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서다

현영의 일본 방문

by 안드레아
이 글은 바다에 지는 별 작가님과 공동 연재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한동안 제가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네요. 부족하지만 저도 다시 힘을 내서 바다에 지는 별 작가님의 보조를 맞춰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시어 감사합니다.



# 그녀의 일본 방문


어떻게 하면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녀를 더 즐겁고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


그녀가 온다고 하기 전까지는

보여 주고 싶은 풍경도 함께 가고 싶은 장소도

정말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도쿄나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로 여행을 갈까. 도쿄 신주쿠나 시부야 거리를 혹은 오사카 도톤보리 거리를 둘이 손잡고 헤매어 볼까. 맛있는 것도 사 먹고 근사한 곳에서 와인도 한 잔 하면 좋겠지. 여자들은 아무래도 쇼핑할 수 있는 곳을 좋아하지 않을까.


음... 아니 아니.. 그런 데가 서울과 무에 그리 크게 다를까.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온다고 하는데 복잡한 도시 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을까. 쿠마모토나 벳부 혹은 유후인의 한적한 온천지로 안내하는 건 어떨까. 그간 마음고생을 많이 해 심신이 지친 그녀에게 스스로를 차분히 다스릴 시간을 줄 수 있지 않겠나.


그저께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은근슬쩍 다시 일본으로의 여행을 권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간접적으로 또한 대놓고 놀러 오라고 줄기차게 이야기를 꺼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현영은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 마지막 연락에서는 오히려 현영이 내 눈치를 살피며 요새 일이 많이 바쁘지 않느냐는 둥 자기가 한숨 돌려서 여유가 생겼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꺼내길래 이때다 싶었다.


"아, 그러면 방법이 없네.

오셔야겠네요.

여기 오셔서 온천도 하시고 쇼핑도 하시고

맛있는 거 나랑 먹으면서

묵은 이야기 안주삼아 술잔 기울이면서

며칠 보내는 수밖에 없네요!"


그녀는 "와하하" 하고 밝게 웃으며 긍정의 신호를 보내 주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길로 직진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했고

그녀의 방문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많이 말하지 않았지만 전화기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와 숨소리는 내게 그녀의 표정과 마음까지 고스란히 전송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녀가 온다.

내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어가고 있는 이곳으로

내가 새로운 사랑의 씨앗을 심어놓은 그녀가 오겠다는 거다.


# 후쿠오카 공항 가는 길


마음이 들떴다. 고속도로에서 앞지르기를 계속 시도하며 급히 차를 몰아 공항으로 향했다. 보통 65km 정도의 거리를 한 시간 십 분 정도에 주파하는데 이 날은 시속 130km에서 160km를 오가며 과속을 감행했기 때문에 더 빨리 도착하리라 예상했다.


후쿠오카 도시고속도로에 들어서기까지 빠르게 달려왔기 때문에 일찍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미리 가서 그녀를 맞이하리라. 낮에 준비한 붉은 장미 꽃다발이 뒷좌석에서 물기를 머금은 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공항 도착 출입구가 열리며 그토록 기다리고 그리워했던 여인이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올 것이다. 그녀만이 가진 눈웃음이 오늘 저녁엔 현실이 될 것이다. 내 눈앞에서.


비 화면에 남은 거리가 13km로 찍혀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차가 움직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빠르게 달려온 것이 무색하도록 도시고속도로는 수많은 차들의 행렬로 긴 꼬리를 만들고 있었다.


"아, 젠장! 이거 뭐야. 왜 차가 움직이질 않아!"


여인의 드라이한 목소리는 이 혼잡한 지역을 통과하기 위해서 30분이 걸릴 거라고 무심히 말했다. 통과하는 데만 30분이라면 다시 막히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50분은 걸려야 도착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간당간당하다. 그녀가 도착해서 나오는 시간보다 늦을 것 같았다. 마음이 점점 초조해져만 갔다.


30분이 흘렀다. 하지만 차는 말 그대로 소화불량에 걸린 것처럼 꽉 막혀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몇몇 운전자들은 아예 문을 열고 나와서 담배를 태우기도 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사고가 난 것 같았다. 그것도 큰 사고가 말이다.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그녀에게 30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했다. 일찍 출발했는데 후쿠오카 시내로 들어서면서 막히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사고가 났는지 차가 아예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고 썼다. 미안하다는 표정과 함께.


그토록 가볍고 설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조초함과 조급증으로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고 답답했다. 이런 마음으로 현영을 만날 수는 없었다. 처음 나를 만나러 오는 그녀인데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되고 있는지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는 건지.


다시 문자를 보냈다.

<현영 씨, 너무 미안해요. 도착해서 공항 로비서 조금 기다려 줘요. 많이 늦어질 것 같아요. 대신 제가 오늘 저녁 근사하게 모실게요. 아, 이렇게 현영 씨를 맞이하려고 한 건 아닌데... ㅠㅠ>


현영은 이미 도착해서 수속을 마치고 나와 있었다.

<명진 씨, 괜찮아요 ^^ 저 여기 안에서 둘러보고 있을게요.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요. 늦어도 되니까 조심운전! 찡긋>


시간은 야속하게 흘렀고 미안한 마음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나중에는 문자도 보내지 않았다. 결국 금요일 저녁의 무자비한 정체를 뚫고 도착한 것은 그녀가 도착하고 한 시간 반이 지난였다.


공항 주차장에 들어선 후 보이는 공간에 대충 차를 쑤셔 넣고 뛰기 시작했다. 숨이 차도록 한달음에 달려 공항 로비에 들어서며 눈은 필사적으로 그녀를 추적했다. 도착 입구 게이트로부터 시작해 주변을 360도 스캔해 나갔다. 오른쪽 편의점 부근까지 레이다망이 넓혀지려는 순간 손에 캔커피를 들고 편의점을 막 나서는 한 여자가 포착되었다. 내가 그녀를 포착하는 순간 나도 그녀의 눈에 발각되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어수선한 후쿠오카 공항 로비를 가로질러 공중에서 부딪혔다. 푸른 선과 붉은 선이 맞닿았고 이내 보랏빛으로 변해버렸다.


성큼성큼 다가갔다. 사람들을 뚫고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마침내 닿았다.

그리고 그녀를 안았다. 그녀가 수줍은 듯 팔을 모았다. 하지만 그냥 안기로 했다.


" 너무 미안해요. 이렇게 맞이하려고 한 게 아닌데.. "


" 아이, 자꾸 미안하대! 그러지 말아요. 난 여기서 사람 구경에 공항 구경에 시간 잘 보내고 있었어요. "

서로 포옹을 한 채 오늘 대본에는 없었던 대사들이 오고갔다.


거기서 그렇게 더 오래 안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빨리 그녀에게 무언가를 먹게 해주어야 했다. 아까는 마음이 급해서 뒷좌석에 둔 장미 꽃다발도 잊고 뛰어왔다.


주차장으로 향하며 한 손으로 그녀의 캐리어를 끌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걸었다. 한국에서는 손 한 번 제대로 잡지 못했지만 포옹으로 시작한 공항에서의 만남이 자연스레 손을 잡도록 해 준 것 같았다. 그녀의 손을 잡기까지 대체 얼마나 걸린 걸까. 마치 가벼운 깃털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 무언가가 내 안에 바람을 빵빵하게 집어넣어 몸이 부풀어 오른 것 같은 느낌. 아, 뭐지? 이런 느낌 얼마만인 거야.

(계속)



*전편 보기 (전편 글쓴이: 바다에 지는 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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