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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Aug 28. 2017

여수 밤바다

+ 비 내리는 오동도

떠나는 아쉬움을 깊이 달래며


 전라도 쪽 경험이라고는 군에 있을 때 갔던 광주 훈련과 친구의 빙장 어른께서 돌아가셨을 때 전주를 방문했던 것이 거의 전부이다. 아,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을 따라 무주 구천동에도 놀러 갔던 기억이 나긴 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기회를 잘 갖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대학 동창이자 브런치에서 함께 활동하는 작가 두 분과 동행하여 2박 3일의 여행을 가게 되었다. 행선지는 순천만 국가정원/습지 - 선암사 - 낙안읍성 초가마을 - 여수 오동도/밤바다 - 보성 녹차밭 - 담양 죽녹원. 미안하게도 모든 일정을 맡기고 수동적으로 따라나섰던 이 여행은 나로 하여금 앞으로의 여행지 선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큰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일본에서 4년 여를 살면서 일본 각지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도취해 가족과 지인들을 여러 차례 초대하고 좋은 추억들을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떠나는 시점에서 그간 누렸던 많은 것들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또 아쉬워했던 나이다. 그러나 이번 전라도행은 그런 아쉬움을 달래 주는 뜻깊은 여행이 되기에 충분함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멀리 있는 곳만 찾아다닐 게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 박혀 있는 보석 같은 장소들을 하나씩 찾아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폭우 내리치는 오동도를 거닐며


 일행은 여행 초반부터 기상 예보를 보며 심히 우려했다. 2박 3일 내내 비 소식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비 소식이 있는 걸 어찌할까. 아예 비가 내린다고 가정을 하고 여행을 떠나야 옳았다. 만일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사흘 내내 집에 있거나 도시에서 우중충한 날씨를 탓하며 우울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풍경과 기운이 서려 있는 곳들을 가려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대화가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첫날을 순천만 국가정원과 습지(순천만 자연생태공원)에서 놀라운 풍경을 감탄해 마지않고 느꼈던 우리는 다음 날 여수로 발길을 옮겼다. 차로 여수에 도착할 즈음부터 슬슬 비가 나리기 시작하더니 방파제를 걸어서 오동도에 들어서자 폭우가 몰아치는 게 아닌가. 덕분에 오동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버렸고 우리는 인적이 거의 없는 오동도의 숲길과 섬 주변의 절경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방파제를 건너며 이미 허리 아래에서부터 발끝까지 빗물에 흠뻑 젖었다. 각자 우산 하나씩을 다 들고 다녔지만 심한 비바람이 거의 눕다시피 들이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바지와 다리가 젖는 건 그나마 견딜만했으나 신발 안쪽으로 스며든 빗물이 양말까지 적시자 질퍽질퍽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 이렇게 온몸이 다 젖도록 비를 맞으며 걸었던 적이 언제였어요? "

 한 사람이 운을 떼며 물었다.


 " 글쎄요. 전 대학과 군 복무 시절 이후로는 이렇게 비에 흠뻑 젖으며 오랜 시간을 걸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  지난 시절을 머릿속에 급속 모드로 돌리며 내가 대답했다.


 비에 젖은 몸이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우리들은 이미 여행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에 도취되어 있었고 오동도의 매력에 빠져버린 후였다. 


마치 나무들이 시민인 나라에 들어온 것 같이 느껴졌던 울창한 숲길과
어떤 샛길로 빠져 내려가도 볼 수 있는 바위와 파도와 하늘이 빚어내는 절경에
그만 몸과 마음의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 손으로, 퍼붓는 비를 겨우겨우 막아내는 우산을 받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저 머얼리 두 배가 교차하려 하고 있다.
방파제를 건너면 오동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여수 밤바다


 오동도에서 몸도 마음도 흠뻑 젖은 채 인적이 드문 방파제길로 되돌아 나왔다. 이미 날이 저물어 하늘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여수 밤바다'


 그렇게 많이 들었던 이 관용구와도 같은 말은 눈앞에서 이미지가 되어 있었다. 


 '아, 이것이었구나. 여수 밤바다라는 게'


 낮에는 너무도 줄이 길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전망대로 향했다. 분명 낮에는 포기해야만 할 상황이었기에 '그거 안 올라가 봐도 돼. 볼 거 다 봤는데 뭐!'하고 마치 못 먹는 단감을 떫은 감으로 치부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막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절벽 위로 오르자 ' 하! 이거 안 와 봤으면 어쩔 뻔했어. 와! 이거 이거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속내가 다 드러난다. 일행들도 나와 거의 같은 마음인 듯 보였다. 


 배가 고파졌다. 비에 젖은 몸과 무거운 다리가 허기를 채울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누군가 떡볶이 메뉴가 보이는 식당이 나오자 바로 그곳을 찍었다. 나머지 둘도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선택은 옳았고 흡족한 기분으로 분식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음식 한 점 한 점을 입으로 가져다가 넘기며 연신 "맛있네. 진짜 맛있다."를 연발했다. 


몸 에너지 바늘이 낮은 눈금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마음 에너지는 거꾸로 찰랑찰랑 가득찼다. 


 식사를 마치고 케이블카를 타고 여수 밤바다 위를 날았다. 반짝이는 여수의 야경을 조금은 처진 몸으로 무심히 바라보았다. 이제 한옥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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