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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는얼굴 Sep 30. 2017

인연, 그리고 소소한 이별

작디작은 이별에 관하여

인연을 생각하다 보니 떠오른 단어 이별.

사전적으로는 '서로 갈리어 떨어짐.'이라고 짤막하게 표현된 단어이다.

절대 이렇게 짧지 않은데 표현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워 이렇게 짧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부분 만남이 있으면 마지막엔 이별이 따른다.

가장 큰 이별은 아마 죽음일 것이다. 이러한 큰 이별이 이별의 설명을 더 어렵게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런 큰 이별이 아니다.

커다란 이별을 감당할 만큼 성숙하지도 못 했을뿐더러 굳이 큰 이별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늘 말하려는 이별은 누가 보기에 이별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아주 작은 이별들에 대한 이야기다.


즐겨보던 드라마에서 좋아하던 인물이 죽음을 맞이하거나

재밌게 보던 드라마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종영하거나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다 사용했거나


어떤 분들에게는 저런 사소한 건 이별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다 하나의 이별이었다.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만나서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면 충분히 인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좋아했던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마음 한쪽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일상을 구성하던 한 부분이 빠졌다는 생각 때문일까 한 동안은 매일매일 떠올릴 정도로 말이다.


또, 물건을 잃어버리고 나면 그 물건을 한참을 찾는다. 그 이상의 물건은 내게 더 이상 없을 것처럼 물건을 찾는다. 찾는 경우도 있고 못 찾는 경우도 있다. 찾으면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못 찾는 경우에는 계속 떠올린다. 그러고 나서는 보통 다음에 정리를 잘해야지 하고 후회한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모습을 생각해보면 예전에 비해 이별에 대한 여운을 덜 느끼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

예전에는 정말 며칠을 그런 사소한 이별을 떠올리며 아쉬워하고 그 인연의 끝자락이라도 붙잡아보려 아등바등하거나 슬퍼할 때가 있었는데 요즘엔 그러한 시간마저 아깝다고 생각하는지 짧게 아쉬워하고 그 아쉬움을 뒤로한 채 새 것을 찾는다. 되돌아보면 그러한 이별마저 다 추억인데 너무 매정해진 건 아닌지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볼 때가 있다.


이별이 끝이나 마지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별 뒤엔 언제나 새로운 만남을 통한 새로운 인연이 생기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그 이별 하나하나의 덕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아무리 작은 이별이라도 그 이별이 없었다면 지금의 새로운 만남은 없었을 테니까.


앞으로도 몇 번이나 더 이런 소소한 이별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이별을 마주칠 때마다 아쉬워하고 속상해하고 끝자락을 붙잡으려 아등바등할 것이다. 잠깐이나마 내 인연이었던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도.




전부터 쓰려고 생각했었는데 계속 정리하자하고 미루다 보니 9월 말이네요. 규칙적이진 않더라고 글은 계속 쓸 생각입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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