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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직장을 떠나면 8편

Panis Angelicus - 노래 : Andy Lee

by 안드레아

오늘 하늘에는 구름이 많았습니다.


테니스장에서 운동을 하면서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까만색에서부터 짙은 회색빛, 옅은 회색빛, 하얀 빛깔에 이르기까지 정말 각양각색의 구름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떠가고 있었습니다.


공기는 차가운데 태양빛은 제법 따사롭고 강렬했습니다. 그러니 그 빛을 받은 수많은 구름들과 하늘 그리고 지상의 집들이며 수목들은 이쁘지 않을 수가 없었죠.


오늘의 외로움은 조금 더 진한 맛이었습니다.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에 와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 느껴진 외로움은 조금 더 진한 맛이었습니다.


테니스 경기를 하는 중에는 잠시 그 맛이 잊혔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해가 길게 누어 비추는 산비탈을 바라보며 그 외로움의 맛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다시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 일본에 온 지 3년 8개월이 되어가는 시점. 일어도 제법 늘고, 일도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회사를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자의에 의한 선택이라기보다는 회사 대표와의 지속적인 갈등이 그 주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부하인 내가 사사건건 대표의 의견에 토를 달거나 회사 정책에 반기를 드는 따위의 문제는 아닙니다.


대기업에 있다가 규모가 작은 회사에 와서 일해 보니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선호도나 주관에 의해 회사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영향력을 가진 개인이란 회사의 오너 혹은 회사의 오래된 일본 임원 등입니다. 일본에 와서 아직 일본 사회와 조직이 가지는 특수성과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였는지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각 차이와 사고방식의 차이를 종종 느꼈고 그때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완곡하게 의견을 피력하곤 했습니다.


인상적인 국외자


나름 근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마도 저는 이 조직에서 상당히 다른 사람으로 분류되었던 모양입니다. 특히 대표나 임원에게 가지고 있는 생각을 큰 거리낌 없이 전달하고 때로는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대체로 좋게 인상적이었다기보다는 나쁜 의미로 말입니다.


일 년, 이 년이 지나면서 일본의 회사나 일본의 인간관계가 어떠한지 무엇이 우리와 다른지 조금씩 더 깨달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삼 년이 되어가던 시점에서 회사의 대표는 저를 따로 불러 경고를 하더군요.


" 삼 년 동안 자네를 쭈욱 지켜보고 있었어. 잘 하든 못하든 기회를 주었고 스스로 적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 노력했어.

그런데 실망이 커. 특별한 대우를 받는 만큼 특별한 성과를 내는 것 같지도 않고, 더욱이 생활면에서도 문제가 있어. "


처음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스스로를 평가하는 바와 대표의 그것은 여러모로 간극이 컸기 때문입니다.


내심 충격을 받았지만 회사의 대표였고 나이도 부모님 뻘의 인생선배였기 때문에 감정적인 대응을 삼가고자 애썼습니다.


업무 성과나 과실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대표가 과실이라고 지적한 부분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미처 그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했노라고, 이제부터는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실은 그 과실이라는 부분도 저를 포함한 경영진 몇 사람의 공동 협의의 산물이었으나 굳이 그 하나하나를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고 대표가 화난 상태에서는 어떤 이야기나 설명도 먹히지 않을 거라 예감했기 때문입니다.


생활면에서의 지적은 예를 들어 휴가를 쓰는 부분이었습니다. 처음 이 직장에 들어와서 열흘이라는 연차가 주어졌는데 이는 신입사원에게 적용되는 최소 연차 일수였습니다. 십 수년의 경력 입사자에게 같은 연차를 적용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근태 관리자에게 그 제도가 합당한 것인지 문의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대표에 의한 지시사항이었기 때문에 근태 담당자에게는 실권이 없었던 것입니다.


해외에 살면서 손님들이 하나둘 찾아오면서 하루씩 연차를 쓰다 보니 정해진 연차 열흘을 다 쓰게 되었고 어느 해는 무급 휴가까지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휴가를 쓰는 방식이 결국 문제가 되었습니다. 말단 직원도 아니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자가 너무 편하게 자주 휴가를 써버린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계속)


요즘 허하고 고민스런 마음에 평소 좋아하던 노래를 간만에 불러 보았습니다.


* Panis Angelicus(생명의 양식) - 노래 Andy Lee


https://www.youtube.com/watch?v=HUV8f1NeP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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