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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ul 06. 2016

이나카(田舎)짬뽕밥

일본식 짬뽕 혹시 드셔 보셨나요?

  회사에서 차로 10분 정도 가면 '이나카우동(시골우동)'이라는 가게가 나온다. 후배 Z가 오늘 점심을 사겠다며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길래 바로 이곳을 택했다.  


  3년 전 서울에서 키타큐슈로 왔을 때 직장 동료들과 처음 이 식당에 왔던 때의 기억이 난다.  우동집을 간다길래 따라갔다가 우동집에서 파는 일본식 짬뽕을 처음 맛보게 되었다.


아! 너는....

도대체 너는 정체가 뭐냐?


 희멀건하고 불투명한 고깃국물이라 느끼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 입 떴을 때의 그 놀라운 식감!

볶은 야채와 깊고 칼칼한 육수 그리고 쫄깃한 짬뽕 면발의 환상적인 조화. 여기서 '짬뽕'이라는 단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먹는 중국집 짬뽕을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같은 면 음식일 뿐이지 전혀 다른 종류의 음식이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에겐 '나가사키 짬뽕'으로 알려진 짬뽕과 그나마 유사한 편이라 할 수 있지만, 역시 이나카짬뽕의 깊고 진한 맛은 단연 여타 짬뽕과의 차별화를 선언하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이나카우동은 나의 단골 식당이 되었고 이나카짬뽕은 매주 몇 번이라도 즐겨 먹는 단골 메뉴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이 먹거리를 올해 우리 회사에 이직해온 후배 Z도 사랑해 마지않았다. 알고 보니 몇 해 전 - 내가 이곳에 오기 더 전에 - 그가 이곳에 잠시 머무를 때 이미 그 미각에 새겨져 버린 놀라운 맛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 후배가 몇 년 만에 다시 이나카우동을 방문해서 이 짬뽕을 시켜 먹었을 때의 표정이 떠오른다. 마치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그 눈빛. 감격과 기쁨이 뒤섞인 황홀한 표정. 그 순간을 함께 하는 나도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그 뒤로 우리 둘은 자주 이곳에 오고 있는데 한 번은 Z가 신기한 주문을 하는 거였다. 조심스레 종업원한테 가더니 뭐라뭐라 속닥속닥. 종업원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배의 주문은 이런 거였다. 이 오묘하고 깊은 짬뽕 육수에 면 대신 밥을 말아먹고 싶다는 거였다. 짬뽕을 시키고 추가로 밥 한 공기를 시키는 게 아니었다. 면을 처음부터 빼 달라는 거였다. 공깃밥은 따로 시켰다. Z는 식당 입장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다소 독창적인 주문을 통해 면이 처음부터 배제된 짬뽕과 공깃밥을 시켰고 이 신메뉴를 시식하며 지난번보다 더한 감동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날 그렇게 맛있게 점심을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이나카우동 주인은 면이 빠졌으니 100엔을 깎아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공깃밥을 먹었으니 안 깎아 줘도 된다고 했지만 굳이 600엔짜리 짬뽕을 500엔만 받는 거였다. 그런데 오늘 우리 두 사람이 그 짬뽕밥을 또 시켰다. 지난번 그 주문을 받았던 종업원이 아닌 다른 아주머니께서 우리의 주문을 듣고 또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는 상황을 파악하고 지난번 Z의 오더를 받았던 젊은 남자 종업원을 살짝 불러 창작메뉴를 다시 주문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가 600엔을 다 내겠다고 했다.


  우리 두 사람은 약간의 흥분과 기대로 면없는 짬뽕과 공깃밥을 기다렸다.

 

 드디어 나왔다. (사진이 좀 별로지만, 현장감을 위해서 유첨 ^^)


키타큐슈 와카마츠 이나카우동집에서


  후배 Z가 지난번에 혼자 먹는 모습만 보고 나는 오늘 처음이었다. 조심스레 밥을 퍼서 신중하게 짬뽕 국물에 넣었다. 네 번에 걸쳐 한 공기 전부 국물 속에 잠수시켰다. 숟가락으로 천천히 휘휘 저어 밥알 사이로 국물이 골고루 들어가도록 배려했다.  충분히 섞였음을 확신하고 마지막으로 앞에 놓인 토-가라시(고추)가루를 탁탁 뿌렸다. 그 사이에 내 입안은 이미 흥건해지고 있었다.


  시식 실시!


숟가락으로 짬뽕 국물과 밥을 푸욱 퍼올렸다. 입 안으로 가져갔다.


 아...


 아!


 그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왜!


 정말 왜!


 나는 이런 발상을 하지 못했던가!


 3년이나 이곳을 다니며 수도 없이 짬뽕을 시켜 먹었거늘.

왜 나는 짬뽕에 밥을 말아먹을 생각조차 못한 것인가!


  하지만 후회는 잠시 뿐. 이후로는 후배 Z가 보여줬던 그 황홀한 표정을 내가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면을 넣은 짬뽕에 밥을 말아먹는 것과 면을 아예 빼고 양배추와 고기 등이 들어간 짬뽕국물만을 시켜 밥을 말아먹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뭐랄까. 깊고 진하며 칼칼한 짬뽕 육수 본연의 맛에 쌀밥이 들어가 누룽지 비슷한 맛으로 살살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건 그냥 짬뽕을 시킬 때보다 더욱 내 입맛에 잘 맞았던 것이다. 아마 한국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후배가 '이나카짬뽕밥'이라 명명한 이 훌륭하기 그지없는 음식을 맛보는 즉시 사랑하게 되리라.


  얼마나 좋은지 서울에 두고 온 옛 직장 동료들이 생각났다. 같이 먹고 싶어서 말이다. 이런 식당이 빌딩가 근처에 하나 있다면 매일 점심에 장사진을 칠 것 같았다. 내심 이 가게 사장님과 동업해서 서울 사무실 밀집 지역에 지점을 하나 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Z와 나는 너무 맛있는 걸 먹으며 생각과 말이 저만치 마구 앞서 달렸다. 이런 한적한 소도시에서 이런 맛난 걸 먹는 행복에 흠뻑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맛있는 걸 먹어서 만족스러운 것에 더하여 또 하나 기분 좋은 점이 있었다.  서 이번엔 깎아 주지 말고 600 식당에선 그 돈을 그냥 받는 를 듬뿍 다. 어찌나 정직하고 친절한지. 면 안 넣었다고 100엔을 깎아 주더니, 안 깎고 그냥 내겠다니 재료를 더 넣어 주겠다고 자진해서 나오시고.


   별 것 릴는만, 시골 우동집의 에 후배와 나는 적잖이 감동하며 소박하면서도 풍요로운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 이 글을 쓰고 있는 내내 계속 침이 고인다. 며칠 뒤에 다시 가서 또 먹어야지. 후훗.


키타큐슈시 와이타 해변 1.


키타큐슈시 와이타 해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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