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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Nov 26. 2015

일본 사람과의 갈등

  알쏭달쏭한 일본 문화  

2015년 뜨거운 키타큐슈의 어느  여름날


  내가 다니는 테니스 클럽 회원 가운데 50대 치과 의사가 한 분 있다. 얼추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아 보이는 그는 나보다 더 테니스에 미쳐 있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듣기로는 일주일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테니스를 친다고 들었다.  


  지난 목요일 저녁. 함께 운동할 사람을 찾으시는 본당 신부님을 모시고 목요일에는 단식 경기를 즐기는 두 사람, 나카타 씨와 마에하라 씨께 양해를 구하고 복식 경기를 하기로 했다.   


  나카타 씨는 나의 복식 경기 파트너로서 현재 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는 40대의 지적인 친구이다. 2년 전 이곳 키타큐슈에 왔을 때 일어가 되지 않던 시절 미국에서 8년 간 일하다 왔다는 이 친구와 알게 되어 복식 파트너가 되기에 이르렀다.   


  마에하라 씨는 테니스 클럽에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는데 테니스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높은 사람이다. 치과 의사라는 사실을 듣지 못했다면 과연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가늠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얼굴과 팔뚝 그리고 다리는 햇볕에 그을려 새카만 것이, 마치 죽자 사자 밖에서 농구하며 일 년 내내 타 있던 내 대학교 시절 피부처럼 까맣다.   


  

 나와 신부님이 한 팀. 나카타 씨와 마에하라 씨가 한 팀이 되어 경기를 시작했다.

  

  나는 테니스 게임을 할 때 일명 파이팅이 좋은 스타일이다. 조용히 동작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치며 나와 파트너의 사기를 올리는 편이다.   


  예를 들면, 써브가  시작되기 전에 나는 자주 “파이팅!!” 하고 외친다. 또한 우리 파트너가 훌륭한 스트로크 샷이나 발리로 상대를 제압했을 때는 “ 나이스 샷! 나이스 리턴! 나이스 발리! “ 하고 외치면서 파트너의 기를 살려 준다.   


  일반인들 평균에 비해 목소리가 큰 편인 나는 이렇게 파이팅을 외치면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면서 동시에 우리 팀의 기를 살리는 효과를 어느 정도 거둔다.  


  그 날의 경기는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 팀의 열세였다. 왜냐하면 신부님은 구력이 3년 정도였고 상대 팀은 마에하라 씨가 약 30년, 나카다 씨도 약 20년 정도 테니스를 쳐왔기 때문에 일단 구력에서 밀리는 것이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테니스를 시작했지만 고등학교 이후 30대 중반까지는 줄곧 농구를 해왔고, 테니스는 중국에 건너가서 2009년 경 다시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했으니 중학교 1년, 장년 이후 약 6~7년, 도합 7~8년의 구력이다.  


  절대적으로 밀릴 거라 예상하고 시작한 경기는 의외로 우리가 리드하며 이어갔다. 신부님은 최근 다리 부상으로 3개월 간 공백이 있었음에도 침착하게 게임을 풀어갔다. 다친 기간 중 불어난 몸무게로 스피드는 떨어지지만 실수가 적은 편이었고 발리 또한 또박또박 맞춰 들어갔다.   


  게다가 이 날 나의 컨디션도 상당히 좋았다. 첫 써브가 대부분 성공했고 포핸드(오른쪽) 스트로크가 힘이 실리며 상대를 제압하곤 했다. 백핸드 스트로크는 실수가 종종 나오긴 했지만 백 슬라이스(슬라이스: 공을 커트하여 낮게 깔리는 샷)가 낮고 강하게 적진  오른쪽 깊숙이 들어갔다.  


 게임이 잘 풀리기 시작하자 신난 나는 파이팅하는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   


“나이스 리턴!!!” “와우!! 나이스 써브!!!!”   


“스바라시이데쓰네~~~(엄청 멋지네요~~~~)”  


 나카타 씨가 강한 써비스를 넣었을 때 우리 파트너가 제대로 받아내자 나는 다시 ‘나이스 리턴’을 외쳤다. 그 순간이었다.   


“앤디! 게임할 때 자꾸 소리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네트 앞을 다가온 치과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대꾸했다.  


“  공치고 있는데 자꾸 나이스 리턴, 나이스 발리 하는데 이 거 좀 하지 말라고요.”  


  마에하라 씨의 말에 나는 순간 황당했다. 아니 경기 중에  파이팅하고 파트너 기 살려주느라 외친 말을 가지고 지금 시비를 거는 건가?  


“ 마에하라 상, 공 써브가 된 이후에 이렇게 소리치는 건 자유 아닌가요? 저는 공이  서비스되기 전에 말한 게 아니라 맞고 난 이후에 외치는 겁니다 ”  


  그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몇 번 꿈뻑하더니 알았다며 자리로 돌아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신부님이 나에게 “자자 좀 가라앉히시고  하시죠”라고 말렸다.   


  나는 웃으며 “네 신부님. 근데 저 분 이렇게 한 마디 안 하면 자꾸 별 거 아닌 거 가지고 트집을 잡기 때문에 한 마디 드려야  했어요.”라고 대답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테니스도 공식 규정은 따로 있지만 이게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각 지역마다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룰이 조금 다른 경우가 있다. 아마 골프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일 년 이상 나는 마에하라 씨가 이런 식으로 이건 이게 옳다 저건 저게 옳다며 게임 중 코멘트를 달 때마다 군소리 없이 받아들이고 몰랐다며 조심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좀 그냥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약간 흥분된 어조로 응수를 했는데…  


  어색해졌다.

 이러고 나니.

 게임 내내 생각이 났다.

 아, 일본 사람들 이러고 나면 정말 냉랭해지는 거 아닐까. 저 사람 자기가 한 말에 반박해서 기분 상했을까. 일본 사람들 갈등 생기면 풀기 어렵다던데…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는 동안에도 자꾸 머리 속에 그 순간이 떠올랐다. 아내에게 이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더니 앞으로 그 사람하고 좀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몇 시간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전화기를 들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 자판을 두드리며 마에하라 씨에게 보낼 문장을 적었다.  


< 밤늦게 죄송합니다. 오늘 테니스 경기에서 이래저래 실례했습니다. 앞으로 운동할 때 더 주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  


발송.   


  자기 전까지 회신이 있을까 기대하며 한 시간을 기다렸지만 회신 문자는 오지 않았다. 역시 이 분하고는 이제 어려운 걸까. 앞으로 테니스장에서 만나면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 마에하라 씨가 주관하는 테니스 클럽에서 나는 이제 퇴출되는 걸까.   


 혼자 오만 상상을 다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 말자 폰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밴드 새 글과 댓글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의 문자가 온 것은 출근 직전이었다. 나는 약간 긴장한 마음으로 화면을 열었다.  


< 앤디상의 테니스가 나날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 마에하라 - >  


  역시 50대의 일본 남자다운 회신이었다고나 할까.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우회하여 넘어가는 화법. 그나마 나는 그의 이런 회신에 한결 마음이 놓이는 걸 느꼈다. 적어도 소통이 단절되는 것은 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제 저녁 그가 주관하는 다른 테니스장 모임에서 해프닝 이후 처음 그와 조우했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했는데 그 역시 평소보다 조금 더 밝은 톤의 목소리로 나를 맞아 주었다.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 역시 사람과의 갈등은 힘들고 신경이 많이 쓰인다.  


  앞으로도 나는 일본 사회에서 이방인으로서 여러 가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좋은 일도 많겠지만 문화와 언어의 차이로 인해 크고 작은 문제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 인간 아닌가. 진심을 가지고 조금 더 겸허하게 처신할 수 있다면 설사 오해가 생기더라도 결국 풀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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