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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Nov 15. 2017

중국 광저우 식물원을 거닐며

소박한 사람들과 보낸 하루

한국, 중국, 일본의 식물원?


 가족들이 다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일요일이었다. 아내가 광저우 식물원으로 어린 딸을 데리고 피크닉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우리 가족만 가는 게 아니고 친구 가족과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그쪽도 딸과 생년에 생월까지 같은 동갑내기 아들이 있다고 했다. 내심 일요일에는 광저우의 지인들을 따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접기로 했다. 아내의 기대에 찬 모습에 실망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식물원이라고 하는 델 둘러 본 적이 많이 있으나 중국에서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솔직히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냥 널찍한 공간에 나무들이 즐비하고 꽃들이 피어 있는 조금은 따분할지도 모를 곳이라 지레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이 식물원에 먼저 도착했다. 사전 정보 없이 광저우 식물원에 들어선 나는 호수를 끼고 정자가 놓여 있는 첫 공간을 마주했다.


' 아, 달라. 정말 달라. 어쩜 이렇게 한눈에 한국과 일본과 중국의 조경이 다른 걸까. '


 일본에서 전통 정원이라는 델 다니면서 우리나라와 참 다르다 다르다를 외쳤는데 중국에 오니 두 나라와 또 분위기가 다른 것에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느낌을 받았다.

 

광저우 식물원 전경
연두초록빛 연못 속에 비친 반영이 좋았다.


다보탑과 석가탑이 보여 주는 아름다움의 차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의 공원이나 정원에 가 보면 그 깔끔하고 잘 정돈된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오곤 했다. 보이는 것은 나무와 풀과 꽃 그리고 연못 등 자연의 한 부분들인데 사람의 손길이 정성스레 묻어나고 마치 이쁘게 포장된 선물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많다.


 반면 우리나라의 공원은 얼마 전 방문한 경주 불국사나 왕릉에서 받은 느낌처럼 일본과 비교가 된다. 확실히 일본에 비해서 아기자기하고 이쁘게 가꾸어진 느낌이 덜 했다. 나무와 풀꽃의 배치며 손질된 모습들이 한결 담백하고 간결한 느낌이 든다. 연못이나 호수를 조성하고 꾸민 모습에서도 그 차이가 느껴지는데 이걸 다보탑과 석가탑이 보여 주는 아름다움의 차이라 말할 수 있을까.


 광저우 식물원을 거닐며 받은 인상은 위 두 색깔과 또 달랐다고 느꼈다. 내가 찍은 사진 속의 풍경은 조금 더 잘 정돈되고 깔끔하게 가꾸어진 이미지가 엿보이지만 실제로는 좀 더 푸근 편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조경보다는 우리나라의 그것에 좀 더 가까운 편으로 와 닿았다. 하지만 일단 규모 면에서 볼 때 중국이 단연 압도적이다. 광저우 식물원 역시 12시에 도착해서 풀밭 피크닉 타임을 제외하고 걷는 데만 몇 시간을 할애해도 전체 코스를 돌지 못했다. 게다가 햇볕이 강하고 강수량이 풍부한 중국 남부에서 자란 아름드리 나무들은 대체 수명이 50년이 되었는지 100년이 되었는지 가늠할 수 없으리만치 크고 굵고 웅장하기 그지 없었다.


마치 그림 속 풍경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땅을 뚫고 솟아나온 듯 보이는 요 녀석들의 정체가 뭘까?

●잠시 비교: 경주 불국사 연못 하나
●잠시 비교 2: 경주 불국사 연못 둘


그러나 왜인지 쉽게 가지기 어려워진 그 잔잔하고 평화로운 시간


 아내의 친구라는 분이 실은 직접적인 동창 관계나 어린 시절 동무는 아니었다. 아이들의 또래가 비슷한 중학교 친구 가족들과 모인 자리에서 친구의 친구로 만났다고 한다.


 광동 사람들이 진한 쌍거풀진 눈을 많이 하고 있는데 반해 친구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눈매였다. 조근조근 미소를 띠며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살갑게 말하는 여인이었다. 한 살 연하라고 하던 친구의 남편은 반대로 전형적인 광동 사람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기계로 민 듯한 까까머리에 진한 쌍거풀 그리고 다부진 턱선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만나서는 말수가 적고 나머지 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물끄러미 듣는 편이었다.  


 잠시 거닐다 물가의 너른 잔디밭에 다다른 우리는 커다란 나무 그늘에 자리를 폈다. 매트 위에 가지고 온 음식들을 꺼내어 놓고 두 가족이 마주 앉아 점심 식사를 했다.


 아, 이렇게 가족과 함께 풀밭 피크닉을 나온 게 얼마만이던가. 테니스처럼 흥미진진하지도 않고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짜릿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가족들과의 주말 식물원 피크닉. 그러나 왜인지 쉽게 가지기 어려워진 그 잔잔하고 평화로운 시간. 나는 그 순간 안에 있으면서도 그 순간 밖에서 나의 모습을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풀밭 돗자리에 누워


 아이들과 고무공 놀이를 하다가 그만 지쳐 버렸다. 슬며시 매트가 깔린 자리로 돌아온 나를 보더니 아내가 이내 눈치를 챈다. 널려 있던 물건들을 치워 주고는 좀 누워서 쉬라고 했다. 옆에 아내의 친구가 있어 살짝 눈치가 보였지만 내 등은 어느새 바닥에 닿아 있었다.


 누워서 위를 올려다 보니 파란 하늘 배경에 푸르고 푸른 나뭇잎들이 촘촘하고 빽빽히 들어차 눈에 들어왔다. 몽롱해지려 하는 찰나에 거목의 무수한 가지들에 붙어 있는 초록빛 잎새들을 보면서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 저 나뭇잎 하나하나가 사람이야. 그런데 움직일 수 없어. 하지만 가지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의사소통이 가능해. 저 오른 편에 있는 잎사귀가 저 왼 편 윗쪽의 연둣빛 잎새한테 사랑을 느끼고 있구나. 어떻게 마음을 고백할까 고민하고 있군.'


 잠시 그 움직일 수 없는 이파리가 되고 싶다 생각했다.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인간이 과연 한 해를 한곳에 붙어 있다 낙하하며 생을 마감하는 잎보다 나은 존재이던가.



 반팔로 다니던 그 공간을 떠나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겨울 나라에 왔다. 겨우 세 시간만 타도 나는 다른 세상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불과 며칠 전 그 시간과 공간을 이제는 아득하게 떠 올리고 있다는 게 매번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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