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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ul 16. 2016

우연히 다시 마주친 추억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저는 얼마 전에 서울로 출장을 갔었습니다. 휴대폰 알림이 울려 보았더니 어린 시절 성당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딸 셋 중 막내였는데 제일 큰 언니는 제 주일학교 선생님이시기도 했습니다.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을까 생각해 보니 부산에서 군대 생활을 할 때, 그러니까 약 19년 전쯤 성당 친구들이 부산으로 놀러 왔을 때 만난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중학교도 같았습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여자 아이가 달리기도 빠르고 공부도 잘 했었지요. 게다가 눈이 이뻤답니다. 언니들이 둘이나 있어서 그런지 또래보다 조숙했고 당시 유행하던 광고 게임이나 고 백 점프와 같은 게임을 할 때도 남들 다 틀려서 벌칙을 받을 때 여간해서 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지요.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된 것이. 학교에서 성당에서 계속 그 친구와 만날 기회가 많아지면서 점점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갔답니다.


  사실 편지도 써 보고 선물도 전달해 보고 나름대로 좋아하는 마음을 많이 표현했었습니다. 그 당시엔 누군가를 일대일로 사귄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던 시절입니다. 물론 일부 잘 나가는 친구들은 어른들처럼 이성친구를 사귀기도 했지만요.



  사춘기 시절 약 5년 간을 해바라기처럼 그 애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대학만 가면 정식으로 사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말입니다. 하지만 성당 친구들이 대입시험을 다 치르고 한 친구의 집에서 올나잇을 하며 놀던 어느 날 알게 되었지요. 그 애한테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요.


  그때의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화가 좀 나는 것도 같았고, 심장이 아픈 느낌인 것도 같았고, 무언가 좌절스러워 온몸에 힘이 빠졌고 아무튼 한두 가지 감정이 아니라 오만 감정들이 얽혀 열아홉의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휴대폰 알림을 받고 저는 또 다른 성당 친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함께 문상을 가지 않겠냐고 말이죠. 친구는 오겠다고 답했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제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을 그 친구.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하며 가톨릭의대 영안실로 향했습니다. 저뿐 아니라 이 친구도 오래전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살았기 때문에 19년 가까이 직접적인 연락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연락을 받고 급히 귀국을 했던 참이었죠.


  제 주일학교 선생님이시도 한 친구의 큰언니와는 올해 페북으로 연락이 닿아 최근 근황을 알 수 있었는데 거기서 파도를 타고 친구의 아버님 페이스북까지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교 강단에서 은퇴하시고 화초를 가꾸시는 즐거움을 사진과 글로 올려 주셨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었습니다. 이 짧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결국 일어나 버리더군요.


  소복을 입은 친구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친구는 해외에서 오래 살아 연락이 많이 끊겨서인지 큰언니 선생님처럼 성당 사람들에게 따로 연락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당 친구는 저와 제가 부른 다른 친구 둘 뿐이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갔던 날은 그랬습니다.


  아버님 영전에 국화꽃을 바치고 향불을 하나 피워 올렸습니다. 친구는 많이 울었는지 눈이 부어 있었지요. 오래 시간이 흘렀지만 어린 시절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친구와 함께 했던 성당과 중학교 시절의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마음이 더 아팠을 것 같았습니다. 막내딸은 십수 년 동안 해외에서 공부하고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마도 고국에 계신 부모님을 자주 뵙지는 못했을 겁니다.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을 그 친구는 돌아가신 아버님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음에 가슴 아프고 서러웠을 겁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손님들이  계속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마음은 있었지만 인생의 커다란 아픔의 순간에 우연한 기회였지만 어릴 적 친구로서 잠시나마 함께 하여 작은 위로를 줄 수 있었음에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또 얼마나 세월이 흐르면 다시 만나 지난날들을 추억할 수 있을까요. 그 친구가 저를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제 입장에서 그냥 이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그 친구에게 있어 저라는 사람의 의미는 제가 그 친구를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테니까요.

    

   아버님, 천국에서 평화로이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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