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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an 25. 2016

탄생과 죽음, 삶이란 아이러니…

고인의명복을빕니다

  올해 1월은 몸서리치게 차디찬 날씨 속에 개인적으로 너무도 극적인 사건을 두 번이나 겪었다.   


  불과 사흘 전 나에게 있어서는 늦둥이 딸이 태어났다. 마흔을 넘어 첫 딸 이후 11년 만에 보는  갓난아기였다. 아내는, 아이를, 살고 있는 일본에서보다는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중국에서 낳기를 원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기 몇 달 전에 중국으로 건너갔다. 아무래도 낯선 곳에서 아기를 낳고 몸조리를 하기보다는 부모님이 계신 곳에서 거사를 치르는 것이 훨씬 마음 놓였을 것이라 여겨 나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20일이 예정일이었지만 초산이라 조금 늦어질 걸 감안하여 19~24일 일정으로 중국에 들어갔다. 20일 피가 보여 제발로 걸어 들어가 병원에 입원했다. 21일까지 진전이 없어서 우리는 너무 일찍 들어왔다고 밖에서 맛난 거 먹으면서 더 놀다고 들어올 걸 그랬다고  아쉬워했다. 이러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도 못 보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살짝 끌탕하기도 했다.   


  22일 오후가 되자 자궁 수축이 시작되고 그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우리는 오후 3시에 분만실로 옮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축이 심해졌고 통증 또한 그 강도를 더해갔다. 저녁 7시쯤 되어서는 너무 아파하여 자연분만을 포기해야 하나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결국은 의사 선생님을 인터폰으로 부르고 말았다. 아내가 죽을 것 같다고 더 못 견디겠다고 간절히 애원해서 어쩔 수 없었다.   


  옆머리를 짤막하고 단정히 자른 젊은 남자 의사가 들어와서 아내를 상대했다.   

“都是这样的,做妈妈的事情都一样。 不是你一个人这么辛苦的。 鼓励自己加油!”  

(다 이래요. 엄마 되는 일이란 다 똑같아요. 혼자만 이렇게 고생하는 거 아니랍니다. 스스로 힘을 북돋아주고 파이팅하세요!)  


  그 젊은  의사뿐 아니라 뒤이어 들어온 여자 의사와 조산원 및 간호사들도 수술 같은 건 꿈도 꾸지 말라는 듯 힘내서 좀 더 전진하자고 계속 몰아갔다. 결국 아내는 분위기를 타고 용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렇게도 열리지 않던 문이 1시간 만에 크게 열려 오후 8시 21분에 ‘복덩이(태명)’가 씀풍하니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여자들이 겪는 출산의 고통은 아무리 상상해 보려 해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저 너무너무 아프고 고통스럽고 괴롭고 힘든 과정이라 표현만 할 뿐. 아내가 포기하고 싶어 할 때 나는 포기하지 말라고, 조금만 가면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힘들까 생각만 할 뿐. 그래서 그 무한의 아픔을 감내하고 초인적인 힘과 용기로 아기를 낳은 아내가 진심으로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회사에 매인 몸이라 몸조리도 못한 아내와 갓 태어난 핏덩이 딸을 두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24일 오전 광저우에서 출발해 상해를 거쳐 후쿠오카로 돌아오는 경유 항로였기 때문에 중국의 병원에서 출발해서 일본 집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14시간이나 걸렸다.   


  언제나 그렇듯 비행기 속에 몸을 싣고 하늘을 나는 시간은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을 방해받지 않고 몇 시간 동안이라도 지속할 수 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겪은 직후의 나의 마음가짐은 평상시와는 무언가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생명의 기운과 에너지가 엄청난 자극으로 일상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는 순간이었다.   


  밤 10시 반 경 후쿠오카 공항 밖으로 나오자 진기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겨울에도 여간해서 눈이 내리지 않는 이곳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아직도 멀었다는 듯 눈이 나리고 있었다.   


  운전을 시작해보니 차선이 눈으로 뒤덮여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미 고속도로는 폐쇄되어 있었고 일반도로에도 차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나는 마음을 고쳐 먹고 안전하고 느리게 가기로 결심했다. 라디오를 켜고 간만에 한밤중의 라디오 디제이가 들려주는 사연과 음악을 들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느릿느릿 주행했다.   


  아직 일어가 부족해 일본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들보다는 생활 속 이야기들이 사연으로 읽히는 프로그램은 그나마 듣고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중국에서부터 두 번의 비행기와 자가용 차 운전으로 이어진 14시간의 여정을 끝내고 꿀 같은 단잠을 자고 회사에 출근했다.   


  일본 직원들은 나를 보자 모두 “오메데또 고자이마스 (축하합니다)” 하며 기쁜 얼굴로 득녀 소식을 축하해 주었다. 나 역시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는데 이런 가볍고 들뜬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쌓인 이메일을 보고 있던 중 문이 열리면서 핫토리상이 들어섰다. 나와 두 눈이 마주친 그녀는 뚝뚝 떨어지는 눈물로 무언가 엄청난 사건이 터졌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일본어로 눈물범벅인 채 뭐라뭐라 이야기를 꺼내는데 누가 죽었다는 것이다.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몰라 재차 되물었던 나는 그만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우리의 동료로 일하던 친구가 어젯밤 유명을 달리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살이라는 선택을 통해.  


  내가 충격에 빠진 이유는 단지 함께 일하던 동료의 죽음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친구가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3명의 한국인 중 하나였고 무엇보다 얼마 전까지도 서로 일본 생활의 고충을 나누고 격려를 나누던 10살 아래의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두 해 반 전에 나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 회사에 들어와서 나는 일본의 서쪽, 그는 일본의 동쪽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제법 일본어가 능숙하여 오자마자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그는 일본 생활이 썩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게다가 아직 여자친구가 없던 녀석은 여기서 일본 여자 친구를 사귀어 결혼도 하고 정착하고 싶다는 희망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근무 시작 후 1년 반 정도가 되어 즈음 현장에서의 일이 고되고 힘들어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일어 의사소통도 그럭저럭 잘 된 편이었지만 서른이 넘어서 계속 이렇게 고철을 취급하는 현장의 노동자로 일하는 것이 맞는 길인지 의아해하며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다.   


  가끔 동경 출장길에 만나면 너무  반가워하면서 말동무가 없었던 사람의 티를 팍팍 내며 좋아했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카톡 등으로 이런저런 고민을 토로하며 조언을 구하던 동생이었다. 오늘 그의 비보를 접하고 카톡을 열어 마지막으로 그와 나눈 대화를 찾아보았다. 몸이 안 좋아져 일본에서의 일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간 후 작년 9월에 나눈 대화였다.    


“잘 지냈니? 우리 늦둥이 내년 1월에 나올 예정이야~”  


“우와 잘 됐네요. 왜 이제 얘기하세요. 넘 축하드려요!”  


“그르게 ㅋㅋ 기회가 없었네~~~ 고맙다~~~”  


“이제 너 자리 잡고 장가가면 네 차례다. 물론 좋은 사람부터 만나야지만서도”  


“새로운 일자리 구하고 자리잡음 결혼 생각해볼라구요. 아직 생각이 안 들어요. 암튼 노력은 해볼게요 ㅋㅋ”  


“그래. 천천히 여유 있게. 몸부터 잘 만들고. 건강하게”  


“네 형, 감사합니다. 담배 끊고 건강 찾겠습니다. 몸 관리 잘 해 놓을게요! 형도 건강 잘 챙기시구요”  


“파이팅하자고!!!!!”  


“넵!!! 형!!!!”  


  무엇이 그 녀석으로 하여금 세상을 등지게 하였을까. 이 추운 겨울날 떠나는 동생의 마음은 얼마나 춥고 황량했을까. 마음이 너무 쓸쓸해진다.   


  새 생명을 만난 기쁨으로  벅차올랐던 감정은 이 동생의 불의의 죽음으로 뒤죽박죽이 되었다. 삶이란 게 이토록 허무한 것인지. 나는 왜 좀 더 그 친구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더 못해줬는지 밥 한 끼 제대로 사주며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훈아.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서 행복하렴. 할 수만 있다면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하루하루가 따뜻하고 보람찬 삶으로 가득 차기를… 형이 많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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