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로에 서서
7.
명성이 값진 향유보다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거기에 모든 인간의 종말이 있으니
산 이는 이를 마음에 새길 일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얼굴은 애처로워도 마음은 편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이들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고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은 잔칫집에 있다.
지혜로운 이의 꾸지람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자들의 칭송을 듣는 것보다 낫다.
어리석은 자의 웃음은
솔 밑에서 타는 가시나무 소리 같으니
이 또한 허무이다.
억압은 지혜로운 이를 우둔하게 만들고
뇌물은 마음을 파멸시킨다.
일의 끝이 그 시작보다 낫고
인내가 자만보다 낫다.
마음속으로 성급하게 화내지 마라.
화는 어리석은 자들의 품에 자리 잡는다.
"어째서 옛날이 지금보다 좋았는가?"
묻지 마라.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지혜는 상속 재산처럼 좋은 것
태양 아래 사는 이들에게 득이 된다.
지혜의 그늘에 있는 것은
돈의 그늘에 있는 것과 같다.
지식이 좋은 점은
그 지혜가 소유자의 생명을 보존하여
준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아라.
그분께서 구부리신 것을 누가 똑바로
할 수 있으랴?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불행한 날에는, 이 또한 행복한 날처럼
하느님께서 만드셨음을 생각하여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간은 알지 못한다.
- 코헬렛(전도서) 7장 1~14절 -
안정에서 혼돈으로
일본으로 직장을 옮긴 지 3년 하고도 8개월이 되어간다.
어제 평소보다 30분가량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에 슬며시 잠이 달아났다. 아직 세상은 어둠 속이라 더 잠을 청하고자 했으나 몸만 왼쪽 오른쪽으로 뒤척이다 결국 이불을 들추고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온돌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집안의 싸늘한 공기를 느끼며 서둘러 겉옷을 입었다.
무얼 할까 생각하다 문득 허기가 느껴졌다.
컵라면도 눈에 보였지만 사과를 택했다. 커피포트에 생수를 담아 끓이는 동안 과도를 들어 평소처럼 사과껍질을 깎았다.
네 조각으로 자른 사과를 사각사각 베어 물고는 성서를 집어 들어 식탁 앞에 펼쳤다.
최근 여행을 함께 다녀온 친구 가족이 있는데 친구의 아내가 요즘 읽고 있다며 권해 준 구약 성서의 '코헬렛(전도서)' 부분을 다시 열었다. 며칠 전 읽었던 부분을 이어 읽어 내려갔다. 지난번에는 소리를 내어 읽었는데 오늘 새벽엔 그냥 눈으로 읽었다.
'만족할 수 없는 인생'
'행복의 상대성'
'중용'
'인간에게서 찾을 수 없는 지혜'
'군주와 현인'
'채워지지 않는 정의'
'이해할 수 없는 세상사'
...
코헬렛에 씌어 있던 내용의 소제목들이다. 성서를 읽으면서 다시금 내가 처한 현실이 그렇게 생사를 오가는 절실하고 무거운 것이 아님을 인식할 수 있었다. '한 걸음 떨어져 보기'가 가능하도록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가끔은 이런 색다른 시간에 색다른 일을 해 보는 것이 한 생각과 느낌에 매몰되어 있는 나 자신을 끄집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보스의 호출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어제 회사의 오너로부터 다시 호출이 있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이런 호출이 조금 잦아졌는데, 주로 내 업무능력과 태도 그리고 급여에 대한 언급이었다. 업무능력과 태도에 관한 회사의 불만에 대해서는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실제로 처음 이야기가 나온 시점부터 지적되었던 사항들에 대해 진심을 쏟아 개선하고자 노력했고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공과 기여에 대해서는 회사, 아니 오너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지만 하나하나 따지기는 어려웠다. 그 자리는 그런 자리라기보다는 들어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내 공과 기여에 대해서는 좀 더 분위기가 좋을 때 감정이 최대한 섞이지 않은 상태에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지나와 생각해 보면 오너 사장은 무언가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할 때 바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조만간 우리 이야기 좀 하자. 내가 긴히 자네와 할 이야기가 있어."
처음에는 이런 예고에 그리 많은 감정이나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몇 번에 걸쳐 경험해 보니 언제나 이런 식의 예고는 내가 비판이나 욕을 들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작년 하반기부터는 보스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건네면 그때부터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문제가 생긴 걸까. 어떤 점을 지적하려고 벼르는 걸까.
특히 이번 호출 예고 이후에는 밤잠을 설치고 수많은 시나리오와 나쁜 예감들이 내 뇌세포 사이를 들고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사장은 나에 대한 불만들을 다소 격앙된 어조로 표현해 나갔다. 전과 비슷한 내용들이었는데 이번에는 3년 치 연차 사용 내역을 프린트해서 들고 왔다. 첫 해는 열흘, 두 번째 해는 11일, 세 번째 해는 12일의 연차를 내가 빠짐없이 다 썼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 연차 사용 프린트물을 보고 내심 ' 아! ' 하며 뒤통수를 땅! 맞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 연차를 다 쓰면 안 되는 거였구나! 나름 일본 직원들이 토요일 근무 날이나 연휴 전후로 연차를 신청해서 사용하는 걸 보고 분위기를 맞추며 휴가를 쓴다고 썼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거였다. 사실 개인적으로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해외에서 찾아와 집에서 한 시간 반 걸리는 공항에 나가고 함께 시간을 보내려면 가끔씩 연차 휴가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일 년에 십여 일도 모잘라 월급에서 차감하는 '무급 휴가'를 며칠 쓰기도 했다. 휴가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름휴가와 같은 별도 휴가는 없다. 오로지 이 연차 휴가만 사용 가능한 상황이다.
핵심은 그게 아니야!
보스로부터 이런저런 불만과 비판을 듣고 감정적으로 모욕감을 느낄 수준의 표현들도 묵묵히 듣고 있어야 했다. 이상한 것은 좀 더 어린 나이에는 '욱'하고 나올 법했던 이야기들에도 나는 잘 참고 들었다. 나이가 든 걸까. 부양할 가족들이 마음에 걸린 걸까. 아니면 내가 좀 성숙한 건 아닐까. 하하.
마지막에 가서 보스의 의중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바로 급여 삭감이었다.
실은 이 회사에 와서 기존 일본 직원들과 섞여 일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하더라도 내 위치는 쉽게 묻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경력 직원으로 온 나는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비교적 높은 직급에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조건을 알고 있는 몇몇 일본 직원들을 통해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통해 나와 다른 일본 직원들의 차이가 송곳처럼 드러나 보일 터였다.
결정권자는 처음에 회사의 필요에 의해 나와 같은 사람을 외부에서 수혈하면서 기존에 없던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그런 조건을 유지하면서 고용하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한 것 같다. 나로서는 회사에 기여하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객관적으로 고려할 때, 보스가 이렇게 나오는 것이 전혀 합당하지 못한 처사로 여겨졌으나 이것은 내 생각일 뿐, 상대는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아마추어였다. 입사하면서 제대로 된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그저 서로 믿고 일하는 걸로 기본적인 합의만 한 채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흘러온 것이다. 그러니 약속했던 조건을 회사에서 바꾼다고 할 때 내가 취할 수 있는 반응 역시 규정이나 시스템에 근거할 수 없었다. 그저 대화를 나누면서 내 입장을 전달하고 결정권자가 감정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처리하지 않도록 최대한 인내하며 의사소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과 행동을 같이!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이런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최고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좋을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상황이 바뀌자 이러한 막다른 골목 혹은 벼랑 앞에 서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요 몇 주 동안 정말이지 매일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과 지인들을 찾아 - 직접 혹은 유선상으로 -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구했다. 역시 사람들의 생각은 각양각색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냉정한 생각들은,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객관화시킬 수 있는 훌륭한 비교 대상이 되어 주었다.
지금 나는 다시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고민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잔류와 이직을 동시에 고려하며 어떤 선택을 하게 되든 최선의 결과를 맞이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는 중이다.
처음의 감정적인 동요 상태를 과감히 청산하고 두 가지 선택이 가져달 줄 나의 미래에 대해서 깊이 곱씹는 중이다. 다시 결정권자와 대면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결코 감정을 개입하지 않으려고 마인트 컨트롤을 하고 있다.
때마침 한 지인이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샘 혼 저, 영문명: Tongue Fu)'이라는 일종의 자기계발서와 같은 책을 선물해 주었는데 참으로 시의적절한 책이 아닐 수 없다.
감정에 사로잡혀 공격적인 말투로 대화를 하게 되면, 어쩌다 상대를 제압하고 순간 시원한 느낌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뿐이다. 오히려 얻는 것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만일 감정을 배제하고 차분한 태도로 상대와 대화를 나누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설령 내가 원하는 바를 다 얻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나를 감정의 지옥에 빠트리고 화가 나서 마음을 깊은 수렁에 던져버리는 일은 피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평안히 하고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게임이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 스스로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주석: '지금의 직장을 떠나면 8편'보다 실은 '9편'의 초안을 먼저 써놓았기 때문에 8편에 이어지는 내용 치고는 다소 매끄럽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또한 8편에서는 경어체를 썼으나 9편은 평어를 쓴 것도 다르나 전체적인 맥락이 이어질 수 있도록 기술했으니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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