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소설을 읽고 싶은데 간밤에 몸이 좀 피로했다. 그래서 일찍 자고 좀 일찍 일어나 아침 시간을 이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아침 알람 소리에 조금 뒤척이며 일어났다. 하지만 일찍 잠자리에 든 덕분에 머리가 맑았다. 빨리 준비하면 출근길에 있는 한 커피 전문점에서 한 시간 가까이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주차장으로 걸어가 차를 탔는데 앞유리창에 서리가 꼈다. 이 소중한 아침 시간을 서리 녹이는 데 몇 분이라도 쓰는 것이 좀 아쉬웠다. 차에 비치한 물수건으로 스윽스윽 앞창을 닦아내기를 몇 번, 워셔액을 또 몇 차례 뿌리고 와이퍼를 수분 간 작동시키자 운전할 수 있을 만큼 앞이 보였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가게 안에는 창가를 위주로 이미 서너 명의 손님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 역시 빈 창가 자리를 찾아 앉았고 아메리카노 곱빼기에 팥이 따로 나오는 토스트를 주문했다. 나중에 미니 샐러드도 추가로 시켰다.
간밤에 읽다가 만 소설책의 한 부분을 열었다.
일본에 살고 있으니 일본의 역사책이나 소설도 좀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 몇 년 전부터 출장길에 한두 권씩 사모아 집안 책장에 꽂아두고 짬나는 대로 읽고 있다.
그 가운데서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라는
소설을 최근 읽기 시작했다.
카페 안에서 커피와 토스트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책장을 넘기는데 이거 아주 근사한 기분이 드는 거였다. 아침의 고요함 속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읽는 재미가 쏠쏠한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 게다가 오늘 아침엔 햇살이 기분 좋게 비쳐들고 있어서 가게 안의 조명은 인공과 자연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아늑하면서도 따뜻하고 가벼우면서도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소설 안의 직장인 남자 주인공이 길거리에서 설문 조사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아주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었고 술술 읽혔다. 주인공은 미혼인데 CC 커플인 대학 동창 커플들과의 만남에서 풋풋했던 대학 시절과 지금 샐러리맨으로 지내는 현재의 모습이 교차되며 전체적인 구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근데 읽다 보니 소설 안의 캐릭터들이 하는 대화와 인물 묘사가 점점 흥미를 끄는 거였다. 어쩌면 예전에 보았던 일본 만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주고받던 그 일상의 특별할 것 없는 대화나 분위기를 살짝 닮아서였을까. 아무튼 묘하게 자꾸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이 미혼의 남자 주인공은 어린 시절 이 대학 커플 가운데 여자 동기를 남몰래 흠모했었는데 결혼해서 사는 모습을 보니 남편인 남자 동기한테 그리 대접받지 못하는 것 같고 많이 행복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여자 동기는 사실 대학 시절 많은 남자 동기들이 흠모했던 일종의 '우리과 킹카'였다.
남자 주인공의 시선은 내가 지난 어린 시절 홀로 가슴 태웠던 대상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애태웠던 여인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우습지만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 잘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유치한 생각마저 떠올리게 했다.
주문한 커피와 토스트가 나왔다.
따뜻하고 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담고 토스트에 팥덩이를 바르기 시작했다.
기분이 참 좋아지고 행복한 느낌이 감싸왔다. 하지만 먹는 데 시간을 너무 들이면 이 아까운 시간에 소설을 더 읽지 못하므로 가급적 서둘러 먹으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습작 소설을 개인적으로도 서너 편 띄엄띄엄이나마 연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작가들의 소설을 읽을 때 예전처럼 쓰는 걸 염두하지 않았을 때와 달리 더 꼼꼼하게 더 깊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게 된다. 처음 읽는 '이사카 고타로'라는 작가의 소설은 그 자연스럽고 여백의 미가 느껴지게 하는 대화체가 인상적이었다.
자주 느끼는 거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화와 일본 사람들의 대화는 어딘가 좀 다르다. 일본어를 알아듣는다고 해도 혹은 번역을 해서 본다 해도 상황에 따른 언어 표현이 우리와 좀 다를 때가 많다.
예를 들면, 본문에서 남자 주인공이 사무실 선배와 나누는 대화를 보면,
(선배는 최근 아내가 집을 나가서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한동안 휴가를 냈다가 회사로 돌아왔다.)
"저기, 아내분과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하고 물었다.
선배는 컴퓨터에서 눈을 떼더니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의아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금세 첫사랑이 들통난 소년처럼 얼굴을 붉혔다.
"무슨 소리야?"
"요새 관심이 생겨서요. 다들 어떻게 여자 친구나 부인을 만난 건지."
"그게 뭐야"
선배는 다시 컴퓨터를 보더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들으면 분명히 웃을걸"하고 말했다. 나와 열 살쯤 나이 차이가 나는 선배가 갑자기 같은 반 친구처럼 느껴졌다.
"웃을 거야"
아마 이 대화를 읽고도 우리의 대화와 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선배가 후배에게 "그게 뭐야"라고 되묻는 표현이 우리랑 좀 다르다고 느꼈다.
보통은, "요새 관심이 생겨서요. 다들 어떻게 여자 친구나 부인을 만난 건지."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음.. 그게 말이지.." 라거나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이야?"라고 되묻거나 " 하하하! 장가갈 때가 됐구먼."이라거나 아무튼 좀 다르게 말할 것 같았다.
이번 토요일도 일하는 날이다. 쉬는 게 더 좋지만 이왕 하는 거 기분좋게 할까 한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에도 좀 일찍 일어나서 이곳에 들를 예정이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를 들고서 말이다.
아! 나도 어서 쓰고 있는 소설에 좀 더 박차를 가해 올해 한 권을 마무리할 것이다.
출판사를 알아봐야겠다. 너무 까다롭지 않고 내 책을 근사하게 만들어 줄 곳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