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타큐슈 이야기 제 7화
우리 사무실은 조그마하다. 내 왼쪽에는 회사의 직원들 군기를 잡으시는 본부장님이 앉아 계신다. 이 분은 왕년에 수학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숫자에 강하고 매사 철두철미하다. 본인이 일을 철저히 완벽하게 하는 편이라 부하직원들한테도 비슷한 수준을 요구하신다.
평균적으로 좀 조근조근 얘기하는 보통의 일본 사람들과 달리 이 분은 목소리가 크고 톤이 높다. 덕분에 나는 정확한 일본 발음과 표현을 들으며 매일 생생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
주로 사무직원이 여자들이라서 이 분의 부하 직원은 대체로 여자들이다. 직원들이 작성한 자료가 틀렸거나 업무 처리 방식에 문제가 있을 경우 일층의 우리 사무실로 호출을 하는데 나는 운 좋게도(?) 일본 상사가 부하를 깨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워낙 논리 정연하고 말도 많으신 편이라 부하 직원들 대부분 핫토리 상 앞에서 꿀먹은 벙어리 마냥 일방적으로 혼날 때가 많다. 여자 부하들이 대부분이지만 영업 직원 둘은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남자들인데 이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물론 그녀는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상사처럼 쌍욕을 입에 담지는 않는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져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를 레고 이 맞추듯 따박따박 말하는 타입이다.
사장님은 가끔 농담 반 진담 반 말씀하신다.
핫토리 때문에 직원들 여럿 나갔어! 지가 일하는 거랑 부하들한테 똑같이 요구하니까 어디 그게 되나? 일본 사람들 성격에 참다가 참다가 한계에 부딪히면 사표 쓰고 나가는 거지.
어느 날이었다. 사장님이 핫토리 상한테 내가 한국에 양육비를 보내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모양이다. 그녀는 내 얘기를 들으시더니 한국 남자들하고 일본 남자들 참 비교된다며 씁쓸해했다. 자기도 아들이 갓난쟁이일 때 이혼을 했지만 전 남편으로부터 단 한 번도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이혼할 때 전 남편의 빚까지 떠안아 해결해야만 했던 아픈 과거가 있었다고 한다.
돌연 그토록 강하고 당당하게만 보였던 그녀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리고 목소리는 떨리며 흔들렸다.
1957년생. 만으로 58세. 우리 나이론 59세. 30대 초반에 헤어져 25년 이상의 세월 동안 홀로 벌어 아들을 키워온 이 분. 순간 가슴이 조금 막혔다. 코도 막히고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아들의 아버지는 헤어진 이후 단 한 번도 아들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과연 어떤 상태라면 자신의 핏줄을 평생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일까. 사정을 모르니 제대로 헤아릴 수 없겠지만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핫토리상을 한 번 따뜻하게 안아드리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늘도 그녀는 씩씩하게 출근해서 높고 우렁찬 목소리로 거래처와 전화 통화를 하고,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한다. 자신도 수많은 숫자를 챙기며 숨 가쁘게 일하고 있다.
혹시 회사에서 핫토리상과 나의 관계는 어떠냐고요?
요건 아주 재미있는 부분인데 생각을 좀 정리해서 나중에 다시 한 번 써보고자 합니다. 그녀와 저의 공적 사적 관계가 아주 미묘하고 복잡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