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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Sep 27. 2018

흠뻑 젖어서

광저우 산책

 
때가 벗겨진 미소가 번지는 얼굴

 어제 유에슈 공원 연못에서 배를 탈 적에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졌다. 지붕이 있는 배였지만 엄청나게 들이쳐내렸기 때문에 우리들은 바깥으로 난 몸부터 서서히 젖어갔다. 배 밑바닥에 빗물이 고였고 마침내 속옷과 신발까지 온몸이 빗물로 질척거리기에 이르렀다.

유에슈공원의 작은 연못

 폭우가 줄어들기를 기다려 커다란 연못 안을 유람하던 작은 쪽배들은 각자 은신처랍시고 숨을 곳을 찾아 움직임을 멈추었다.


 빗물은 우리 몸을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지만 우리의 얼굴엔 때가 벗겨진 미소가 번졌다.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 행복감은 그렇게 찾아오곤 한다는 걸 느꼈다.

 시간이 다 되어 뱃머리를 뭍에 대고 나올 때에는 다시 한번  빗물 샤워를 했다.


광저우 하이주구의 샛강
광저우 주강의 흐린 오후 풍경

[하루가 지나고]


 한낮  평일 티엔허 한 상가의 영화관에 우리 말고는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찾을 수 없었다. 10개가 넘는 상영관을 둔 그곳을 마치 잠시 전세를 낸 것 같은 기분으로 유유히 거닐며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를 볼까 하다가 3D 밖에는 상영하지 않는다고 해서 중국 본토 영화를 골랐다. 중국어를 한다지만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함을 알기에 중국어 자막과 본토 사람의 보충 설명에 의존하기로 했다.


 슬픈 영화라고만 듣고 갔다. 알고 보니 중국의 학교폭력을 다룬 영화였다. 주연 배우를 맡은 연기자들이 맡은 역은 대부분 중학생이었는데 실제 배우들의 나이는 99년생, 96년생 등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였다. 한 번도 이 영화에 대해 혹은 이 배우들에 대해 들은 이야기도 본 기사도 없었다. 중국 영화를 그것도 최신 작품을 접한 기회가 별로 없는 나이지만 이렇게 간혹 광저우에 올 때 우연히 만나게 된다.


 아주 많은 경우에 느끼는 것은 기대 없이 본 영화가 무척 좋았다는 사실이다. 어떤 선입견이나 목표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화선지와 같은 마음으로 영화의 먹물을 빨아들이게 되는 걸까. 


영화 패터슨을 떠 올리며


 이런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났던 작년의 기억이 있다. 영화 패터슨이 그랬다. 거의 스무 명 가까이 단체 관람을 했었다. 도시의 이름과 버스 운전사 일을 하는 주인공의 이름이 패터슨으로 동명이었다. 더 흥행하고 있고 재미있을 것 같은 영화가 있었으나 어쩌다 이 영화가 낙점을 무르와 두 시간 동안 예술영화에 가까운 겉보기에 지루하고 조용한 이 영화를 모두 감상하게 된 것이다.

 그때 나 역시 더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고 영화 패터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그 영화를 보는 걸로 결정이 났을 때 당연히 기대가 별로 없었다. 버스 운전을 하며 틈틈이 시를 쓰는 주인공 패터슨의 일주 간 일상이 반복적으로 묘사되었다. 영화라면 반복적인 패턴이 세 번 정도 돌면 무언가 사건다운 사건이 생길 법도 한데 이 영화는 끝내 일행의 기대나 예측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물론 대가 짐 자무쉬 감독이 아무런 복선도 깔지 않고 어떤 장치나 메시지도 담지 않았을 리 만무하지만 적어도 일반인의 수준에서는 충분히 지루할 만큼 단조롭고 임팩트가 적은 영화였던 것 같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보는 영화는 무슨 물건이 나올까 기대하게 만드는 표시 없는 상자와도 같다. 화려함과 거리가 있는 영화일 거라는 추측은 영화의 이름과 영화관에 들어서면서 함께 하는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영화는 그 추측과 틀리지 않게 아주 잔잔하고 차분하게 흘러갔다. 배경음악이 어떤 멜로디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스크린에 채색된 분위기와 어긋남이 없었음에 틀림없다. 


 소박한 도시의 버스 운전사는 매일 같은 패턴의 하루를 보내지만, 그에게는 세상을 노래하는 시의 세계가 있다.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거나 스마트폰을 터치하지 않는다. 투박하고 예스러운 노트와 펜이 그만의 세계가가 창조되는 요람이다. 그가 시를 쓸 때는 확연히 다른 색감과 분위기의 화면으로 바뀌었다. 패터슨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전형적이라 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패터슨의 아내가 그의 일상 속에 늘 함께 한다. 인도인으로 보이는 그는 밖에서 일을 하지 않는 전업주부이지만 남편의 시 세계와는 또 다른 그만의 예술 세계를 가꾸며 살고 있었다. 옷감류의 재료에 물감을 들여 어떤 패턴을 그려 넣거나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내곤 했다. 때로는 그렇게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옷을 걸치고 외출을 나갔다.


 (중략)


 황송할 만큼 대접받는 기분으로 영화관을 독차지한 채 관람을 마쳤다. 예전의 법칙이 이번에도 통해서 기대 없이 본 이 중국 영화 역시 흡족하고 꽤 흥미로웠다. 대만 혹은 홍콩 영화보다 더 접하기 어려운 중국 본토의 영화라는 희소성도 만족감을 더했다.

 

허름한 아파트를 무심한듯 감싸던 달빛

 유에슈 공원에서의 폭우로 족하지 않았나 보다. 영화관을 나설 즈음 빗발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우산은 삼단짜리 작은 사이즈 달랑 한 개였고 두 사람이 쓰면 한 사람도 제대로 비를 피할 수 없었다.


 스콜성 소나기가 퍼붓는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가던 우리는 어제와 똑같이 물벼락 맞은 꼴이 되어버렸다. 설상가상 도로 위를 질주하던 차가 고여 있던 물웅덩이를 세차게 밟으며 지나가던 통에 순식간에 구정물 세례를 받고야 말았다. 하얀 운동화는 보도블록과 차도의 까만 찌꺼기를 양식장 김처럼 널고 있는 꼴이 되었다.


 날씨만 보면 이틀 동안 우리는 참 운수가 나빴다고 해야겠다. 어찌 하루도 아니고 이틀 연속으로 물에 빠진 처량한 생쥐꼴이 되었을까.


 그런데 스스로 놀랍게도 그런 처지가 그리 싫지 않았다. 축축해진 몸은 한없이 불편하고 찝찝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내 안의 또 하나의 나는 그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기고 있었음을 감지했다.


 머리가 또 마음이 나의 바람과는 너무도 다르게 어지럽고 산란한 나날이 이어진다. 피할 수 없는 길목을 앞에 두고 다시 한번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밀려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진실로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 때임을 누군가가 자꾸 일깨워 주고 있다. 선량한 자, 진실한 자, 도를 지키는 자가 우뚝 서는 시대가 열리고 다시는 닫히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 뿐.


광저우 창롱의 조류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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