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과 명진의 일본 여행 편
옅은 분홍의 원피쓰를 입은 현영은 호텔방의 전신거울로 옷 매무새를 점검하다 문득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고 있는 상기된 얼굴.
갑자기 현영은 자신이 없어졌다.
누군가를 향해 내달리는 마음에 갑자기 제동이 걸려 버린 것이다.
지금에 와서 안 될 이유도 없는 설익은 달달한 이런 감정이 왜 갑자기 낯선 것일까? 갑자기 두려워지는 현영의 마음을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다.
갑자기 들리는 노크소리로 생각에서 깨어난 현영은 명진의 목소리임을 확인한 후 문을 열어주었다.
"현영씨! 너무 안 내려오셔서요. 그런데..무슨 일 있어요?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
현영은 문 뒤로 살짝 물러서며 명진을 맞이한다.
"아!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네요. 시간을 안 보고 있다보니..."
명진은 현영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물었다.
"왜요? 무슨 생각을 했길래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을까요?"
현영은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음....그냥 마음이 좀 복잡해졌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낯설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어요. "
명진은 현영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기며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현영은 그저 명진의 왼쪽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모든 생각들을 멈추었다.
그가 말했다.
"현영씨~! 저는요. 현영씨가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잠시만 그런 생각 멈췄으면 좋겠어요. 그냥 우리 둘만 생각해요. 그 사이에 그 누구도 들이지 말구요. 우리가 이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접고, 기다렸는지만 생각해요. 그냥 맛있는 거 먹고, 같이 산책하고, 이야기하고, 좋은 것들도 많이 보고 그러다 가요. 지금...너무 좋아요. 현영씨가 여기에 이렇게 같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러니 그냥 우리 둘만 생각해요. 지금은. "
현영은 이마를 묻은 채 고개만 끄덕인다.
명진은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가볍게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럼...이제 나가요. 여기는 너무 위험해요. "
현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명진의 가슴에서 떨어졌다.
호텔 로비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 밤풍경은 참 따스하다. 명진 이 사람처럼.
몇 일 남지 않은 이 시간들이 기대만큼 무척이나 아쉽다.
"또~!!또~!!"
갑자기 낮은 저음의 명진의 목소리로 현영은 자신의 생각에서 깨어난다.
현영은 그저 웃을 뿐이다. 명진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분명 말을 하고 있는데 현영은 명진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만 음미하고 있다. 어쩜 저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참 의아하다.
"또~또~!! 아니~! 현영씨~!! 그렇게 안 봤는데 참 산만한 분이네. ㅎㅎㅎㅎㅎㅎㅎ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해요? 제가 지금 하는 얘기 듣고 있는 거예요? ㅎㅎㅎㅎ"
현영은 대답했다.
"ㅎㅎㅎㅎ아..그런데요. 진짜 그게 보여요? 제가 다른 생각하고 있는게? "
명진은 크지도 않은 눈을 껌뻑이며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럼..그게 안 보인다는 게 말이 됩니까? 바로 옆에서 눈빛이 달라지고 있는데? ㅎㅎㅎㅎㅎ 그렇게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자꾸 습관적으로 어딘가로 산책하시는 버릇이 있었네요. 현영씨~! ㅎㅎㅎㅎ"
현영은 미소를 띠고 지나는 풍경에 시선을 두고 말했다.
"참...좋네요. 명진씨가 살고 있는 이곳에 내가 와 있다는 것도 믿기지가 않네요. 아~!! 그리고 아까 제 방에 꽃 봤어요? 명진씨가 줬을 때만해도 시들시들했는데 아까 서너시간 나왔다가 들어가보니 장미가 얼마나 생생하고 예뻐졌는지 한참 들여다 봤어요. 어쩜 그렇게 딱 제가 좋아하는 색의 장미를 골랐어요? 꽃 선물 참 낯설지만 이런 게 사람을 설레게 한다는 걸 새삼 알겠어요. "
어느덧 도착한 레스토랑.
명진은 먼저 내려 내리는 현영의 손을 잡아 주었다. 적당한 산들바람에 하늘거리는 현영의 치마처럼 그녀의 기분도 달콤하게 살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