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 풍경이 되다.

by 바다에 지는 별

물에 반사된 여러 색의 조명들이 참 아름답다.


시원하고 깔끔한 맛의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며 현영이 가장 좋아하는 밤 풍경 속에 명진이 들어와 있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 하는 그녀였다.


기억이란 것은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수많은 언어보다 그 날의 바람의 냄새나 하늘의 색깔, 그런 풍경 속에서 자신이 가졌던 느낌들이 깊이 각인된다.


그녀 또한 지금의 이 유쾌하고 따뜻한 대화보다 명진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이 풍경의 아름답고 아련한 느낌이 오래도록 기억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여전히 친절하고 배려심 깊으며 따뜻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 그의 마음이 너무 고맙지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걱정하고 마음 깊이 자신을 염려해 주는 것을 허락치 않았던 현영이었기에 명진이 무척이나 낯선 현영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현영 자신이 누구에게도 자신이 현실에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누군가에게 먼저 자신의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고

늘 사람들은 현영을 걱정없이 언제나 씩씩하고 용감하게 인생을 살아내는 사람으로 여겼기에

그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주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던 현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명진에게는 자신의 부족하고 결핍되어진 부분들을 들키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고 낯설은 감정인 만큼 그런 상황에 대해서 아주 잠깐 스치 듯 흘려도 명진은 모른 척하는 듯 무심하게 그런 부분에 대해 희미하게 답을 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영의 열려진 마음을 확인한 후에는 매우 조심스럽지만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삶에서 그 누군가가 자신을 걱정해 주는 일을 허락해 주는 일은 현영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낯선 일이었지만 현영은 명진의 걱정에 왠지 자신의 초라하고 불안한 미래에 대해서 더 말을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역시 아직은 안 되는 것인지 현영은 그저 울컥해져서는 밤 풍경에 집중하는 척 했다.





아직은 안된다.

그에게 부담을 지워줄 만큼 명진에게 현영이 그런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명진의 질투어린 마음과 함께 계속되는 명진의 말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나 생각은 없지만 현영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다.



걱정이란 것이 이제는 그리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만큼 많은 일들을 지나쳐 왔으니까.



현영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명진에게 말했다.


"오늘 먹은 맛있는 우동도, 밤 풍경도, 맥주도, 명진씨의 질투도 완벽히 저를 행복하게 하는 하루였어요. ㅎㅎㅎㅎㅎ 너무 고맙기도 하고, 너무 행복하기도 하고...."




명진도 함께 웃으며 말했다.


"아~~~! 이 정도로 완벽하다고 하기엔 너무 눈이 낮으신 거 아니예요? 저 생각보다 훨씬 능력있고 센스있는 남잔데?ㅎㅎㅎㅎ"




현영은 말했다.

"ㅎㅎㅎㅎㅎ알죠..그럼요..알죠...ㅎㅎㅎㅎ 그런데요..전 왜 명진씨 만날 때마다 이렇게 궁색해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되는데...그냥 너무 좋다고 하면 되는데..자꾸만 촌스러워지려고 하네요.."




명진은 큰 키로 현영의 옆 모습을 살짝 바라보다 정면을 향해 시선을 옮기고서는 현영의 손을 따뜻하게 잡으며 말했다.


"음....현영씨...우리가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을지도 몰라요. 아니...반대로 굉장히 많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그건 받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봐요. 현영씨는 제게 그래서 참 고마운 사람이고, 제가 참 좋은 사람이란 생각을 자주 느끼게 해줘요. 전 그게 참 다행이라 생각해요. "


명진의 말을 듣고서 현영의 마음은 깊이 가라앉았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마음을 읽어주는 일 자체만으로도 참 많은 위로와 힘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란 걸 새삼 느끼면서 명진의 그 포근한 마음이 고마워 반대편 손으로 명진의 손등을 덮었다.



적당한 밤 공기와 밤 하늘의 구름은 둘을 더욱 기분좋게 만들었다.



현영은 한 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명진의 턱 밑에서

그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명진씨~!! 지금 몇 시예요?"


명진이 시계를 보고 현영에게 말했다.

"8시 13분이네요. 왜요?"



현영은 웃으며 말했다.

"저 오늘 기분 참 좋아서 그러는데 씻고 나와서 2차 선술집 어때요?"




명진은 초승달처럼 웃는 그녀를 내려다 보며 비슷한 눈웃음으로 답했다.


"ㅎㅎㅎㅎㅎㅎㅎ아~!!현영씨!! 오늘 이게 마지막 코스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우리 함께 있는 시간 얼마나 기다렸는데 제가 그렇게 여유부릴 거라고 생각했다면 진짜 서운한데요? 그러기에는 현영씨 ..나 많이 기다렸는데?ㅎㅎㅎㅎ"




현영을 오래 기다렸다고 했다.

명진이.


현영은 오늘 그가 참 낯설다.

그리고 자신에게 낯선 말만 하는 그의 모습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달콤한 이 남자가 너무 사랑스럽다.



밝은 달을 올려다 보며 비스듬히 보이는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부드러워 보였고 밝은 밤 하늘은 그와 둘이 걷는 한적한 이 길이 현영에게 용기를 만들어 냈다.


마음은 그에게 진한 입맞춤을 하고 싶었지만 작은 키의 구조상 현영에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기에 현영은 양 쪽에 잡았던 한 손을 놓으며 명진의 앞으로가 그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명진의 가슴에 현영의 귀가 닿았고

그의 큰 웃음소리가 큰 고래 속의 뱃속에서의 울림처럼 크게 울렸다.



명진의 긴 두 팔이 현영의 등 뒤로 교차하고 둘은 게처럼 옆으로 걸었다.

명진이 말했다.


"ㅎㅎㅎㅎㅎ 현영씨~!! 참 저를 힘들게 하는 여자네요. 나 오늘 참 많이 참고 있는데 이렇게 갑작스런 행동은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닙니까?ㅎㅎㅎ"



현영은 그의 얇은 남방 사이로 느껴지는 그의 체온을 느끼다 말고 살짝 민망해져 몸을 떼고 말했다.


"아!! 그랬나요? ㅎㅎㅎ 아니..뭐..저는 자꾸 명진씨만 만나게 되면 자꾸 저만 생각하게 되네요. 나 이렇게 이기적인 여자 아닌데...그런데요..있죠...그건 명진씨한테도 잘못이 있다는거 모르죠?"




명진은 현영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저요? 제가 왜요? "





깊은 잠, 예쁜 꿈처럼 기분좋은 밤. 그대는 내게 완벽한 선물이 되어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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