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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Dec 02. 2015

아버지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하다.


  대학생 때였을까?


  부모님을 모시고 차로 수원의 가톨릭대 교정을 돌아보고 오는 길.

 " 조선일보는 쓰레기 신문이에요!"

 " 뭐, 이 자식아? 조선일보가 쓰레기면 너도 쓰레기다! "

  그 날 난 처음으로 가출을 했다.

    내 기억엔 집에서 원목 의자가 거실 위를 날았고 결국 다리 하나가 부러졌다.
  그 이후 꽤 오랜 세월 아버지께서 테이프와 줄로 고정시킨 원목 의자가 거실 한 귀퉁이를  볼썽사납게 차지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비교적 온순하게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편이었다. 남동생이 아버지와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 활동이다 연극이다 그러다가 자퇴까지 결정하며 대판 싸우곤 했던 것에 비하면 나는 아마 부모님께 수월한 아들이었을 거다.

  오늘 아침 혼자서 사과를 깎아 먹고 있는데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40년을 쓰다가 결국 고장 난 누런 롤렉스 시계.  등이 헤어져 군데군데 구멍이 난 '난닝구'. 어머니가 정신 사납다고 갖다 버린 걸 왜 버리냐고 다시 들고 오셨던 청동 코끼리상. 굽이 닳아빠진 정장구두.

  아들과도 10원짜리까지 맞추는 철저한 돈 계산. 효도비를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태도. 좋아하는 친구들한테는 간도 쓸개도 빼줄 것 같은 의리와 싫은 사람은 엄청나게 까는 까칠한 성격.

  집에서는 손하나 까딱 안 하면서 어머니의 요리에 대해 양념이 어떻고 칼질이 어떻고 잔소리가 많은 양반.

  아버지를 떠올리면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

  나와 남동생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싸움을 하시면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언제나 어머니 편에 섰다. 완력으로 아버지를 막을 수 있을 때쯤 되어서는 실제로 폭력을 쓰지 않으면서도 어머니를 을러대는 아버지를 완력으로 방어하기도 했다.

  아버지...

   42년생. 일흔넷.

    아직 그는 기력이 넘친다.  은퇴 이후에는 골프와 역사공부에 빠져서 여유로운 시간을 쏟아 붓는다. 인터넷으로 해외 사이트에 접속하여 단기 체류 숙소까지 예약할 줄 아는 그는 어릴 때 생각하던 노인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오랫동안 공부를 하느라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도움을 받은 남동생은 나이가 들어서도 아버지와 부딪힐 일이 많다.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동생은 동생 대로 할 말이 있고 서로에게 서운하다.

  어제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파리라고 하시면서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큰아들의 안부를 물으신다.  나도 아직 프랑스에는 못 가봤는데 어머니가 멋진 도시에 가 계신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 나이 들어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저곳 다니시는 아버지를 미래의 나와 비교하게 된다.

   내가 한때 분노하고 싸우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아버지였지만 어쨌든 그는 잘 살아오신 거다. 한 여자를 평생 책임지고 자식을 굶기지 않으며 끝까지 묵묵히 인생길을 걸어온 거다.

   어머니와 포옹을 한 적은 가끔 있지만, 아버지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친구들과는 간만에 만나서 그렇게 반갑게 안으면서도 아버지와는 참 어색하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의 아버지 넓은 가슴을 가진  그분을 한 번 안아보고 싶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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