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해지는 오후 2시.
며칠 전 밸런타인데이라고 받은 꾸러미 안에 막대사탕 하나가 있는 걸 발견했다. 요새는 맛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져서인지 사탕을 거의 먹지 않는다. 꾸러미를 받자마자 초콜릿이나 맛난 과자를 꺼내 먹고 사탕은 그냥 뒀었다.
사무실에서 노트북 모니터를 보는데 머리가 혼미하고 졸렸다. 그때 막대사탕을 생각해낸 것이다. 사탕 머리에 쌓인 비닐 껍질을 벗기고 날름 입 속으로 가져갔다.
앗, 이건 무슨 맛?
0.5초? 1초? 이 맛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맛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평소에 자주 접하는 맛이지만 사탕에서는 상당히 오랜만에 맛보는 것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콜라맛 사탕.
금세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이 들었다.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모니터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사십 대 아저씨가 이러고 있는 걸 누가 보면 뭐라 할까. 모르긴 해도 썩 좋은 얘기는 안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오후에 나는 이 방에 혼자 일하고 있다. 옆에서 일하는 핫토리상이 바깥쪽 테이블로 옮겨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1973년생이다.
이 나이대의 한국 성인 남자들과는 좀 다른 먹거리 식성인 나는 아이스크림을 정말 사랑한다. 이제 와서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음… 아주 어릴 때였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훨씬 전으로 기억한다. 우리 동네 문방구 겸 잡화점 문 앞에는 아이스케키 통이 놓여 있었다. 지금과 같은 전기 냉동식의 통이 전혀 아니다. 그냥 사각기둥 위에 둥그런 구멍이 있고 그 구멍 위에 둥그런 고무 뚜껑이 덮여 있는 아이스케키 통이었다.
그 당시 돈이라는 개념이 아직 들어서지 않을 때였다고 믿는다. 동네 형들이 그 문 앞에 놓인 통 고무 뚜껑을 열고 차디찬 하드를 꺼내는 걸 보았다. 나는 옆에 가서 조금 얻어먹었던 걸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달콤하고 찬 아이스케키 하드라는 걸 배웠다. 뜨거운 여름날 이 것을 먹는 것처럼 행복한 사건은 많지 않았다.
어느 때부턴가 나는 동네 형들과는 독립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즉, 멀찌감치서 문방구 주변 동태를 살핀 후 사람이 없을 때 그 아이스케키 통으로 살며시 다가간다. 그리고 조용하고 은밀하게 고무 뚜껑을 여는 것이다. 재빠른 동작으로 통 속에 손을 집어넣어 하드를 꺼낸다. 즉시 물건을 가지고 현장에서 사라진다.
뭐가 뭔지 모르던 유아 시절 부끄러운 과거였다. 돈에 대한 관념은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물건을 그냥 가져가는 건 뭔가 위험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몰래 재빨리 일처리를 했던 것 같다. 그때 그 문구점을 하시던 주인아저씨께서 이 어린 도둑 때문에 손해 보신 것을 충분히 만회하시면서 잘 살아가셨기를 때늦은 지금 소망해 본다.
콜라맛 막대사탕 때문에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어릴 적 추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잠시 요새 느끼기 어려운 색다른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제법 기분 좋은 오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