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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Apr 28. 2017

어둠 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

삼청동 어느 골목길


언제라도 그리운 우리나라 


 우리나라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간 지 만 4년이 다 되어간다. 4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느끼는 고국의 현재 모습 가운데 하나는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이다. 내가 서울에서 살고 있을 적에도 '황사' 때문에 힘들 때가 종종 있었지만 지금은 황사라는 말보다 미세먼지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훨씬 더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출장이 아닌 개인적인 방문으로 벼르고 별렀던 서울행을 금요일에 감행했다. 그리고 토요일에 첫 행선지가 삼청동 인근이 되었다.


 4월 삼청동의 하늘은 감동스러울 만큼 선명했고 햇살은 만물을 최고의 조명으로 근사하게 비추고 있었다.


 점심을 한식집에서 알차게 먹고 오후 일정을 위해 식당을 나섰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던 나는 삼청동 주도로 뒤편으로 난 골목길과 경사진 길을 오르며 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걸까 생각하며 일행 뒤를 열심히 쫓아갔다.


 아스팔트 길을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내며 캐리어를 끌고 가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했다.


 Dialogue in the Dark  어둠 속의 대화


 일행 중 시를 쓰는 후배가 하나 있었는데 '어둠 속의 대화'라는 경험을 이미 몇 차례 했던 친구이다. 회색빛 콘크리트 벽에 차분한 글씨체로 된 간판이 보였다.


 입구로 들어서니 오른편으로 대기 공간이 있었고 왼편으로 사물함이 몇 단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후배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소지품들을 사물함에 넣기 시작했다. 가방을 넣고 문을 닫으려 하는데 안경도 벗어야 한단다. 하긴 어둠 속이라면 안경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안경을 벗었다. 이내 불편함이 느껴졌다. 선명하던 세상이 흐릿해졌고 바로 옆의 지인 얼굴도 뿌옇게 보였다. 소위 말하는 마이너스 시력이라서 안경을 벗으면 세상이 흐릿함에 가려진다.


 안내하는 분이 엘리베이터 앞으로 모이라고 한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이미 조명이 어두워져 있다.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듯했다.


 몇 개 층을 내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렸지만 그곳의 조명도 어두워서 조심스레 발을 내디뎌 나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우리는 어떤 좁은 공간에 일렬로 서게 되었는데 뒤편 벽면으로 벤치가 하나 있었다. 일단 그곳에 앉아서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잠시 대기했다.


 거기까지는 완전한 어둠이 아니었다. 가이드하시는 여성분의 안내를 따라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어둠의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까 잠시 대기하던 공간으로 난 문이 닫혔다.


 처음으로 빛이 완전히 차단되었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약간의 긴장감이 몸 전체를 훑어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거기서 로드 마스터라 불리는 어둠 속 여행의 안내자를 소개받았다.


 우리는 서로 캄캄한 공간에서 목소리만으로 서로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선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목소리만으로 첫 만남을 가진 경우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사실 많은 경우에 전화로 먼저 서로 알게 되고 나중에 직접 만나는데 이 경우도 서로가 목소리만으로 처음 서로를 겪는 것이다. 외모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목소리 색깔과 톤으로 상대를 가늠한다.


 로드 마스터의 목소리는 성실하고 착한 남자 대학생의 그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자신감 넘치는 남자들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담백했다. 그리고 배려하는 태도가 녹아 있는 목소리로 느껴졌다. 굵고 낮은 남자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듣기 좋을 만큼 감미로왔고 호감이 서려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아! 내가 지금 목소리 가지고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 보통은 사람에 대해 묘사할 때 얼굴 모습이 어떻고 머리 색깔이나 스타일이 어떻고 키가 크니 작니 옷을 잘 입니 못 입니 하며 이야기하는데 지금 나는 그 로드 마스터의 목소리 하나만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다.


 보이질 않으니 그를 묘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 목소리였던 거다. 어둠이 만들어 낸 변화였다.


 로드 마스터가 말했다.

" 여러분, 이곳에서는 앞이 보이질 않기 때문에 아마도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이 좀 더 예민해지는 걸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


 그랬다. 원래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님에도 이러한 인위적인 어둠 속에서 나의 청각이 더 예민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폐쇄 공포증


로드 마스터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조금 더 넓게 느껴지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그 공간에는 로드 마스터를 포함해 총 8명의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로드 마스터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반원형 비슷하게 자리를 잡고 섰다.


 완전한 어둠 속에 들어선 지 약 3분이 되었을 즈음일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가운데 순간적으로 호흡곤란 증세가 생기는 듯했다.


 로드 마스터가 이 말을 했다.

" 여러분, 가급적이면 눈을 감고 계시는 게 좋습니다.

눈을 떠도 앞이 보이질 않아서 조금 어지러울 수 있거든요. "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눈을 떠도 앞이 캄캄해서 정말 위치감이나 평형감각이 상실되는 느낌에 사로잡힐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 순간 공포감이 몰아쳤다. 밖에서라면 눈을 감았다가 뜨면 환한 빛이 감지되고 무언가를 선명하게 볼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눈을 뜬다 해도 변하는 것이 없다. 즉, 나는 암흑 속에 갇힌 것이다. 어릴 적 쇠공 속에 갇히는 상상을 자주 하던 때가 있었다. 쇠공 속에 갇혀 암흑에 빠져 버렸지만 내겐 쇠공을 깨고 나갈 힘이 없다. 이 불가항력의 공간에 강제로 갇혀 나는 어쩔 수 없이 죽음을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상에 빠져들자 숨이 막혀 오는 것 같았고 당장 소리를 지르고 싶어 졌다.


' 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어요!! 저 나가게 해 주세요! 숨이 막히고 미쳐버릴 것만 같아요! '


 정말 하마터면 이렇게 소리칠 뻔했다.


 혼자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일행 중에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하나 있었다. 비록 잠시 괴로웠지만 아이도 가만히 잘 견디고 있는데 어른인 내가 무섭다고 뛰쳐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이 내면의 소동은 몇 분 후 잠잠해졌다. 공포감이 극대화되려 할 때 로드 마스터가 부드럽게 이야기를 이어갔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저마다 원초적인 암흑 속에서 각자의 소감을 말하거나 농담을 던졌기 때문이다. 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와 그들의 목소리가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여행은 계속되었다. 시각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청각과 촉각 그리고 후각에 의지해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그리고 바로 옆 사람의 목소리와 손의 촉감, 수시로 부대끼는 몸의 감각이 어느새 무엇보다 중요한 의지가 되고 있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


 로드 마스터의 안내를 따라 걸어가던 우리는 암흑 속에서 선착장에 다다랐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 정박해 있던 배에 올랐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설정이었다. 선착장이라 생각하는 것이고 배 모양으로 꾸며 놓은 탈것에 올라 바다로 나간다고 상상해 보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웬걸. 암흑 속에서 갈매기 소리가 들리고 파도가 쳤다. 이따금 부서지는 파도가 얼굴 위에 흩뿌려지기도 했다. 이미 그곳은 어둠 속이 아니라 햇살이 쏟아지는 푸른 바다 한가운데였다. 우리는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선 것이다.


 누군가 외쳤다. " 여~~~ 저기 날치가 바다 위로 날아간다!! "

 그러자 옆에서 " 아우, 배멀미할 것 같아요~~  키미테를 했어야 하는데 ㅠ ㅠ "


 다들 언제 배우가 되었는지 능청스레 저런 대사들을 쳐댔다.


 실은 이 글에서 많은 내용을 묘사하지 않으려 한다. 많이 알면 효과가 반감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 관문에 다다랐을 때 로드 마스터가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 같냐고 물었다. 나는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싶었다. 사람들도 저마다 40분이다, 50분이다 각자 느끼는 상대적 시간을 말했다.


 로드 마스터가 시간을 말했을 때 나는 제법 놀랐다. 그는 이미 우리가 한 시간 반 가까이 이 어둠 속 여행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혹시 어떤 신선들이 사는 곳에 왔던 걸까. 왜 옛이야기들 가운데 어떤 남자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평생 가 보지 못했던 곳에 당도했는데 그곳에서 몇 시간 수염이 몇 척이나 되는 노인들이 장기 두는 걸 구경하다가 다시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왔더니 몇 년이 지나 있더라는... 


 어둠 속의 대화.


 전혀 구체적인 상상이나 기대를 품지 않고 참가했다. 영화도 기대를 품지 않고 봤을 때 오히려 만족감이 더 높은 경우가 많은데, 이 프로그램도 비슷한 느낌을 갖게 했다.


 이미 어느 정도 스포일러가 되었지만, 최대한 자제해서 내용을 줄여 말했다.


 언젠가 삶이 건조해지고 팍팍해질 때 혼자서 이 여행을 다시 해 보면 좋겠다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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