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니체를 읽고 감명을 받아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하면그의 철학을 너무 폄훼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엄연한 사실인 것을! 나는 니체가 설명하는 몸개념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그것과 친해지고자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자아는 점점 더 정직하게 말하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점점 정직해질수록 자아는 몸과 대지를 찬양하는 말을 점점 더 많이 찾아내고 더 많은 경의를 표한다. (p. 53)
형제들이여, 차라리 건강한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보다 정직하고 보다 순수한 소리에. 건강한 몸, 완전하고 반듯한 몸은 정직하고 보다 순수하게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몸이 대지의 뜻을 전해준다. (p. 56)
물론 니체가 말하고자 한 "몸"개념이 육체적 실체에 한정된 건아닐 테지요. 하지만나는 니체 같은 위대한 철학자가 아닙니다. 또 한껏 멋을 낸 죽은 철학보다는,조금 유치해 보이더라도 실제 살아있는 철학이 더 유용하다고 믿습니다.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몸과 대지에 관한 묘사는 또 어찌나 생동감 넘치던지요!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책을 집어던지고 당장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습니다.운동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니체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단순한 나로서는여전히 알 길이 없으나, 결과적으로는 큰도움을 받았습니다. 운동을 하면서부터 마음 식습관이 크게 좋아졌으니 말입니다. 우울이 찾아오는 빈도는줄었고,혹여 가끔마주치더라도 그 악순환 구조에는예전만큼 휘둘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울과 그악순환구조에 관하여생각해 봅니다. 우울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대체로 큰 마음을 먹습니다. 의지를 과소비합니다. 이것이 우울이 스스로를 강화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단숨에 변할 수 없고 따라서 곧 실패를 합니다. 실패를 자책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자책하는 정신은곧이어스스로를 더 깊은 우울로몰아넣지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더욱 무기력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번째 단계까지 거치고 나면 한 순환이 완성됩니다.이제 더이상 의욕할 수 없는 정신은 앞으로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다음번 기적을 기다립니다. 그렇게 다시 의지를 과소비하고, 다시 실패하고, 다시 자책하고, 다시 무기력에 빠집니다.
꾸준히 운동을 하면, 그리하여 자기 몸과 좀 더 친밀한 관계를 쌓으면 우울에서 벗어나는 일이 전보다 수월해집니다.몸이 건네는 소리에 좀 더 섬세해진 자아는 우울이 스스로를 강화할 수 없도록, 악순환의 각 단계에서 든든한 차단막 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자기 몸과 친한 자아는 무리하게 명령하지 않습니다. 몸 그릇에 맞추어 옛 습관을 버리는 데에 서두르지 않고, 새 습관을 터득하는 데에 인내심을 가질 줄 압니다. 의지를 과소비하지 않습니다.
몸의 욕망을 긍정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노련한 자아는. 어느 자아는 몸의 욕망을 더러운 것으로, 부정해야 할 무엇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몸이 지닌 욕망은 부정을 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부정을 할수록 더욱 거세게 올라오는 경향이 있지요. 몸과 친한 자아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단숨에 옛 습관을 버리려 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재촉하지 않습니다. 몸의 항상성(恒常性)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몸이 실제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마음을 준비해 둡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꾀합니다.
한편 자기 몸과 친한 자아는 단순하고 정직하게 말합니다. 스스로를 과도히 책망하지 않고,실패와 자책을 분리합니다. 우울이 그의 희생자에게 끊임없이 증명을 요구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라 하겠습니다.
우울은 청년에게 '너는 실패자이다'라고 말하는 목소리입니다. 아직 생(生)의 의지가 남아있는 청년은 우선 '아니다'라고 대답하겠지요. 하지만 우울은 그의 희생자를 놓아주지 않고 재차 몰아붙입니다. '그렇다면 증명해 보여라. 너는 여태껏 실패만 하였는데, 네가 실패자가 아님을 객관적으로 내게 보이라.' 하지만 우울이 요구하는 증명은 애당초 불가한 것이며, 그의 요구에 응하는 순간부터 이미 청년은 악순환에 휘말린 것입니다. 실로 얼마나 많은 섬세한 영혼이 이 덫에 걸려 끝을 모르고 추락하였는지요.
우울과의 논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우울과의 대화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입니다. '나는 실패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니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비롯하여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증명할 것이 없다.' 이처럼 단순하고도 정직하게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으면 참 많은 일이 간단해집니다. 우리 자아가 몸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종종 우울이 찾아올 때 숨이 턱 막히도록 운동장을 몇 바퀴 뛰고선, 땅바닥에 드러누워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늘을 쳐다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5.
적지 않은 밤을 우울로 지새웠습니다. 기적과 같은 변화를 꿈꾼 청년이 너무 많은 의지를 허공에 날린 탓입니다. 다 소화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마음을 먹어 놓고선 되레 스스로를 비난한 탓입니다.
마음 식습관이 다소 불규칙한 편이라면 조금씩 운동을 해보는 건 어떠한지요. 사실 꼭 운동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청소나 여행도 좋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 뜻깊은 대화를 나누는 일도 좋습니다. 오랜만에 자기 몸이 건네는 쾌활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활동이라면, 고집스럽게 몰두하는 자아의 고개를 한 번씩 들게 하는 활동이라면 뭐든 좋습니다. 창조하는 몸은 언제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을 준비를 갖추면 몸은 분명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우리 창조하는 인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