투 끝에 마침내 줄을 풀었다. 그 순간 아이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건 자기 힘으로 해낸 뿌듯함의 미소였다.


어린 시절 부모가 깔아준 레드카펫만 밟은 아이에게는 작은 돌부리도 거대한 벽이 된다. 하지만, 부모가 드문드문 놓아준 디딤돌을 밟으며 자란 아이는 큰 바위도 너끈히 넘어간다. 부모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부모가 대신해 주는 '편안함'이 아닌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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