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rse of Love
우리는 삶의 중요한 영역들(국제무역, 이민, 종양학 등)에서는 복잡성을 감안하고, 이견을 수용하고 참을성 있게 해결해나간다. 그러나 가정생활에서만큼은 치명적일 정도로 안이한 가정을 세우곤 하며, 이 때문에 협상이 오래 걸리는 데 대해 날카로운 반감이 생긴다. 욕실 관리를 두고 꼬박 이틀간 정상회담을 하는 건 너무 유별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집에서 정확히 몇 시에 출발해야 하는지를 정하기 위해 전문 중재인을 고용하는 건 분명 터무니없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의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中에서 -
책을 사면 표지와 표지 안쪽에 알랭 드 보통의 사진이 보인다.
'닥터 러브'라는 별명까지 얻었다는 이 유명한 작가는 의외로 윗머리가 휑하고 양쪽 옆에만 숱이 나 있다. 그런데 얼굴은 뽀얗고 꽤나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하고 있다. 나보다 네 살이나 많은데 대머리임에도 무척 어려 보인다. 또한 대단히 지적인 눈매를 하고 있다.
보통이 풀어가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 속의 남자 라비와 여자 커스틴의 만남과 연애 그리고 결혼 생활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작가의 사랑에 대한 시선과 생각이 얼마나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지 문장 하나하나를 읽어내려갈 때마다 작은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작가는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궁금해 하지만 정작 만나고 나서의 이야기나 결혼 후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나 진짜 '러스 스토리'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역설한다.
라비는 이런 사건에 흔히 선행하는 무의미한 말들을 지어낼 힘이 바닥이 났다. 그래서 오만하거나 자격이 있어서라기보다 될 대로 되라는 조급한 심정으로, 안내문을 읽고 있는 커스틴의 말을 중간에 끊고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끌어와 부드럽게 입을 맞춘다. 그녀는 그의 입술을 받아들이며 눈을 감고 두 팔로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는다.
이 장면은, 남자 주인공 라비가 여자 주인공 커스틴을 일 관계로 만나서 알고 지내다가 처음으로 사적으로 만나 식물원에서 데이트를 할 때 일어나는 이야기다. 데이트는 처음이라고 했다. 처음! 그런데 이런 장면이 현실에서 일어난다.
내가 보기에 라비는 절대 카사노바와 같은 기질을 가진 사내가 아니다. 꽤 오랜 시간 솔로로 지내다가 가깝게 지내던 지인 커플이 살갑게 목도리를 매어 주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솔로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로맨스의 시작은 이토록 감미롭고 달콤하다. 그러니 모두들 커플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건 당연하겠다.
(인생은 짧고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수히 많은데) 이케아 통로에 서서 어떤 잔을 구입할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다투다 점점 더 어짢아하고 급기야 다른 쇼핑객들의 주의까지 끄는 건 완전히 시간낭비라는 걸 둘 다 똑같이 의식하면서도, 그들은 이케야 통로에 서서 어떤 잔을 구입할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다툰다. 20분 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보같다고 힐난한 뒤 구입하 뜻을 접고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이 부분을 읽다가 내 지난 에피소드들과 지금도 심심치 않게 겪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떠올리며 공감 또 공감!
이 커플은 잔의 디자인과 색감의 문제로 살짝 이견을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의 의견이 어처구니 없게 느껴지고 쓸데없이 고집스럽다고 생각한다. 급기야 물건 사는 일은 없던 일이 되고 마음속은 뒤집어질 만큼 다 뒤집어진 채 자리를 떠난다.
자, 어떤가! 익숙한 풍경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만일 이런 장면이 낯설게 느껴지는 당신이라면 당신은 정말 이상적인 사랑을 혹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거나 사랑을 아직 제대로 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저자의 문장은 현대의 수많은 유명 소설가들 가운데서도 만연체의 문장을 많이 구사하고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에너지가 퍽이나 들어가는 편에 속하는 것 같다.
많은 부분 내 지력의 부족함에 기인하겠지만 알랭 드 보통보다 쉬운 문장으로 작품을 쓰는 소설가들이 많은 건 사실일 거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은 거부감보다는 흥미로움과 감탄을 자아낸다. 사랑에 대해 풀어가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 경우에 혹은 많은 남녀들에게 무엇이 문제였는지 짚어보고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경험하게 해주는 느낌이 든다.
가정생활과 국제회의는 무척 다른 성격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국제회의는 아주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토론하고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고 교섭해 나가야 하는 일들이라고 생각들 할 것이다. 그러나 내 남자 혹은 내 여자와의 이슈들은 그런 공을 매번 들여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아니 왜 그래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연애할 때는 별 문제도 없이 행복하기만 했던 것 같이 생각된다. 결혼과 함께 내 로맨스는 끝이 나고 나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챕터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이 맨질맨질한 머리의 미소년 비슷한 이목구비를 지닌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걸 더 들어보고 싶다. 머리가 아주 비상한 사람인 것 같다.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1969년 스위스 취리히 태생. 역사학을 전공하고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철학 박사 과정을 이수하던 중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한 소설들 - 스물셋에 발표한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필두로 - 로 전세계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킴. '닥터 러브'라는 별명까지 얻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