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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Apr 21. 2018

전등사에서

강화도의 봄

 수다가 좋은 나에게 그들은
맛있고 은은한 소재들로 호응해 주었고
 그 시간은 참 따뜻하기 때문이다.


 4월인데 참 날씨가 서늘하다. 강화도 하루 여행을 떠나는 날도 비 소식이 있었고 흐리고 비가 흩날렸다. 몇 년 동안 함께 글을 써 왔던 문우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특별한 채움을 주곤 한다. 수다가 좋은 나에게 그들은 맛있고 은은한 소재들로 호응해 주었고 그 시간은 참 따뜻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 강화도행을 그런 벗들과 함께 했다.


 전날 밤 너무 늦게 잠드는 바람에 늦잠을 자 버렸다. 친구들에게 사실대로 고하고 부리나케 준비하고 뛰쳐나갔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해 나온 벗들에게 미안했다. 효창공원에서 세 명이 합류해 부천으로 한 명을 더 태우러 갔다.


 마지막 한 명이 오기를 기다리며 편의점에서 요깃거리와 커피 그리고 에너지 드링크를 샀다. 이 친구들 중 두 명이 하리보라는 젤리를 특히 즐겨 먹기에 눈에 보이는 것들 가운데 두 종류를 집어왔다. 하지만 정작 봉지를 뜯고 나서는 내쪽 젤리가 더 빨리 자취를 감추었다.


 비나리는 날씨에 여행을 떠나며 드라이브하는 차속에서 벗들과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내 모습이 좋았다. 게다가 한 친구가 디제이를 자처하며 좋은 노래들을 깔아 주었고 빗물에 촉촉이 젖은 감성으로 우리는 그 순간순간을 충실히 지나고 있었다.


 전등사 입구는 허름하고 촌스러웠다. 기념품 가게와 식당, 카페 그리고 공중화장실이 산으로 오르는 초입에 부산해 보이는 간판을 지닌 채 흩어져 있었다.


 비가 잦아들었지만 부슬부슬 계속 내리고 있어 우산을 받쳐 들고 걸었다. 풍경을 담을 때 우산이 거추장스러웠다. 하지만 한 손으로 비교적 손쉽게 다룰 수 있는 폰카메라였기 때문에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풍경은 보면 볼수록 다른 느낌이다.


 거참 다르다. 일본 키타큐슈에 살 때에도 나무가 있고 꽃이 피어나는 곳을 찾았고, 저수지며 바다를 산책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일본의 풍경은 보면 볼수록 다른 느낌이다. 뭘까. 뭘까. 그 차이가 무얼까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우선 북큐슈는 제주도와 비슷한 위도로 서울보다는 평균 기온이 높다. 그러니까 살고 있는 나무들이 좀 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게 보이는 소나무가 거기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국화가 벚꽃이라 그런지 벚나무가 내 눈에는 가장 흔하게 보였던 것 같다.


 가을이면 일본도 곱게 단풍이 들지만, 북큐슈 쪽의 단풍은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화려하고 선명한 색의 향연을 보여 주지 못했다. 그 모습은 키타큐슈에서 후쿠오카를 거쳐 온천으로 유명한 유후인이나 벳부를 향해 가는 길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산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저 푸른 나무들 사이로 물 빠진 갈색빛이 보이고, 가끔 살포시 붉게 혹은 노랗게 물든 단풍잎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큐슈에도 단풍이 어여쁘게 물드는 곳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고속도로를 달려도 가을이면 쉽게 자주 만나는 우리나라의 그 강렬한 색감에 비하면 비교적 온화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일교차가 우리나라보 심하지 않아서 격정적인 컬러가 만들어지기 어려울 거다.


 또 대표적으로 차이가 느껴지는 풍경은 건물의 자태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일본 만화영화를 보며 일본의 가정집과 전통적인 가옥이 우리와 다르다고 느꼈다. 그런데 일본에 와서 살아 보니 그 애니메이션 속에 나오던 집들이 실제 그대로 존재하는 걸 알고 ' 아! 진짜네. 이렇게 생겼네. 아, 신기하다.' 하고 소박하게 감탄했었다. 실제로 그런 건 아닐 수 있는데, 내 감정으로 느끼는 일본의 건물은 우리나라에 비해 곡선적인 감성으로 다가왔다. 마치 일본 사람들처럼  집들도 좀 더 조심스러운 모습이었고, 정갈하면서도 깨끗했다. 전통적인 가옥은 물론이고 현대적인  독립주택과 아파트 혹은 빌라 역시 그런 차이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밖에도 북큐슈는 바닷가의 풍경, 바다의 색깔, 공기의 맛, 하늘과 구름의 모양, 강가나 시냇가의 분위기, 거리의 사람들 모습, 물론 빠질 수 없는 자동차들의 디자인, 간판 등등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비행기로 오래 가야 닿을 수 있는 먼 나라들이야 이국적인 게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겨우 한 시간 떨어진 일본과의 풍경 차이는 늘 나에게 가깝고도 먼 두 나라의 관계와 연결 지어 떠 오르는 느낌이었다.



 촉촉해진 전등사


 전등사우리나라의 다른 곳들에 비해 조경에서 디테일하게 신경을 많이 썼고 매우 세심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 사찰에 비해 조금 더 담백하고 좀 덜 세밀한 느낌이었지만 우리나라 다른 절들의 풍경에 비해선 오밀조밀하고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와 처마의 끝자락과 잔가지들이 텅 빈 하늘과 이루어내는 조화는 교토의 키요미즈테라나 후쿠오카 노코노섬에서 보았던 찰나의 풍경을 떠 올리게도 했다.


  날씨가 맑기를 바랐으나 비 오고 흐린 날의 외출은 그 나름의 만족감을 선사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덜하고 채도가 낮아진 세상은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는 것이다. 빗물을 머금은 꽃과 나무는 마치 샤워를 방금 끝내고 나온 듯 싱그러웠다. 한 번도 폰카메라를 벗어나 보지 못한 나지만 물방울 맺힌 봄꽃을 만나자 가까이서 그 모습을 담고 싶어 졌다. 왼쪽에서도 찍어 보고, 아래쪽에서 혹은 비스듬한 각도로 그 해맑고 순수한 얼굴을 얻기 위해 애썼다. 전문 사진가의 접사 촬영에 비할 바 아니겠으나 그 순간 흡족할 만큼의 사진이 나왔고 우리들은 서로의 사진을 나누어 보며 웃고 있었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천천히 걸으며 절 곳곳을 탐닉하다 차를 한 잔 하러 기념품 가게와 함께 운영되는 찻집에 들렀다. 신을 벗고 올라갈 수 있는 방이 있었다. 나무 창틀로 된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빗물이 떨어지는 바깥 정취를 느끼도록 배려해 주었다. 창틀 옆으로 흙 도자기 찻잔과 작은 그릇들이 쪼르르 소탈하게 앉아 있었다. 몇 가지 차 중에서 나와 또 한 명은 '대추차'를 주문했다. 비도 오고 날씨는 서늘하니 따뜻하고 진한 게 필요했다. 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수다를 막 떠는 와중에 주문한 대추차가 키작고 넓은 찻잔에 담겨 상위에 올랐다.


 한 손으로 잔을 받치고 한 입 조심스레 음미했다. 뜨겁고 걸쭉한 액체가 혀에 닿고 입안을 적시며 목으로 넘어갔다.


  아!


 말하지 않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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