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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ul 16. 2016

어제 만난 그분 - 2편

 내가 가지 못하자 나를 찾아오셨다

* 어제 만난 그분 1편 링크

https://brunch.co.kr/@ndrew/72


키타큐슈 와카마츠항구


 그렇게 오전 비행기를 놓친 나는 서툰 일본어로 실랑이를 벌인 끝에 다른 항공사 비행기로 몇 시간 뒤에 탑승할 수 있었다. 물론 그날의 미팅 약속은 지킬 수 없었다. 다행히 동료 한 명이 하루 먼저 서울에 도착해 있었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동료커버해 주다.


  그날의 공식적인 미팅 뒤에 개인적인 약속이 하나 더 있었다. 늦어진 일정은 마치 이 약속을 위해 마련된 것 같았다. 일로 만나는 미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이 두 번째 약속 시간에 댈 수 있는 비행기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서 한국어를 연구한다는 한 밴드에 가입하게 되었다. 일본에 온 지 2년 여 되었을 때 즈음이다. 일어도 좀 배우고 싶고 일본 사람들과도 온라인으로 교류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곳에는 한국에 관심이 많은 수많은 일본 사람들과 일본에 거주하는 많은 한인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만나기로 했던 사람은 거기서 알게 된 한국인 일본 유학생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뜻한 바가 있어 일본 오카야마라는 곳으로 유학을 갔다고 한다. 온라인에서 보던 그의 글과 분위기는 아주 명랑하고 밝은 대학생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지향하는 삶의 중심은 명명백백해 보였다. 자신의 프로필 사진과 소개글에 그것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 전에 졸업을 하게 되었고 귀국을 했는데 마침 서울 출장이 잡힌 나는 서울에서 그와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게 됐다.

  


왜 영화를 보자고 했을까?


  그는 처음 만남부터 같이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했으며 자기가 예약을 하겠다고 했다. 영화를 보면 이야기할 시간이 적어질 것 같은데 괜찮겠냐고 하자 그는 영화를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에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고 했다.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고 그의 말도 일리가 있어 흔쾌히 그러자 했다.


  막상 당일 알게 된 영화의 타이틀은 '부활'이었다.  

영화관 속은 자리가 듬성듬성 많았고 아직 퇴근 시간 전이라 한산한 분위기였다. 종교와 관련된 영화임을 알게 되자 조금 긴장이 되고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이 사람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마음속에 의문과 호기심이 섞였다.


  온라인에서 이미 그가 독실한 크리스천임을 알고 있었던 나는 우리의 만남이 신앙을 주제로 이어질 것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와 만나기로 했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 비슷한 심적 상태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만남부터 임팩트도 강하게 종교 영화를 함께 보게 된 것이다.


  서 오래전 보았던 다른 영화가 생각났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개인적으로 그 영화를 보면서 영화관에서 너무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의 내용과 영상 때문에도 감정이 벅차올라 울었고, 울다가 나 자신이 서러워 더 울어 버렸던 그때. 누군가 그랬다. 깊은 울음 끝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 자리잡고 있다고.


  이번 영화 부활은 그때처럼 감정에 흠뻑 젖지는 않았다. 대신 이전의 영화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는 전개에 흥미가 느껴졌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하는 실무를 담당했던 호민관 하나가 나온다. 예수를 부정하던 사람들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인 로마군 호민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 호민관은 뜬금없게도 대기업의 유능한 젊은 간부 혹은 전도유망한 팀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끊임없이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오늘날의 직장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편 호민관의 상관인 빌라도는 일 잘하는 부하를 계속 꼬드기고 부려서 자신의 출세를 도모하려는 대기업의 임원 같은 인상을 받았다.


  영화 이야기를 깊이 하려는 게 아니라서 여기서 그치고.


토바타 성당 내부


  왜 그가 첫 만남부터 이 영화를 내게 보여준 걸까. 그는 내게 자기가 읽었던 책을 몇 권 선물로 주었는데 모두 '부활'에 관한 책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진 그와의 긴 대화 속에서 느껴진 바로는 그의 신앙의 핵심이 바로 '예수의 부활'이었다.


  그리스도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인 지 1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가만히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심스레 자신의 믿음을 밝히는 이 젊은이. 혹시나 자신의 짧은 신앙의 역사가 모태신앙을 가진 손위의 천주교 신자에게 과연 의미를 전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조금 저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지극히 인간적인 망설임은 잠시에 지나지 않았다. 이내 그는 확신에 차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하곤 했는데, 자기가 느끼고 있는 뜨거운 것을 한 번 만져 보라고 내게 건네주는 것만 같았다. 참 오랜만에 그렇게 뜨거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한때는 매우 뜨거웠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이 만남이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큰 눈망울에 생글거리는 미소가 아름다웠던 그는 예수를 만나기 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우울한 감정은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게 만들 정도였고 상당히 오랜 시간 어떻게 손써볼 수 없을 만큼 삶을 파괴했다. 그렇게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이 힘들었던 나날에 누군가에 이끌려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예수를 알게 되었고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엄청난 사건의 의미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의 세계는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인간적인 어려움들이야 주기적으로 일어나고 마음을 쓰게 되지만 예수와 함께 하는 삶은 더 이상 우울할 수가 없었다. 우울함을 벗어나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가 충전되는 경험을 하고 있으며, 그런 기쁨을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어쩌다 이런 만남이 가능하게 되었는지를. 생판 본 적도 없는 사람을 만나 첫날부터 영화를 보고 처음 만나서 나눈 이야기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사함을 저 밑바닥에서부터 느끼게 되었는지를.


  그것은

  그것은


 주님의 방문이었다.
 ...
 나를 기다리다 못해 나를 찾아온 그분과의 만남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식어 버린 내 마음을 그분은 안타까워하셨다.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그렇게도 뜨겁게 함께 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냉랭하고 무덤덤한 마음으로 변해버린 걸 그분은 알고 계셨고 슬퍼하셨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이혼을 했기 때문에 교회법에 따라 성체를 모실 수 없는 상황이다.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부터 성당을 매주 나가고 성가대며 전례부며 주일학교 교사까지 하면서 신앙이 삶의 일부가 되었던 내가 이제는 보통 신자들처럼 성당에 다니지 못하게 된 것이다. 미사 시간에 다른 신자들이 성체를 모시기 위해 일어나 줄을 설 때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안타깝게 주님의 몸을 모시는 다른 신자들을 바라만 봐야 했다.


  언제나 당당했고 자신감에 차 있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일 수 없었고 신앙생활이 기쁘지 않았다. 이대로 신앙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 회의가 들었으며 일상의 삶 안에서의 태도에도 적지 않이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분은 나를 그대로 두지 않으셨다. 내가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 할 때마다 손을 내밀어 주시는 것을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이 만남도 역시 그러한 손길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하늘에서 치러지는 천사와 악마의 전쟁


  가깝게 지내는 친구 가족들이 있다. 우리나라에 두 가족들, 태평양 건너편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이 얼마 전 이곳에 뜻깊은 발걸음을 해주었던 어느 날 밤. 한 친구의 부인이 말해 주었다. 믿는 자를 유혹하고 지키기 위해 하늘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지는데 바로 천사와 악마의 전쟁이라고 했다. 믿음이 깊은 사람에게는 더 많은 천사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데 이런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탄의 군대가 말을 타고 쳐들어온다고. 그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와 사탄의 전쟁이 벌어지는 거라고.


  그렇다면 이 못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해서 천사들은 얼마나 힘들게 싸우고 있는 걸까. 그렇게 쉽게 유혹에 빠지고 그렇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같은 내 얕은 믿음 때문에 나의 수호천사는 얼마나 고된 싸움을 하고 있는 걸까.


  언제가 되어야 나의 믿음이 충분히 굳건해져 천사들을 지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평생 그 흔들림이 잦아들지 못할는지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분이 나를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나를 붙들어 주시는데 내가 어찌 계속 실망만 안겨 드릴 것인가.


  며칠 전 그의 근황을 듣게 되었다. 그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있다고 했다. 여전히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생활하고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옳은 길이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를 통해서 예수를 만나게 될까. 다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그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그 기도는 또한 나 자신을 위한 기도가 될 것이다.


키타큐슈 북쪽 해양공원
후쿠오카 노코노시마의 해질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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