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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Aug 03. 2017

키타큐슈여 안녕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에게


 어젯밤 너와 엄마는 정말 최악의 하루를 보냈더구나. 일본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두 시간 이상 연착되는 바람에 상해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놓쳐 버렸다지. 커다란 짐 박스만 두 개에 캐리어가 두 개 거기다가 유모차까지 끌고 예정에도 없던 상해 숙박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어. 무엇보다 엄마는 널 데리고 다녀야 했기에 그 고단함이란 상상만 해도 온몬에 힘이 쭈욱 빠질 지경이구나. 맡겼던 짐 하나의 종이 박스가 찢겨 안에 있던 물건이 자칫 빠져나갈지도 모를 상황이 된 건 보너스였다지. 


 너와 엄마는 동방항공에서 제공한 공장지대 근처의 후줄근한 숙소에 한밤중에 도착해 지친 몸을 가누고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어. 몇 시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푸동공항으로 향했지. 거기서 모녀는 짐 더미를 끌고 동방항공의 자회사인 상하이항공의 비행기 체크인을 위해 카운터로 갔지. 간밤의 불운과 피곤에 찌든 엄마는 다음날 아침 역시 상하이항공 담당 직원의 무심함과 불친절로 이틀째 최악의 날을 이어갔다지. 


 손운반 짐도 많고 너까지 데리고 다녀야 했던 엄마가 게이트에서 유모차만큼은 비행기 입구까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자 즉각 거절당했다고 들었어. 알아서 유모차를 운반해 가라고 했다지. 엄마는 그 직원에게 설명하기를 아이가 있어서 한 번에 운반이 어렵다고 했지. 만일 유모차를 탑승구까지 운반해 주기 어려우면 물건을 옮겨 놓고 오는 동안만 잠시 너를 봐 달라고 부탁했어. 그러자 그 직원은 엄마에게 한 살 반인 너한테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게 하라고 말했다는구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일하기가 너무 싫은 걸까? 그 사람 미친 게 아닐까?  


 오늘 엄마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아빠의 마음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고 분노가 치밀었단다. 마음 같아서는 동방항공과 상하이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너희 모녀가 당한 고통을 보상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 딸아, 너무너무 힘들었지? 엄마는 진짜 몸살이 날 지경이었을 거야. 이야기만 들어도 아빠는 치가 떨려. 


 그나마 오늘 오후에 무사히 외가댁에 도착해서 무사한 엄마와 널 확인하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구나.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 빨리 자고 내일부터 엄마랑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하고 또 즐겁게 중국 생활 시작하렴 딸아!

 


 딸아, 우리 떠나기 전날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키타큐슈 서쪽 바다 마음속에 기억해 둘래? 한 살 반 밖에 안된 너라서 얼마나 그 바다와 노을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니, 우리 그레이스는 틀림없이 기억할 거야. 아빠와 거기서 뽀뽀도 했잖아. 엄마가 네게 가르쳐 준 뽀뽀이긴 하지만 아빤 우리 딸이 아무 스스럼없이 아빠한테 뽀뽀를 해 주는 게 참 기뻐. 엄마와의 뽀뽀 다음으로 세상 최고야!


 그레이스야, 우리 이다음에 도시 생활이 지치고 힘들어질 때쯤 되면 다시 이곳 키타큐슈 바닷가를 찾자. 사람도 많지 않고 늘 평화롭고 조용한 이곳에서 너의 어릴 적을 추억하자. 엄마와 아빠가 너와 함께 했던 그 행복하고 소중했던 순간을 떠 올려 보자꾸나. 


 어제는 너와 엄마가 없는 방에서 아빠 혼자 잤어. 엄마 아빠 침대 옆에 만들었던 너의 잠자리가 휑 하니 비어 있더라. 너를 재우기 위해서 그 좁은 데서 아빠가 우리 딸이랑 같이 누워 있곤 했는데 말야. 가끔은 사십 분이 되도록 잠을 자지 않는 너 때문에 아빠 엄마는 좀 지치기도 했지. 하하. 그렇지만 아빤 네가 쌔근쌔근 잠들어 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참 즐거웠어. 네 뽀송뽀송한 얼굴을 매만지고 콩닥콩닥 뛰는 네 가슴을 바라보고 볼록한 배를 쓰다듬곤 하던 그 느낌이 아빤 참 고맙고 기뻤단다. 


 일본에서 우리 딸 그레이스는 크게 아프지도 않고 감기도 거의 안 걸리고 엄청나게 먹으면서 건강히 잘 자랐어. 아빤 우리 어린 딸이 참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그리고 이건 좀 비밀스럽게 하는 말인데, 아빠가 생각할 때 말야. 우리 그레이스는 진짜 너무 이뻐. 어떻게 그렇게 매일 봐도 질리지 않고 이쁠 수 있는 걸까 의아할 지경이야. ㅎㅎㅎ 아빠 팔불출이야? 딸바보?  뭐, 아무렴 어때. 아빤 우리 딸이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워서 너무 좋아. 



 그레이스!  아빠랑 한동안 떨어져 지내겠지만 아빠 모르는 척하면 안 돼! 매일 영상통화하고 연락할 거니까 통화할 때 아빠 얼굴 잘 쳐다 보고 딴짓 많이 하기 없기! 


 엄마도 아빠도 일본에서 떠나 이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해. 특히 아빠는 지금까지 했던 일과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려고 해. 아빠 자신 있어. 그런데 가끔 문득문득 쬐금 부담이 되긴 해. 아빠한테 생각이 다 있기는 한데 실행에 옮겨 보지 않은 일이라서 정말 생각대로 잘 될까 하는 두려움도 들곤 해. 


 그래도 너무 걱정은 안 하려고 해. 이미 하기로 결정한 거고, 알잖아 너도! 아빠가 얼마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인지. 성실하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차근차근 해 나가다 보면 틀림없이 가속도가 붙고 성과가 나올 거라 믿어. 아빠 말고 이미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그 사람들도 하는데 아빠가 못하겠어? 


 그리고 아빤 혼자 하지 않아. 함께 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같이 일구어 나갈 거야. 아빤 혼자만 잘 났다고 뻐기면서 일 하는 거 좋아하지 않아. 아빠도 그렇게 잘 하지 못했지만, 항상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일하던 몇몇 분들을 기억하면서 본받아 일하려고 해. 아빠가 그동안 느낀 바로는 그런 사람들은 인생이 외롭지 않더라. 물론 일이 매번 잘 되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잘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어. 아빤 그걸 알아. 그래서 믿는 구석이 있는 거지. 우리 그레이스도 그런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해. 항상 함께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과 같이 고통도 나누고 기쁨도 나누는 멋진 사람이 되기를 희망해. 아빠도 아직 모자라지만 우리 딸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약속해. 


 그레이스야, 당분간 아빠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아. 아빠도 잘 참고 있을게. 아빠가 시간 내서 우리 딸 만나러 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비행기 타고 날아갈게. 우리 건강하게 지내다가 다시 만나자. 


 아빠가 우리 그레이스 많이 사랑해. 


2017년 8월 3일 목요일 저녁

키타큐슈에서 널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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