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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May 01. 2018

문득 떠 오르는 얼굴

잊을 수 없는 기억과 함께

[2018년]


 새벽 4시 40분 즈음에 씻지 않고 자서 찝찝했던 몸을 일으켰다. 시원하게 샤워를 끝내고 밀렸던 인터넷 강좌를 들었다. 6시 반 정도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한 챕터 반 정도를 끝냈다. 회사에서 의무 교육으로 실시하는 MBA 강좌인데 업무적으로 도움이 되기는 하나 의욕이 생기지 않는 인터넷 강좌라는 게 흠이다. 정신이 맑을 때조차도 PC로 강의를 듣다 보면 졸리기 쉬운데, 평소 일과가 끝난 후에 피곤한 몸 상태로 수강하게 되면 정말 치명적이다.


 그래도 진도를 조금 나가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창을 닫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근로자의 날 휴무이기 때문에 마음껏 더 잘 수 있었다. 새벽 공기는 쾌적했고 샤워를 한 몸은 산뜻했으며 시간 압박이 없는 하루였기 때문에 한잠 더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다리를 쭈욱 뻗으며 살갗에 닿는 침대 시트의 부드러움을 받아들였다. 인터넷 강의로 살짝 몽롱해진 정신 상태로 취침에 들어갔다.


  몇 시였는지 모르지만 깊은 잠에서 얕은 잠으로 바뀌었거나 잠이 살짝 깼던 것 같다. 오른쪽 모로 누워 벽을 바라보며 누워 있을 때 대학생 시절 영어 과외 지도를 해 주던 고등학교 남자아이가 떠 올랐다. 군대 동기의 소개로 녀석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당시 용돈이 궁하던 내게 그 아르바이트로 받는 수업료는 꽤나 요긴했다. 보통 평일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녀석의 집을 방문했고 한 번 가면 두 시간 정도 영어 참고서를 이용해서 과외 지도를 해 주었다.


 여느 남자 고등학생처럼 까까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키는 평균보다 조금 작은 편이었고 눈이 크고 손눈썹이 좀 긴 편이었다. 피부는 까무잡잡했으며 다소 반항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성적은 반에서 중간 정도 하지 않았나 싶다. 녀석에게는 쌍둥이 여동생들이 둘 있었는데 오빠와는 달리 우등생들이었다. 이 아이들의 아버지는 공군이셨고 어떤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녀석을 만났을 때에는 이미 고인이 되신 상태였다. 따라서 아이들의 어머니께서 홀로 일을 하시며 자식들을 키우고 계신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모 테마파크에서 간호사로 일하신다고 들었다.


 그때 나는 선생님이라 불렸지만, 나이를 따져 본다면 각각 고등학생과 대학 복학생으로서 대략 아홉 살 정도 차였으니 지금은 사회인으로서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일 것이다. 녀석과는 연락이 끊어졌다.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어쩌면 SNS를 통해 어느 날 갑자기 소식이 닿을 수도 있겠지만, 직장이나 학교 혹은 사는 지역 등 연결고리가 별로 없어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녀석을 떠 올리면서 함께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부끄러운 기억이라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 재생되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1999년]


 수업을 하기로 한 어느 날 예정된 시간 전에 녀석과 연락이 닿았는데 수업을 못하겠다는 말이었다. 아마도 친구들과의 더 흥미로운 이벤트가 있었던 것 같았다. 사정이 생겨 수업을 미룰 수는 있지만 그때 녀석은 한 가지 특별한 부탁을 추가했다. 그것은 어머니한테는 수업을 한 것으로 하자는 거였다. 그것은 어머니를 함께 속이자는 말이었다. 당시 녀석에게 그냥 수업을 다음에 하는 것으로 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했지만, 녀석은 어머니가 수업을 미루는 것에 절대 동의하지 않으실 것이며, 자신은 필히 다른 약속을 위해 수업을 빠질 수밖에 없다고 간곡하게 말했다.


 퍽이나 당황스럽고 난처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대학생 형과 같은 선생님으로서 까짓 수업 한 번 빼 주는 것이 무에 그리 어렵겠는가. 그러나 돈을 주고 고용된 사람으로서 노동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노동을 한 것처럼 고용주인 학부모를 속이는 일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녀석은 평소와 다르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모습이었고 나의 마음은 약해졌다.


' 그래! 따악 한 번만 눈 감고 녀석 말대로 하자. '  


 우리는 공모를 했고 실행에 옮겼다. 보통 과외 수업을 할 때 집에는 아무도 없고 녀석과 나 둘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냥 평소처럼 녀석과 나는 영어 수업을 한 것이고 우리는 다음번에 또 만나서 진도를 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양심에 찔렸으나, 한편으로 이 정도 해프닝은 별 거 아니라고, 나중에 더 잘 가르쳐 주면 되지 않나 하는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그날이 무사히 지나기를 바랐다. 혹여 어머니께 전화라도 올까 봐 신경이 쓰이긴 했다. 녀석이 형 같은 과외 선생님의 배려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를 바랐다.


 " 삐~~~~~~~~~~~~ 삐~~~~~~~~~~~~~~~ "


 전화가...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XX 엄만데요. 오늘 혹시 수업하고 가신 건가요? "


 " 아, 네.. 아까 XX 하고 영어 수업하고 왔어요. "


  전화기 저편으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선생님, 정말 수업하신 거 맞으세요? 우리 막내 아이들이 그 시간에 집에 가 보니 집에 오빠도 없고 선생님도 안 계셨다고 하던데요. "


 순간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고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머니는 이미 상황 파악을 끝내고 내게는 그저 확인을 하기 위해 전화를 하신 거였다. 이미 나는 녀석과 입을 맞춘 알리바이도 사라졌고 공모를 한 것이 들통나는 순간이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어떻게 이다지도 수치스럽고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수화기를 붙들고 있던 그 찰나에 온갖 감정들이 온몸을 헤집고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2018년]


 침대에 누워 달콤한 아침잠을 즐기고 있던 순간에 아무런 이유 없이 녀석이 떠 올랐고 그 녀석과 연락이 끊어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찌릿하니 아팠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나에게 '폐소 공포'와 같은 숨 막힘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 사실 그리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대상이 아니었다. 눈을 감고 침대에 편안히 누워 있던 때에 문득 떠 오른 과거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저 녀석과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다는 데에 생각이 다다랐을 뿐이다. 그런데 그 사실이 그 순간 - 잠시였으나 - 내 숨을 막히게 하는 답답함과 공포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지금은 괜찮다. 별일 아니었다. 아주 잠시 그랬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뜬금없이 나를 찾아온다. 평소엔 기억하지도 떠 올리지도 않았던 인연들이 말이다.


 혹시 삶 속에서 나를 만났던 사람들에게 나도 그렇게 불쑥 나타나 버리게 될까? 나의 존재도, 나와의 단절도 그 누군가에게 잠시 숨 막힘과 통증을 느끼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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