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동네와 아일랜드 파크
벌써 세 달 전의 일이지만 이제야 짬이 나 이 글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이곳 일본을 떠난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러 떠나는 자가 되어가고 있다.
[2017년 4월 봄 어느 멋진 날]
평일에 들었던 주말 날씨 예보에 의하면 비가 내린다고 했다. 부모님도 와 계신데 주말 날씨가 안 좋다고 하니 아쉬웠다. 토요일 밤 내내 그리고 일요일 아침까지 천둥 번개까지 치는 요란함을 보인 날씨.
그런데 일요일 아침 10시 미사를 참석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더니 기쁘게도 비가 그치는 것이었다. 날씨 예보가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좋은 쪽으로 안 맞는 경우엔 기쁨이 두 배다.
아내의 제안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키타큐슈에서 약 한 시간 십분 정도 떨어진 후쿠오카시에 놀러 가기로 했다. 일단 점심을 거기서 먹고 예전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후쿠오카 인근의 '노코노시마'라는 섬에 가서 지금 한창인 유채꽃과 막 피기 시작한 벚꽃을 구경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이 섬 안에는 '아일랜드 파크'라는 공원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수목원과 비슷한 느낌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 섬에 가기 위해서 페리를 이용해야 하는데 특이한 점은 자동차도 약 4~5대 정도 실어 나를 수 있다는 점이다. 전에 몇 번 승용차를 가지고 바다를 건너 섬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부모님과 어린 딸이 있어 차를 가지고 배를 타기로 했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7인승 패밀리카를 끌고 가니 덩치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선착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걱정이 좀 됐다. 4월이고 하니 틀림없이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차도 많이들 가져갈 텐데 너무 오래 기다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노심초사하며 선착장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배를 타기 위해 대기하는 주차장을 살폈다.
야호!
운이 좋았다. 우리 앞으로 달랑 차가 한 대 밖에 없었다. 물론 약 15분 전에 배가 출발한 탓도 있지만 그걸 감안한대 해도 대기하는 차가 적다는 건 바로 다음 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기에 기뻤다. 다음 배 출발 시각까지 약 40분 정도 남았지만 이 정도는 얼마든지 기꺼이 기다릴 수 있었다.
소낙비가 내리다!
노란 물이 뚝뚝 듣다!
스스로 운전해 승선한 우리는 약 10여분 동안 차에 탄 채 바다를 건넜다. 부모님은 그 상황을 매우 신기해하시며 즐겁게 섬으로 향하셨다.
드디어 하선. 승객들이 먼저 줄을 이어 내리고 마지막에 차들이 열을 지어 섬 쪽 선착장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갑자기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굵은 빗방울이 장대비처럼 쏟아졌기에 도저히 아일랜드 파크에 들어가 걸어 다닐 계제가 아니었다. 일단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파크에 다시 돌아오기로 하고 그동안 한 번도 둘러보지 못했던 아일랜드 파크 주변을 차로 돌아보기로 했다.
차 한 대가 다닐 정도의 폭만 나오는 길들이 여기저기 나 있었고 반대편에서 혹시 차가 들어오지나 않는지 살피며 조심조심 운전하며 새로운 길탐험에 나섰다. 꼬불꼬불 난 길을 따라 왼쪽으로 틀었다 오른쪽으로 틀었다를 몇 차례 반복하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인공적으로 가꾸지 않은 섬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는 벚꽃이 얼마나 흐드러지게 피었을까 기대하며 왔는데 막상 섬안에 들어와 보니 벚꽃은 벌써 전성기를 지나 푸른 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아직도 어여쁘기는 했으나 솔직하게 말하면 벚꽃보다 더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연둣빛 줄기와 파란 하늘과 땅빛 모두에 너무 잘 어울리는 노란 물감 진하게 밴 유채꽃이 여기저기에 무리를 이루어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다행히 지나가는 비였다.
우리 가족들은 차에서 내려 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여 주는 아름다운 조화와 대비에 잠시 젖었다. 틀림없이 내 두 눈으로 유채꽃들을 보고 있는데도 조금 멀리서 바라보면 꽃들의 그 노오란 물이 번지는 것 같이 보였다. 마치 수묵채색화 기법으로 그린 꽤 화려하고 아름다운 한국화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후쿠오카현을 떠나기 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이곳에 다녀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성당의 한국인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 한 시간밖에 안 걸리고 비행기 편수도 무척 많아졌으니 또 놀러 올 거예요. ㅎㅎㅎ "
" 그래요. 놀러 오세요. 근데 보면 예전에 살았던 곳을 다시 방문하는 게 잘 안 되더라고요.
마음은 그립고 시간 나면 가야지 가야지 해도 막상 다시 방문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던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 그 가운데 내가 태어났던 진해를 초등학교 때 서울로 전학을 간 이후로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은 중학교 이후로 10년이 지나서였다. 그것도 진해에서 가까운 부산에서 군 복무를 하게 된 덕택에 마음을 한 번 먹고 방문한 것이었다. 또 20대를 지나서 다시 진해를 찾게 된 것은 그때로부터 다시 20년이 지나버린 시점이었으니까. 중국 광저우는 다행히 처가가 있어 자주 방문할 수 있었지만 일본 키타큐슈는 과연 어떻게 될는지.
사람의 마음이 참 묘하다.
평소 지금 사는 곳 혹은 일하는 곳을 떠날 기미가 별로 없을 적엔 언젠가 어디론가 다시 떠나고픈 마음이 가슴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가, 막상 어떤 사정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면 왜 그리 아쉽고 정이 마구 솟아나는지...
이런 내 마음은 아내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처음에 한국으로 가서 살 생각을 하다가 일본으로 직장이 정해지자 오기 싫다고 그렇게 아쉬워하더니 이곳에서 3년을 살고 올해 떠날 기미가 슬슬 보이자 태도가 바뀌었다. 공기가 좋다는 둥 물가가 싸다는 둥 번잡하지 않고 산과 바다가 지척에 있어 좋다는 둥, 무엇보다 어린아이를 키우기에 복지나 환경이 아주 잘 되어 있다며 떠남과 새로운 미래를 시작해야 함에 대해 끌탕을 했다.
요 며칠은 키타큐슈 앓이를 하며 정말 저렴한 집 하나를 여기다 마련해 놓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며 비현실적인 상상도 해 보았다. 다시 대도시에서 복작거리며 살다가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러 사 년 동안 정들었던 이곳에 다시 올 무언가 끈을 만들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