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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Dec 01. 2015

레퍼토리 있는 생일

출근했는데 회사 문이 잠겼네! 성당 갔더니 사람이 없네!

  지난 토요일에는 일본에서 홀로 맞이하는 생일을 보냈다. 생일이었지만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었기에 평일과 다름없이 일찍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섰다.


  비록 한 달에 두세 번 토요일에 출근을 해야 하지만 막상 이런 날 출근을 해보면 꽤 여유로운 하루가 펼쳐진다.


  회사의 현장에서는 계속해서 물건이 들어오기 때문에 평일보다 조금 한가하긴 해도 계속 일이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수출입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주로 해외에 있는 카운터파트가 쉬는 토요일에는 회사를 나와도 평일과 같이 바쁘지 않다.


  이런 날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기사도 보고 여유롭게 사색을 즐기며 글을 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날씨는 흐렸지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운전을 하며 출근길을 달렸다. 약 20분 뒤 회사 앞에 도착했다.


  앗!


  찰나의 시간 나는 잠시 혼동스러웠다.


  회사의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이 아닌가.


    스마트폰의 달력을 열었다. 넷째 주 토요일. 그렇다면 쉬는 토요일.


  아하하하하하하...


  나는 마치 공짜 돈이 생긴 것 같은 유쾌한 마음이 들었다.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기념사진도 한 장 찰칵!

 

 평소에 업무 시간에 쫓겨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회사 근처의 바닷가로 향했다. 높이 30~40미터는 됨직해 보이는 거대한 풍차들이 해변을 따라 도열한 꽤나 낭만적인 곳이다.

 

 키타큐슈가 서울보다는 따뜻한 편이지만 그래도 겨울이고 이 날은 날씨가 흐려 바닷바람이 더  차가웠다.


  차를 방파제 바로 앞에 대고 내렸다. 언제 보아도 눈이 황홀한 그곳의 풍경을 다시 한 번 카메라에 담았다.


  아, 이건 정말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깝다. 가족들과 지인들이 오면 꼭 여길 데리고 와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방파제 위를 조금 거닐며 사진을 찍었다.

  차 안으로 들어와 잠시 몸을 녹이는데 갑자기 파도가 치더니 방파제를 넘어 바닷물이 철썩 차 앞유리를 갈겼다.


  난생처음 몰던 차에 바닷물이 뺨을 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앞유리에 금세 허연 소금 자국이 남았다. 조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11시가 조금 넘어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공으로 생긴 이 황금 같은 시간을 바로 테니스에 투자하기로 했다.  평소 다니는 테니스장에 가서 회원들과 네 시간 정도를 신나게 뛰었다.


  실은  다음날 아침에도 테니스 약속이 잡혀 있었다. 흐흐흐.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걸까? 이 테니스란 녀석.


  일본에 와서 일본 친구들을 사귀는 데 테니스가 단단히  한몫을 해주었다. 말을 몰라도 함께 땀을 흘리며 신나게 운동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그들과 한 무리가 되어 있었고 친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다. 여기 온 지 2년 반이 되어가는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개인적으로 가까이 알고 지내는 일본 친구들 대부분이 테니스장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테니스에 감사하며 즐거운 오후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론 조금 찜찜한 마음이 든 것은 일요일 아침에 성당을 가지 않고 또 테니스장을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올해 가입하게 된 이 모임은 20~40대가 주축인 상대적으로 젊은 테니스 클럽인데 항상 정모를 일요일 오전 9시에 시작한다. 때문에 일요일 오전 8시 반에 시작하는 미사를 가게 되면 9시 반에 끝나고 정모에 늦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요새 토요일 저녁에 하는 특전 미사를 자주 가게 되었다. 미사는 기타큐슈에 와서 다니게 된 와카마츠 성당과 토바타 성당으로 보통 간다. 올해 이 두 성당을 담당하시러 새로운 신부님이 오셨는데 기쁘게도 한국인 신부님이셨다. 더욱이 나와 동갑이셔서 이 낯선 곳에서의 만남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이 날도 토바타의 토요 저녁 미사를 가려고 생각하는 중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얼마 전 집 근처 대학 캠퍼스 한국어 강좌에서 만났던 일본 여자분이었다. 나는 강사가 아니지만 일본 친구들도 사귀고 한국어 공부도 도와줄 겸 해서 참가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자기소개를 하다 보니 이 분도 가톨릭 신자란다. 그리고 나보고 어느 성당을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더니 우리 집에서 더 가까운 성당이 하나 있다고 자기가 그곳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저녁을 가볍게 먹고 미즈마키 성당이라는 그곳을 찾아갔다. 주소를 네비창에 입력하고 차를 몰아 간 곳은 정말 평소에 다니던 성당보다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날이 저물고 진입로가 헷갈려 두 번이나 입구를 놓치고  한 번은 고가도로를 타고 멀리까지 빙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성당 앞에  도착했다.


  좀 일찍 도착하려고 의도한 것과는 달리 미사 시직 시간 7시를 8분 넘긴 시각이었다. 도착해 보니 한국어 강좌에서 만났던 그 여자분, 마고메 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약간의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마고메 씨는 괜찮다고 같이 들어가자며 안내를 해주었다.


  (아침에 이어 다시 한 번) 앗!


  미사가 집전되는 대성당 출입문을 들어서자 내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아무도 없는 텅 빈 벤치식 목재 의자들. 쥐 죽은 듯 고요하며 무거운 공기. 실내등 불빛을 받아 차분하지만 아름답게 다가오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 나의 눈길을 자그맣고 아담한 성당을 입구로부터 훑어 저 안쪽의 제대까지 다다랐다.


  그렇다. 이 미사엔 신자들이 없었던 것이다.  일본에 천주교 신자들이 적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평소에 다니던 성당에는 일요일 미사엔 적어도 수십 명이, 토요일 저녁 특전 미사에도 20명 이상은 왔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깝다는 이 미즈마키 성당의 토요 특전 미사에는 나와 한국어 강좌의 마고메 씨 외에는 신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제일 안쪽 제대 왼편에 키가 훌쩍한 분이 의자에 앉은 채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이 성당의 주임 신부님이셨다. 그리고  그분은 일본인이 아니라 미국인이었다. 하얀 머리와 껑충한 키가 인상적인 6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백인 신부님.


  마고메 씨는 간단히 나를 미국인 신부님께 소개했다. 아직은 영어가 더 편한 나였지만 마고메 씨가 있었고 일본 성당의 미사였으므로 우리는 줄곧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셋이서 시작한 미사에서 나는 일본에 온 이후 처음으로 일본어 성경을 낭독했다. 한자가 중간중간 많이 있었지만 작은 글씨로 음이 달려 있었기 때문에 떠듬떠듬 읽어 내려갔다.


  아, 이 얼마나 오묘한 순간이란 말인가.  

처음 오는 낯선 성당과 신부를 포함해 단 세 명이 참례하는 작은 미사. 미국인 신부에 일본인 신자 하나, 한국인 신자 하나.  함께 떠듬거리는 이방인 신부님과 이방인 신자의 성서 읽기.


  참으로 차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또한 특별한 감동을 느끼며 내게 찾아온 그 시간을 채웠다.


  그리고 어떻게 된 건지  미사가 끝난 후 나는 고해성사를 하게 되었다. 아마도 마고메 씨가 신부님께 부탁을 한 모양이다. 나는 마음의 짐을 지고 있었는데 정말 타이밍도 절묘하게 생일날의 고해 덕분에 마치 정말 다시 태어나는 상징적인 체험도 선물 받았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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