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드레아 Jul 15. 2016

자기계발/성공학/자기변화를
다룬 책들에 대한 생각

힘든 나날에 보았던 책들을 떠올리며 

모지코 블루윙 근처
모지코 주변 거리


나 빼고 다 잘 사는 세상


  나 빼고 세상 사람들이 잘 지내는 듯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속앓이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까짓 게 고민이냐 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본인에게는 그보다 더 힘든 일이 또 없을 만큼 고통받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항상 웃고 주변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 힘든 일이야 다 있겠지만 이런 사람은 그래도 특별히 어려운 일이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알고 보면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거나 고생을 심하게 하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문제는 내 탓인가? 세상 탓인가?

  학부 시절 깊이는 얕지만 사회학을 공부했다. 사회학이 뭔지도 모르고 이름이 그럴싸해 보여서 택한 전공이었다. 지금은 뭘 공부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신입생 시절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의사는 사람의 병을 진단하고 고치지만, 사회학자는 사회의 병을 진단하고 고친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신출내기에게 으쓱한 기분을 들게 하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피식하고 웃을지 모를 일이지만 그때는 제법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사회학을 공부해서 취직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데는 제법 큰 도움을 받았다. 살아가면서 직접 부딪히거나 매스미디어나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개별적인 사안이나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일부일처제가, 자본가들이 손쉽고 효율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하기 위해 혹은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을 위해 지지되고 교묘히 이용되었다는 식의 사고도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러한 시각에 해당된다. 다른 예로,  범죄 사회학을 살펴보면,  한 사회가 물질적으로 너무 급속한 발전을 이루면서 그에 걸맞은 정신/문화나 규범이 미처 만들어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혼란과 불안정(anomie, 아노미)이 범죄를 야기시킨다는 이론이 나오는데 역시 범죄를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구조적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다.


키타큐슈 모지코 항구
세상과 사회 탓만 하며 살 것인가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개별적으로 접근함과 동시에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보고 겉에 드러난 모습 이면을 들여다보는 태도는 매우 중요한 접근 방식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살면서 피부로 와 닿는 빈부격차의 문제를 보자. 이것을 개인의 운 또는 개개인의 능력과 같은 관점에서만 본다면 가난한 사람이 가난을 벗어나는 것은 운이 따라 주거나 개인적 능력이 받쳐 주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본다면 막혀 있는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정책적으로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교육/취업 시장에서 메리트를 주는 식의 방법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물론 아직도 유효하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또 국가가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는 데 이의는 없다. 오히려 이런 노력이 부족함을 느끼면 느꼈지 과하다 느낀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좀 하고 나이가 좀 들어 보니 너무나 소중한 한 번뿐인 우리의 인생을 놓고 사회 탓 세상 탓만 하며 넋 놓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너무 당연한 소린가? 당연한 소리가 맞다. 왜 이런 당연한 소리를 하는지에는 약간의 이유가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런데 한때 엄청나게 각광받고 인기를 끌던 소위 '자기계발'류의 책들이나 개인의 사고와 시각을 바꾸어 성공적인 인생을 지향하게 하는 책들에 대해 지나치게 냉소적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냉소적인 태도에도 이유는 있다. 그 이유들 중 간과하지 말아야 할 포인트 하나는, 위에 언급했던 류의 책들이 주장하는 바에 매몰되면 사회나 국가가 져야 할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불행한 것은 바로 당신 탓이야, 당신이 가난한 것도 당신 탓이야 ' 하다 보면 정말 모든 게 내가 잘못되어 그런 것으로 생각하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하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견지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적 시각의 필요성에 동의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개인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큰 주체는 바로 개개인 자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시중에 어쭙잖은 자기계발 관련 서적이나 개똥철학을 담은 허접한 책들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책들을 너무 쉽게 싸잡아서 비판하고 경시하기보다는 그 가운데에서도 자기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취하고 지금의 어려움을 벗어날 지혜와 조언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책들의 제목을 밝혀서 말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모두의 기호와 선호도가 너무 남달라서 여기서는 굳이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달리 책에 대한 시각과 선호도 차이로 인해 불필요한 논쟁이 될 것 같아서이다.


  그리 굴곡 있는 삶을 살아오지 않다가 중년이 되어서 제법 힘든 시기를 거치게 되었다. 그 시기에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신앙과 친구(내 친동생을 포함하여) 그리고 책이었다. 방황하던 나였지만 매주 성당을 힘들게 나가며 절대자에 기댈 수 있었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오랜 친구들은 무조건적인 내편이 되어 주었다. 한편 그 시기에 읽었던 거의 모든 책들은 다른 시기였다면 다르게 느껴졌을 의미로 나를 구원해 주었다. 어쩌면 그 책들 가운데는 사람들에게 쉽게 평가절하되는 자기계발서나 성공학 서적 혹은 자기변화에 초점을 둔 책들도 있었던 것 같다. 비판은 쉽고 멋져 보인다. 비판하는 분위기에 너무 편승하지 말자. 그 중심에 내 생각이 없다면 나는 잘못된 편에 서 있는 것일는지 모른다.


  이번 글은 쓰면서 제목을 수시로 바꿨다. 어디 하나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이 생각 저 생각이 나서 글의 흐름이 왔다 갔다 했기 때문이다. 그저 이런 부족한 나의 글에서도 읽는 이들이 자기에게 맞는 것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머리 깎으려다 산책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