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드레아 Mar 19. 2018

[배우 손예진과 소지섭]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냥 그 맛을 온전히 음미하며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약간 서늘한 날씨라 느끼며 오후 한 시가 넘어 집을 나섰다.

일요일엔 집 근처 식당들도 문을 많이 닫는다.

그래서 신호등을 건너 상가가 많은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일에 그렇게 북적이는 신사역과 가로수길 근처도 일요일엔

한적함이 느껴진다.


바다와 강 그리고 저수지와 야트막한 뒷산이 있는 키타큐슈의 한적함도 좋지만,

이런 도심 속의 한적함도 나쁘지 않다.


걷고 또 걷고 문을 연 식당을 향해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인다.


신사동과 압구정동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작년 말에 이 근처로 이사한 후에나 알게 되었다.


집에 세탁기가 없기 때문에 일이 주에 한 번 정도

용인 부모님 댁으로 빨랫감을 들고 가는 주말이 아니면,

오늘처럼 이렇게

평소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의 텅 빈 느낌을 즐기며

늦은 점심을 해결하러 거닌다.


아니나 다를까 문이 닫힌 식당들을 지나쳐 터벅터벅 걷다 보니

한 달여 쯤 전에 우연히 만난 '두부 공작소'라는 가게에

다시 도착하게 되었다.


지난번처럼, 중년의 부부 보는 분들이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맞아 주셨다.


일요일에 문을 연 식당도 별로 없거니와

가격도 착하고 맛도 좋은 가게라 그런지

조금 늦은 점심이었지만

오늘도 역시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매콤한 낚지 덮밥을 시켜 혼자 먹었다.

먹으면서 스마트폰은 보지 않았다.

그냥 그 맛을 온전히 음미하며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3시 50분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밥을 다 먹고도 시간이 한 시간쯤 남았다.

집을 나선 지 두 시간 정도 지나고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잠시 책이나 읽을까 했지만

몸은 달콤한 낮잠을 원했다.


반 시간 조금 넘게 깊은 잠을 자다

알람 소리에 몸을 몇 번 뒤척이며 일어났다.

3시 40분.

가볍게 씻고 옷을 입고 나설 때 이미 3시 49분이 되었지만

영화는 시작되기 전 약 10분 동안 광고 타임이 있기 때문에

그저 빠른 걸음으로 집 근처의 영화관으로 향했다.


배우 손예진의 의미


여자들은 손예진이라는 배우를 어떻게 생각할까?

남자들은 그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 연애소설에서였는지

아니면 드라마 연애시대에서였는지 분명치 않다.

아, 영화 클래식이 먼저일는지 모른다.


찾아보니 영화 연애소설은 2002년,

영화 클래식은 2003년에 개봉되었고

드라마 연애시대는 2006년에 방영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두 영화도 드라마도 제 때 보질 못했다.

연애시대는 중국으로 파견되어 일하던 2008년 이후에,

연애소설도 아마 그 시절에 컴퓨터로 다운받아서 감상했던 것 같다.


한 커플이 이혼한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던

드라마 연애시대.

꽤 넓었던 텅 빈 집에서 연애시대를 감상하며

손예진과 감우성이라는 훌륭한 배우를 만났고

그 둘의 이야기에 흠뻑 젖어 버렸다.


아직도 내 눈과 귀에 생생하다.

옛 남편 감우성의 결혼식에 얼떨결에 참석하게 된

손예진이 솔로로 부르던 축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 가득한 눈동자,

짓궂은 신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듯

가슴 패이는 그녀의 목소리.

미세하게 흔들리며 떨리던 그녀의 어깨.


남자인 나는 그 시절

여자 주인공의 마음에 그만 감정이입하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그 뒤로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 작품의 종류가 무엇인지

작품의 평이 어떠한지

누가 만들었는지 혹은 누구와 같이 찍었는지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배우 손예진이 나온다는 이유로

나는 그 작품을 열 뿐이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일본 원작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오래전에 감상했었다.

아지랑이 같이 가물거리는 기억을 안은 채

영화관에 들어섰다.


역시나 예전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인지

영화는 처음 보는 스토리인 것처럼 새롭게 다가왔다.

게다가 소지섭과 손예진의 호흡은 내 기억으로

처음이었기 때문에 신선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내가 신선함이나 산뜻함 같은 기분으로

영화를 감상하도록 놓아두지 않았다.


사실 영화 초반 엄마 펭귄과 아기 펭귄의 이야기가 나오는

동화 이야기에서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오래전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타인의 이야기가 슬퍼서 울지.

그런데 그 울음이 깊어지면

그건 더 이상 그 사람이 불쌍해서 우는 게 아니야.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 불쌍해서 우는 거야.'


그랬다.

오늘 난 영화 속의 엄마 잃은 아이가 불쌍해서 울었고

아내를 잃은 아빠가 불쌍해서 울었으며

그 두 사람을 세상에 남겨둔 채 떠나야 했던

한 여자가 가여워서 울었다.

하지만 결국엔 거기에 겹쳐 떠오르는

두 영혼 때문에 흐르는 뜨거운 줄기를

막아낼 수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몸이 이상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를 것만 같았다.


손끝에서 시작되는 사랑


슬픔은 두 남녀가 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교 시절 처음으로 가까워지면서

풋풋하게 사랑을 키워나가는 장면에서

잠시 진정되었다.


손 한 번 잡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웠던

그때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순수한 사랑.


손 끝만 닿아도 찌릿찌릿하며

온몸이 달아오르던 그때가

두 배우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두 번 다 여자가 먼저였다.

남자의 호주머니에 한 손을 집어넣고

기다려 주던 그 떨림의 시간.


여자는 자신을 향한

남자의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남자로 하여금 용기를 내도록 배려해 주었다.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높은 글이기에

가급적 스토리보다는 나의 주관적 느낌을 쓰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마저도 영화를 감상하려는 분들께 방해가

될 소지가 크지만 말이다.


이쯤 해서 입을 닫으려고 한다.


언제 시간을 내어 일본 원작도 다시 한번 감상하고 싶다.


오래도록 가슴으로 기억할 영화를 오늘 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취월장] 신영준/고영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