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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Mar 28. 2017

도도 이치바의 감동

일본 사람들 이야기

와카마츠 도도 이치바 (동네 청과물/수산 시장)


북쪽 해변의 동네 수산물 시장 도도 이치바


 내가 살고 있는 키타큐슈(北九州)라는 시는 한자 이름을 보면 위치를 알 수 있다. 큐슈라는 큰 섬이 있고 그 큐슈섬 북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된 것일 터이다.


 때문에 키타큐슈는 북쪽으로 바다를 면해 있다. 우리 집에서도 차로 10분만 가면 인적이 드문 바닷가 마을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지난 토요일에 그 북쪽 바닷가 한 곳에 위치한 '도도 이치바'라는 동네 자그마한 시장을 찾았다. 부모님께 우리 동네에 있는 여러 스폿들을 소개하는 차원에서 모시고 간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이런 소박하고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지는 장소를 좋아하신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 소개해 드리고 싶었다.


 영업 마감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인지 각종 회와 초밥을 포장한 포장지 위에 20% 할인 가격 딱지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부모님은 싱싱한 모둠회와 초밥을 보시고 가격을 확인하시더니 감탄하셨다. 그 정도의 내용물에  그렇게 저렴한 가격이라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내친김에 저녁 먹거리로 하기 위해 원형의 모둠회 한 접시와 사각 포장의 방어/광어회, 초밥 세트 그리고 김밥처럼 생긴 일본 마키 두 패키지를 바구니에 쓸어 담았다.


 삼십여분 동안 즐겁게 쇼핑하며 저녁 먹거리를 준비한 우리는 영업이 끝나기 직전, 옆쪽의 청과물 가게에 들렀다. 거기서도 십여분 간 재빠르게 가게를 둘러보며  딸기와 마, 샐러드용 야채 그리고 마치 얼음이 녹아 반짝이는 듯한 느낌의 표면을 지닌 신기한 야채를 하나 집어 들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나와 아내도 싱글벙글 양손 가득 전리품들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쿠! 물건 놓고 왔네!


 집에 도착한 후 밖에서 사 온 물건들을 풀어서 정리를 하는데 봉지 하나가 보이질 않았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원형 모둠회 접시와 김밥처럼 생긴 마키가 든 봉지를 어딘가에 두고 왔다는 거였다. 일단 주차해 놓은 차에 가서 안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보이질 않았다.


 가족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도 이치바까지 생각이 미쳤다. 먼저 수산물 가게에서 회와 초밥 등을 구매하고 청과물 가게에 들렀을 때 봉지 하나를 두고 온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마침 다른 봉지 겉에 전화번호가 있길래 바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도도 이치바입니다. 쏼라쏼라~~"

어떤 중년 아저씨가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저 아까 시장에 들렀던 사람인데요. "

내가 말을 꺼냈는데 상대방은 말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갔다.


아쿠야! 이거 자동응답기 메시지구나!

워낙 아저씨 목소리가 리얼해서 자동 응답 메시지인 줄 미처 몰랐다.

이따금 당하는 일인데 도도 이치바 자동 응답 메시지에 또 당한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일본 사람들 성격에 우리가 놓고 간 물건은 냉장고에 잘 보관해 둘 거라고 하셨다. 다음날 아침 일찍 찾으러 가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장담하셨다.


 저녁 먹거리 상당량을 잃은 우리는 여기저기 집에 남아 있던 음식과 장을 봐온 초밥 등으로 저녁을 대충 해결했다. 모둠회와 노리마키가 있었더라면 훨씬 풍성하고 완벽한 저녁이 될 수 있었는데.. 하는 표정들이 아버지, 어머니, 아내의 얼굴에 거의 확실히 비쳤지만 우리 모두는 애써 담담하게 그 시간을 지나치려고 노력했다.


반전의 도도 이치바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8시 반 미사를 참례하고 나니 약 9시 50분 정도가 되었다. 아버지께서 집에 가기 전에 먼저 도도 이치바를 들러 어제 두고 온 물건을 찾으러 가자고 하셨다.


 성당에서 약 25분가량 차로 달려 토요일 오후에 들렀던 시장을 다시 방문했다.


 "저기, 어제 오후 5시 반 정도에 여기서 과일과 야채를 사다가 물건 하나를 두고 간 것 같아요."

 청과물 가게 직원에게 다가가 사정을 말했다.


 " 아, 그거요? 수산물 코너의 오오타 씨를 찾아가시면 안내해 줄 거예요. "

 이미 알고 있었고 기다렸다는 듯 직원이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수산물 코너 쪽으로 가서 지금 막 회를 뜨고 나온 듯한 모습의 직원을 찾아 오오타 씨란 분이 혹시 어디에 계시는지 물었다. 직원들끼리 큰소리로 뭐라고 몇 마디 주고받더니 잠시 후에 30대 초 혹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하나가 나타났다.


 "아, 어제 모둠회랑 마키 두고 가셨던 손님이시군요. 근데 어쩌죠? 그게 어제까지 먹었어야 하는 물건이었어요. 오늘까지 놓아두면 상해서 먹을 수가 없어요." 오오타라고 불리는 직원이 말했다. 순간 아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아우, 아까워라. 근데 그럼 버렸다는 말인가?' 나는 속으로 말했다.


 " 그래서 말입니다만 시간만 좀 주세요. 저희가 다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오오타 씨의 입에서 믿기 어려운 말이 튀어나왔다. '엥? 진짜요? 정말요? 새 걸로 다시 만들어 준다고요? '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외쳤다. 

 

 " 아,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속으로는 조금 호들갑을 떨고 겉으로는 시장 측의 호의에 예를 갖춰 감사를 표시했다.


 우리들은 모든 걸 다시 만들어 주겠다는 도도 이치바 수산물 코너 측의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대기표 같은 걸 하나 받아 들고 가볍고 감동받은 마음으로 새 상품을 기다리기로 했다.


 약 20분 정도가 흘렀을까. 드디어 포장된 제품이 오오타 씨의 손에 들려 모습을 드러냈다. 토요일 오후 느지막이 가서 막판 할인 상품을 샀던 우리는 실수로 물건을 놓고 온 덕분에 완전히 싱싱한 새 모둠회와 마키를 받게 된 거였다.


 부모님과 우리 부부는 이런 놀랍고 감동적인 서비스를 해 준 도도 이치바 직원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돈도 돈이지만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새 물건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후 테이블 위에 모둠회 접시들을 놓고 증거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리고 반드시 이 이야기를 글로 남겨두리라 마음먹었다.


 사실 시장 입장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금전적으로는 조금 손해가 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기들 잘못이 아니고 손님인 우리가 잘못한 경우였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손님이 먹도록 놓아두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들 비용으로 완전히 새로운 상품으로 대체해 준 것이었다.


 아마 우리나라도 이렇게 양심적으로 장사하는 가게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일본에 와서는 이런 비슷한 경험들을 드물지 않게 하는 것 같다. 신기하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하고 좀 부럽기도 한 복합적인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도도 이치바의 경영진과 직원 여러분!

정말 당신들 최고이십니다!!

제 마음의 엄지 손가락을 높이 들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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