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이에게도 '깜빡이'를

예고하며 훈육하는 기술

by DK

깜빡이의 의미


도로 위에서 예고 없이 머리부터 들이미는 차를 마주하면 누구나 당황한다. 불쾌함을 넘어 사고의 위협까지 느낀다. 이때 우리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약속이 바로 '깜빡이(방향지시등)'다. '내가 곧 들어가니 당신도 준비하세요.'라는 무언의 메시지. 이 작은 불빛이 도로 위의 평화를 지킨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깜빡이 켜는 일을 생략하곤 한다.



어느 선배의 배려


10여 년 전, 대학원 석사 과정 시절의 일이다. 연구 모임이 끝나고 한 박사 과정 선배가 심각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긴장한 내게 선배가 말했다.

"너한테 지적할 일이 좀 있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어야 할 거야."

그 순간 신기하게도 내 안의 방어벽이 낮아졌다. 선배가 "너 아까 왜 그랬어?"라고 곧장 치고 들어왔다면,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이 먼저 발동했을 수 있다. 선배는 내 마음의 차선에 들어오기 전 깜빡이를 켜준 셈이었다.



훈육의 효과를 높이는 예고의 기술


이 원리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도 적용된다. 훈육할 때 아이에게 예고하면서 지적하는 습관을 들이면, 부모와 아이 사이에 오고 가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눈에 띄게 줄일 수 있다.


가령, 식사 시간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치려고 할 때 이렇게 해볼 수 있다. 우선, "OO야, 엄마(아빠)가 할 말이 있어. 이쪽 좀 볼래?"라고 하며 아이를 집중시킨다(예고). 그다음 "네 식사 습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해."라고 하며 주제를 던진다(주제 제시). 끝으로, "식탁에서 휴대폰 보면서 밥 먹는 거 아니다. 식사 시간에는 밥 먹는 데 집중해야지."라고 하며 핵심만 간결하게 전한다(훈육).


여기서 1절만 하는 절제의 미학이 중요하다. 깜빡이를 켜고 들어가도 과거의 잘못까지 엮어 지적하기 시작하면, 애써 켠 깜빡이가 무용지물이 된다.

예를 들어, "식사 중에 휴대폰 보는 거 아니다. 밥만 먹어. 여러 번 말했는데. 그리고 아까 숙제하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냐? 한 번 말하면 들어라. 요새 게임도 너무 많이 하고, 너희 반 애들 다 그래? 도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야. 너 내일모레 중학생이야."라고 하면 아이의 머리에 너무 많은 내용이 들어와 부모가 본래 전하려던 메시지가 아이의 마음에 남지 않는다.



사춘기에는 더 이상 무단침입이 통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졸업 때가 다가오면, 아이는 사춘기로 진입하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마음의 깜빡이'가 꼭 필요하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의 심리적 영역을 침범받는 일에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급한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때로는 부모가 인내심을 갖고 아이의 마음속을 방문하려고 해도, 아이가 "얘기하기 싫다고."라고 하며 계속 대화를 거부할지도 모른다. 이럴 때, "엄마(아빠)가 얘기하자고 했는데 OO가 여러 번 거절했다. 지금까지는 기다려줬지만, 그래도 이건 중요한 이야기라서 이번에는 꼭 해야겠어."라고 해 본다.

부모가 충분히 기다렸다는 사실을 아이가 인지하면, 아이의 양심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아이의 마음에도 '그래도 엄마(아빠)가 꽤 참아줬는데 나도 이제는 반응해야지.'라는 생각이 자라날 수 있다. 부모의 제안이 무단침입이 아닌 '정당한 방문'으로 인지되는 셈이다.



어른 대 어른으로 살아갈 날을 위하여


품 안의 아이는 언젠가 부모를 떠난다. 엄마 뱃속에서 시작해 부모 곁을 맴돌던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독립해 나간다. 그날이 오면 부모와 아이는 '어른 대 어른'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어려서부터 아이에게 깜빡이를 켜주는 일은 단순한 훈육의 기술을 넘어선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연습이며, 훗날 독립된 존재로 마주할 앞날을 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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