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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Nov 05. 2016

에메랄드빛 연못
벳부벤텐이케(別府弁天池)

야마구치 미네시를 가다

Title Photo :  김시현 작가님 (Sony)


 후배가 말했다. 키타큐슈에서 이 연못만을 보기 위해 90여 킬로미터를 차로 달려가기는 조금 그렇다고.


 문화의 날이라는 일본의 한 공휴일을 이용해 가족들과 어디를 가볼까 생각하다가 후배가 얼마 전 보여 주었던 에메랄드빛 연못이 떠올랐다.


 후배의 저어하는 표정이 생각났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그 강렬한 빛깔을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는 맑은 열망이 발길을 정해 주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자 93km가 찍혔지만 이제 이 정도 거리는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올해 차로 키타큐슈에서 도쿄까지 편도 1,100km, 왕복 2,200km의 거리를 출장으로 이미 정복한 바 있기 때문이다.


카르스트 지대 '아키요시다이'에서 점프샷

 하늘에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구름들이 여백의 미를 살리며 재치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며칠 전 비가 흠뻑 적시고 간 후의 하늘빛은 이 가을의 이름에 전혀 누가 되지 않을 만큼 파랗고 파랬다.


  약 한 시간 반 만에 도착한 야마구치현 미네시의 풍경은 여느 한적한 시골 마을의 모습이었다. 연못의 주소를 정확히 몰라 대충 근처의 미술관을 찍고 왔는데 기대와는 달리 바로 벳부벤텐이케를 찾아내지 못했다.


 차로 어슬렁거리며 인근을 돌아다니는 중에 아내가 구글링을 하더니 목적지를 찾아냈다. 역시 검색의 달인이다. 일어는 아직 좀 서툴지만 이 여인은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에 엄청난 재능을 보이곤 한다.


 후배가 연못 하나는 볼 만하지만 그 주변은 그리 주목할 것이 없다고 했었다. 괜히 내가 후배의 말을 듣고 무작정 찾았다가 후회할까봐 조금 걱정해서 그리 말한 것일 테다.


드디어 벳부벤텐이케 입구에 도착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맞아 주었는데 그 물이 마치 정수기 물을 부어 놓은 듯 깨끗하고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데 놀랐다.


 연못으로 들어가는 물줄기 바닥은 붉은빛이 서려 있었다. 어쩌면 가을의 단풍잎들이 떨어져 물을 들인 건가 싶었다. 하지만 아직 이곳은 단풍이 들지 않았다.

 

 오솔길을 따라 연못으로 올라가자 붉었던 물빛은 갑자기 푸른 빛으로 바뀌었다. 아니, 바다색이 이렇게 청록색으로 빛나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어찌 민물이 이렇게 오묘한 색을 띠고 있는 걸까.


 고려청자를 곱게 씻어내면 이렇게 물이 빠질까.
푸켓 피피섬의 바닷물을 길어다 살포시 채운 걸까.
구채구의 코발트물빛을 몇 덩이 떼어다 놓은 건 아닐까.


 후배의 걱정 어린 말은 그야말로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 나는 연못 주위를 360도로 돌며 연신 그 신비스런 자태를 카메라에 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마침 그곳에 함께 있던 흑인 여성 두 분도 연못의 아름다움에 취해 가벼운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그들에게 "비유우리풀!! Beautiful!! Isn't it?" 하며 소리치며 동의를 구할 뻔했다. 만일 실제 내가 그렇게 소리쳤더라면 그 여인들은 틀림없이 환하게 웃으며 "Yes~~~~ It is so beautiful!!"이라 응답해 주었으리라.


Photo : 김시현 작가님
Photo :  김시현 작가님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이런 고요함과 맑음의 공간으로 많은 이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이 너무 힘겹고 숨가쁜 이들이 많다. 과거에 내가 꼭 그랬던 것처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그 일상의 쳇바퀴. 비록 지금 완전한 탈출이 요원하더라도 가끔씩은 자신을 옥죄고 밑으로 잡아끄는 그곳으로부터 공간이동해 제대로 숨을 쉬고 눈을 편안히 할 수 있다면...


 삶의 관성은 생각보다 힘이 어마어마하고 세다. 무수히 많은 순간에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욕망하곤 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실행에 옮겨지질 않는다. 하던 걸 계속 하게 되고 걱정은 계속 이어진다. 단 한 번 끊는 것이 그리도 어렵다.


 친구들이 그리운가 보다. 이런 좋은 걸 보면서 자꾸 두고 온 지인들이 생각나는 걸 보면...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며 살고 싶다.  


 오늘은 글머리가 삼천포로 빠지는구나.


Photo: 이훈주
*야마구치현 벳푸벤텐이케(別府弁天池) 가는 길
^주소:山口県美祢市秋芳町別府水上(야마구치켄 미네시 아키요시마치 벳푸미즈카미)
^교통편:JR신야마구치역에서부터 버스로 30분, 미네 IC에서부터 차로 20분

* 혹시 이런 연못의 신비스런 빛깔에 매료되어 직접 경험하고 싶다면, 이곳 '벳부벤텐이케'보다 규모가 더 크고 여러 곳의 진기한 볼 것들이 한데 모인 곳이 있다고 후배가 추천해 주었다. 만일 관광으로 해외에서 일본으로 들어온다면 야마구치 현보다 도쿄 쪽으로 오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후지산 근처의 '오시노하카이'를 추천한다.


*忍野八海(おしのはっかい오시노하카이) 후지산 근처 용천수 연못이 모여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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