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니 뜬금없이 생각나
지금 수많은 직장의 대리님들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거다.
날씨가 아주 변덕스럽다. 비가 퍼부었다가 해가 쨍쨍 내리쬐었다가.
문득 떠오르는 대리 시절 장면 하나.
서울역 맞은편 거대한 성냥갑처럼 생긴 당시 건물명,
'대우빌딩'에서 일하고 있을 때다.
그 빌딩은 보는 것도 거대하지만 실제 실내도 엄청나게 컸다. 정방형의 건물 안은 바깥쪽으로 난 사무실로 네 면이 주욱 이어져 있었고 안쪽 작은 사각형 공간도 창고나 회의실로 쓰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 층을 단면으로 보면, 바깥쪽의 사각형과 안쪽의 사각형을 복도가 나누고 있는 구조였다.
일하다가 답답하면 6층으로 이어진 밀레니엄 힐튼 호텔 뒤편 정원으로 나가 바람을 쐬곤 했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덥거나 혹은 추울 때, 일은 바쁜데 좀 걷고 싶을 땐 그 거대한 사각형 복도를 걷기도 했다.
당시 커다란 사무실에 60여 명 정도가 각기 서로 다른 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가까운 팀 사람들은 얼굴과 이름을 알며 친하게 지냈는데 좀 멀리 떨어진 팀 사람들은 보통 얼굴만 겨우 아는 정도였다.
그날도 바쁘긴 한데 답답해서 복도를 두 바퀴 째 돌고 있었다. 뭔가 생각에 잠겨 복도를 걷다가 코너를 돌았는데! 코너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났다.
"엄마, 깜짝이야!"
둘 다 코너를 너무 가까이 돌아서 미리 상대를 인지하지 못하고 부딪힐 뻔한 것이다. 서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얼굴을 쳐다보니 비철팀에서 일하는 막내 사원 아가씨였다.
어느 정도 미안함을 표시한 후에 겸연쩍게 웃었다. 그때 그 아가씨가 한 마디 했다.
앗, 아깝다! 안길 수 있었는데!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저 사람이 지금 뭐래?
눈 앞에서 동그랗고 커다란 눈에 짙은 속눈썹을 찡긋하며 그녀가 생글거렸다.
정말 조그마한 키에 통통했던 외모의 막내 여사원. 나이도 나보다 많이 아래였는데
그 순간에 나는 퍽이나 당황하여 제대로 대꾸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지금도 그 생글거리는 얼굴이 또렷이 기억이 난다.
평소엔 말도 거의 못 해보던 사이였는데 말이다.
변덕스런 날씨 탓일까. 머릿속 꽁꽁 쌓여 있던 슬라이드 한 장이 툭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