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뜨거웠던 여름
2015년 7월 어느 날
비가 그쳐 다시 무더워진 어제. 내가 일하고 있는 1층의 화장실을 쓰지 않고 오래간만에 2층의 화장실로 올라갔다. 1층은 여러 명이 같이 쓸 수 있는 조금 넓은 화장실인데 반해 2층은 딱 한 명이 들어가서 볼일을 볼 수 있는 좌변기만 하나 들어있는 방이다. 일본의 집들도 이렇게 좌변기 달랑 하나 들어있는 화장실을 가지고 있다. 목욕탕 혹은 샤워실과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날씨가 더워지니 2층의 공기가 더 후텁지근하게 느껴졌고 그 좁은 1인 화장실 공간은 숨이 조금 막히는 듯했다. 이렇게 밀폐된 느낌은 나로 하여금 15년 전 그곳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충무로 그 좁디좁았던 화장실의 추억을. 들어가서 앉으면 무릎이 문에 닿았던 그 비좁은 화장실. 더구나 화장실이 외부 공기와 직접 통해 있어 7,8월 찜통더위에 거기 앉아 있으면 몇 분 안에 셔츠가 흠뻑 젖어 버리곤 했던 충무로 오래된 빌딩 안의 그곳.
그곳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00년 5월 어느 날
어느 화창하고 조금은 더웠던 오후. 4호선 산본역에서 출발해 3호선 구파발역을 거쳐 두 시간 남짓 걸려 힘겹게 들어간 군부대. 같은 과 친구들과 개구리복을 입고 예비군 훈련을 마친 나는 조심스레 휴대폰을 켰다.
“야호!!!!!!!!!!”
“합격이다~~~~~~”
주변에 있던 사회학과 93학번 친구들이 몰려들었고 함께 기뻐해 주었다. 매일경제 TV, MBN 수습 기자직에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나는 에버랜드 면접을 본 후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MBN에서 먼저 연락이 와 급속히 마음이 기울었다. 아버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어 보았고 함께 언론사 스터디를 했던 동료들과도 상의를 했다. 그리고 언론사를 택하기로 했다. 비록 공중파 TV나 조중동 같은 메이저급은 아니지만 매일경제신문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고 케이블 TV에서는 당시 가장 시청률도 높았다. 일단 가서 경력을 쌓아 경력직 기자로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요즘 TV에서 혹은 인터넷에서 당시 MBN 동기들의 얼굴과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하며 미소를 짓곤 한다.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나름 양심에 따른다고 생각했던 에피소드 하나.
에버랜드의 최종 합격 여부가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에버랜드 인사팀에 이메일을 하나 써 보냈다. 대략의 내용은 이러했다.
[ 에버랜드 인사담당자님께
최근 면접을 본 이훈주라고 합니다. 저에게 귀사와 같은 훌륭한 회사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회학과 전공자로서 꼭 하고 싶었던 기자직에 합격하게 되어 부득이 귀사에서 일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포기하고자 합니다. 아직 최종 합격하지도 않은 제가 이렇게 메일을 보내는 이유는, 혹시라도 저로 인해 선의의 피해를 입을 응시자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입니다. 아무쪼록 널리 양해해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
친구들 몇 명은 그런 메일을 굳이 보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최종 합격한 것도 아니고 만일 최종 합격한다 해도 안 가면 자기들이 알아서 더 필요한 인원을 추가로 뽑으면 될 거라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기는 했지만 당시 나로서는 미리 알려 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인사담당자한테든 다른 응시자한테든 나의 포기를 미리 알리는 편이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메일을 받아본 그 에버랜드의 인사팀 담당자는 내 메일을 보고 이렇게 말했을까?
‘하, 이 친구 재미있는 친구일세.
자네한테 불합격 통보 예정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