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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Mar 15. 2017

그가 떠난다

  그와 마지막 테니스를 쳤다.


  그가 테니스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떠나기 전에 그와 종종 운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낸 것이었다.


 오늘 그의 테니스 서브는 위에서 아래로 꽂히듯 떨어지는 강력함이 돋보였다. 그래서 서브 에이스도 여러 번 나왔다.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력이 대단했다.


  만일 그가 보통의 남자였더라면 일본의 여자들도 호감을 쉽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후리후리하게 큰 키와 떡 벌어진 어깨. 얼굴도 호남형이다. 게다가 화룡점정은 입을 열면 울려 퍼지는 온화하고 낮게 깔려오는 바리톤과 베이스를 넘나드는 중저음의 목소리!


  그러나 그는 여자들에게 넘어갈 수 없고,

여자들도 자신들의 호감을 그에게 쉽게 표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가톨릭 사제이기 때문이다.


  그를 알게 된 것은 그러니까 그가 우리 동네 성당으로 부임해 온 재작년 말이었다.


  줄곧 일본인 신부가 계셨던 자리에 어느 날 처음 보는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제대 앞에 서있는 걸 보게 되었다. 미사 내내 성당 안을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의 낮고 낭랑한 음성에 모든 신자들이 매료당한 듯 보였다. 남자인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 여자 신자들은 어떠했을까. 짐작이 가고 남는다.


작은 만남의 의미


  그렇게 그는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고 일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에게 무언가 힘을 보태어 주는 존재가 되었다.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었지만, 매주 주일 미사에서 그가 주례하는 미사에 참여하고 가끔 테니스를 같이 했다. 또 몇 달에 한 번 한국인 신자 몇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것이 우리가 나눈 전부였다.


  그렇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 안에서 그런 정도의 만남과 얽힘이라도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같은 말을 쓰고 나이가 비슷하여 정서적인 교감이 잘 되었고, 그가 성직자였기 때문인지 마음 한 편으로 어떤 의미에서 의지가 되었던 것 같다.


  그는 교회의 결정에 의해 다른 도시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곧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새로운 터전에서 소명을 이어가야 한다. 사제(신부)로서의 삶이란 순명이라는 걸 그의 떠남을 마주하며 다시금 상기한다.


  저녁 테니스를 막 끝내고 바람이 휑하니 서늘하게 부는 테니스장 구석에서 그가 조용히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 있었다. 그가 스산한 바람이 휘잉 불어오는 그곳의 간이 철제의자에 앉아 조용히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조금 아렸다.



신부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제 저녁 한 끼 먹는 것도
테니스 한 게임을 즐기는 일도
이전보다 쉽지 않게 되겠군요.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일은
비단 저 같은 일반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생 절대자를 섬기며 봉사하는 삶을 사는
당신께 있어서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군요.

건강하십시오.
다시 만날 날을 희망하며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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