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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ul 23. 2017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받은 돈

 미국 중동부 여행을 다녀온 후라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되었는지 새벽에 잠을 깼다.


 잠을 깨고 나서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모를 이유로 스마트폰의 은행 어플을 켰다. 그리고 '거래내역'을 확인하게 되었다.


 대부분 돈이 빠져나갔다는 적색 표시였으나 중간에 생뚱맞게 돈이 들어왔다는 파란색 내역이 보였다.



  x,xxx,xxx 원  '친구로부터퇴직금'


 제법 많은 액수였다. 그리고 송금인의 이름이 없었다. 대신 '친구로부터 퇴직금'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놀랐다.

 

 새벽에 열어 본 통장 거래내역에서 이런 소식을 만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재빨리 가능성 있을 법한 지인들의 얼굴 리스트를 돌리기 시작했다. 가족들일까. 친구들일까. 일단 느낌으로 볼 때 가족은 아닌 것 같았다. 우리 가족들은 이렇게 하지 않고 그냥 돈을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돈을 보낸 이유는 뭐지?


 아!  내 글 때문이었구나. 얼마 전에 올린 '백수 생활의 놀라움'이라는 글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순간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로서는 그 글을 쓸 때 '힘드니 좀 도와주시오'라는 의도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 된 것이다. 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나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관계이지만, 개인적인 친분을 맺고 지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주목했다. 그래서 글을 쓸 때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써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텍사스주 San Antoino의 저녁놀 지는 도로에서


복잡한 감사의 마음


 놀란 후의 다음 감정은 '복잡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복잡한 감사의 마음이란 그러니까 그냥 감사하다는 심플한 마음이 아니라는 거다. 힘든 상황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신 거니까 당연히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의도치 않게 지인들께 부담을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함께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뿌듯했다. 내가 도움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누군가가 나를 이토록 생각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나는 외롭지 않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불 꺼진 방 새벽의 캄캄함 속에서 나는 몇몇 친구들의 얼굴을 떠 올리고 있었다. 이 친구들이라면 내가 어려울 때 아마도 이 익명의 친구처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혼자 뿌듯해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막상 그런 때가 오더라도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들에 대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또한 반대의 상황이 되더라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그들에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들에게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걸 해 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으로 보태질 수만 있다면 내게는 진실로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행복하고 싶다.


 혼자 불행하게 살거나 혼자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다.


 혼자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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