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소중했던 순간들

by 안드레아
이 글은 '바다에 지는 별' 작가님과 공동 연재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뭘 제일 먹고 싶어요?" 내가 그것이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묻는다.


"응, 글쎄... 뭘 먹으면 좋을까요? 헤헤." 얼굴 한 가득 생글거림을 지으며 그녀가 되묻는다.


"여기 오기 전에 뭔가 생각한 거 혹은 기대한 먹거리 없어요?"


"없어요! 헤헤." 망설임도 없이 그녀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눈가에 살짝 애교살 같은 것이 접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하이쿠. 없다구요?" 그녀의 말에 대응을 하고는 있지만 뭔가 지적인 대화가 이어질 것 같지가 않다.

왜냐하면 온 신경이 그녀 입술의 움직임, 속눈썹의 깜빡임, 보조개의 순간적인 출현, 앞머리칼의 흘러내림, 귀걸이의 작은 진동, 아담한 이마의 살랑임, 까만 눈동자 속에 빛나고 있는 세계에 흠뻑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우동 먹으러 갈까요?"


"우동이요. 담백한 우동이요!"


현영이 반복해서 말했던 것은 내가 잠시 멍해져 그녀의 말에 대꾸를 못했기 때문이다.


"에이! 우동 먹으려고 일본까지 왔어요?" 차마 그녀에게 방문 첫 끼니로 우동을 권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금 그게 먹고 싶네요. 제 입맛이 좀 촌스럽죠?"


"아우, 먹을 게 많은데 고기, 회, 초밥, 꼬치구이, 장어덮밥, 모츠나베(내장전골) 등등"


"내일부터 먹으면 되잖아요. 오늘은 간단하게 담백한 우동 먹고 우리 일찍 쉬어요."


잠시 후 그녀를 데리고 당도한 곳은 후쿠오카 시내를 가로지르는 운하가 있는 곳이었다. 언뜻 보면 강처럼 보이지만 실은 바닷물이다. 시내 한가운데 그런 커다란 수로가 뚫려 있다. 운하 양쪽으로 각종 레스토랑과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다. 급히 근처 우동 체인점에 들러 현영과 나는 각각 미역우동과 우엉우동을 시켜먹고 식당을 나섰다. 너무 소박한 저녁을 먹었지만 그래도 배를 적당히 채운 둘은 쇼핑몰 커낼시티에서 가까운 운하변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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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여기 참 이뻐요~~~"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정말 기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죠 여기?" 그녀가 좋아해 주는 것을 만족스럽게 여기며 물었다.


"네, 밤풍경이 너무 이뻐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후쿠오카에 오면 이곳에들 많이 들른다고."


"네, 맞아요. 특히 이 근처에 쭈욱 늘어선 포장마차엔 손님들이 많아요. 저기 보세요. 포장마차 앞에 줄서서 기다리고 있잖아요. "


"어, 진짜네. 뭐, 맛난 거 있나봐요?"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그녀가 줄선 사람들과 포장마차들을 쓰윽 훑어보았다.


사실 이곳 운하변 포장마차에서 파는 것들이 일반 음식점들에서 제공되는 것들보다 아주 색다르다거나 맛이 월등히 좋은 건 아니다. 역시 이곳 도심 속 운하가 가지는 특별한 경치, 특히 야경이 사람들을 끄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포장마차에 한 번 들어가 보겠냐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대신 맥주 한 캔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를 샀고 우리는 출렁이는 물에 비친 그곳의 밤풍경을 바라보며 건배를 했다.


"명진씨, 새로운 곳에서 사는 거 재미있어요?" 그녀가 반대편 이자카야 테라스를 바라보면서 넌지시 물었다.


"글쎄요. 일단 적응은 잘 하고 있어요. 모든 게 새롭지만 지금 내겐 이 새로움과 분주함이 약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명진 씨처럼 모든 걸 새로 시작하고 싶어요. 부러워요." 여전히 눈은 앞에 펼쳐진 야경을 응시하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현영씨, 회사일도 힘든가요? 애기 아빠와의 일은 당연히 많이 힘들었을 거고 그 때문에 너무 지쳤다는 거 알아요. 회사일이 힘들면 좀 쉬고 다른 걸 계획해 보면 어때요?"


"다른 거? 다른 거 뭐요? 헤헷" 그녀가 차분하고 힘 빠진 모습에서 갑자기 얼굴을 바꾸더니 고개를 돌려 웃으며 내게 물었다.


"하하핫. 이거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네." 내가 말했다.


"아시잖아요. 요새 직장 그만두면 다시 찾기 힘든 거. 저도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거 해보고 싶다는 생각 정말 너무너무 많이 하고 있어요. 근데 생각만 많고 실행에 옮기기가 어렵네요. 자신도 좀 없고.

아, 이런 얘긴 나중에 해요. 이번엔 여행으로 왔으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즐기다 갈래요." 뭔가 심각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더니 이내 스스로 입을 다문다.


디저트 가게


당장 직장을 다니지 않으면 생계에 지장이 생기는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른 무언가를 계획해 보면 어떨지 하고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당장 직장을 집어치우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보라거나 무작정 쉬라는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다.


"현영씨, 전에 친구랑 디저트 가게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한 적 있죠? 혹시 구체적인 계획을 그 친구랑 얘기해 보고 있어요? 그 친구분 실제로 빵이며 디저트를 오븐 같은 걸로 자주 만들곤 한다면서요?" 예전에 서울에서 그녀와 다른 글 카페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물었다.


"와, 그걸 기억하고 있네요. 하하. 실은 그 친구가 제법 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요새는 자기가 집에서 만든 디저트를 아는 카페에다 내다 팔거나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아서 조금씩 팔고 있어요." 화제가 이쪽으로 돌아가자 현영은 화색을 띠며 한 톤 올라간 어조로 기분 좋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근데 현영씨, 그 친구 남자라면서요!"


"맞아요. 제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되게 섬세하고 마음도 여리고. 근데 아주 영리하고 재능이 있어요.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썩 잘 했어요." 친구 이야기에 신이 나서 말하는 그녀.


"잘 생겼어요? "


"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그녀의 웃음보가 터졌다.


"나보다는 틀림없이 잘 생겼을 거야."


"아후, 하하하하, 미치겠다~~~ 명진씨, 진짜 웃겨요~~~"


"잘 생긴 편이에요. 무엇보다 여자들이 좋아하게 옷을 잘 입어요. ㅎㅎㅎ "


"아, 그렇군요. 전 어떻게 입어야 옷을 잘 입는지 모르겠던데. 얼굴도 잘 생긴 분이 옷까지 잘 입고 참 부럽네요. 게다가 미혼이라 그랬죠? "


"네, 아직 결혼 안 했어요. 그리고 아마도 당분간은 결혼 안 할 거 같아요. 빵하고 디저트 만드는 데 완전 빠져서 걔네들하고 연애중인 것 같아요. "


" 여자 친구 없어요, 그분?"


" 여자 친구 없을 걸요? 제가 알기론 여자사람친구만 많아요. ㅋㅋ"


" 현영씨도 그 '여자사람친구' 중 하나군요. 근데 여사친이 여친 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


"어머 이분! 지금 질투하시는 거에욧? ㅎㅎㅎ"


질투라.. 그녀가 나의 이런 말들로 내가 질투하는 거라고 여겨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전화로 나누었던 수다를, 그녀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음성을 맞닿은 공기의 울림으로 들으면서, 그녀의 사랑스러운 몸짓과 아까운 얼굴 표정을 직접 목격하며 나누게 된 것이 무겁도록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순간 속에서.


(계속)


*전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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