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을 가려는 당신께
몇 개월 만에 서울로 출장을 왔다. 거래처들을 방문하고 전 회사를 들러 옛 동료들도 만났다. 그리고 나처럼 회사를 떠나 다른 회사로 이직한 선배도 보고, 자기 사업을 시작한 후배와도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출장 며칠 동안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암울한 경제 환경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했고 본전만 되어도 대단하다고, 버티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언제나 현재의 위치를 떠나 새로운 곳을 향하는 것은 두렵다. 그 가운데 현재의 직장을 떠나 이직을 고려하는 것은 참 힘든 일 중 하나이다. 부양의 의무가 없는 솔로라도 이미 익숙한 업무와 인간관계를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그 스트레스는 시작하기 전부터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 하물며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직 또는 새로운 진로 선택이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부담으로 또는 골칫거리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경험적으로 느낀다.
떠남이 생각보다는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떠남과 함께 잃게 되는 많은 것들이 생각보다 금세 채워지고
떠남을 통해 얻지 못했던 기쁨과 만족감이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무모한 떠남을 충동적이고 감성적으로만 권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다. 떠나 본 사람들을 무수히 만나고 그들의 경험을 듣고 내가 몇 번 떠나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초기에 흔히 좋은 직장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세 가지가 거론되곤 했다.
사람이냐!
돈이냐!
일이냐!
즉,
같이 일하는 사람이 나와 잘 맞는지?
돈을 충분히 주는지?
일이 나와 맞고 즐거우며 비전이 있는지?
그 당시 누군지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 가물가물한 내 기억 속 그분은 이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괜찮아도 좋은 직장이라고 했다.
과연 세 가지 다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걸까.
모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들은 일 년에 한 번 뽕 맞는 것처럼 받는 보너스나 경영성과급 때문에 그만두기가 어렵다고 했던 생각이 난다. 평소에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턱밑까지 꾸역꾸역 올라오는데 용기를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직장을 떠나면 과연 이만한 조건의 일터를 찾을 수 있을까. 혹시 더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도무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험을 나 역시 대기업 종합상사 사원, 대리, 과장 시절 그리고 차장 2년 차에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수백 번도 더 했다. 그리고 사회 초년생 시절 나의 첫 직장(모 종합편성채널 방송국)을 떠날 때도 했다.
충분히 생각하고 주변의 조언도 들어야 한다. 특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 또는 가고자 하는 곳에 이미 가서 경험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를 접수하자. 그 선택으로 인한 미래의 막연함이 어느 정도 걷힐 수 있다.
이렇게 했음에도 반신반의하게 된다. 인간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제는 선택과 결단을 내려야 한다. 경솔한 선택을 내리는 것인지 아닌지는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내가 포함되지 않았던 세계는 막상 뛰어들면
내가 포함되었던 세계처럼 시간과 노력을 들임에 따라 내 것이 된다.
그렇게 두렵고 무언가 함정이 많은 세계가 아닌 것이다.
오늘, 바깥공기는 차가우나 햇살이 따가왔던 오후에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나눈 후배는 나와 함께 종합상사에서 일하고 중동 주재원으로 몇 년을 나가 있다가 퇴직을 결심했다.
결단력 있고 총명한 그였으나 주재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해당 업계의 불황 여파로 해외 근무 기간 중 실적이 좋지 않아 맘고생이 많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중동에서의 네트워크를 탄탄히 다졌고 인재 시장에서 드문 중동 철강전문가로 탄탄히 성장했다.
독립한 여러 지인들 가운데에서도 정말 보기 드물게 이란계 기업의 한국 법인장을 맡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이다. 놀랍게도 그는 이란 본사와 몇 년 간의 동행 끝에 자기만의 완전한 독립을 이루어 낸 상황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이란 본사와 현재 법적인 분쟁을 겪고 있음에도 자기 사업을 의연히 해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개인 사업자에겐 부담이 될 금액이 묶여 있지만 이미 그는 자신의 네트워크와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산 철강재를 이란 시장에 수출하는 비즈니스를 안정적으로 해나가고 있었다.
한때 대학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함께 농구를 하며 알게 된 후배였고 우연히 같은 회사에 들어와 20대와 30대를 치열하게 함께 살았던 동료였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와 나는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2월의 따사로운 햇살에 비친 후배의 얼굴은 자신감과 관록으로 빛나고 있었다. 대기업에 다닐 때처럼 매월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생활하던 경제적 안정을 버린 대신, 자신의 경험과 능력으로 세계무대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기쁘게 일하고 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것이 있다. 앞서 소개한 후배의 케이스나 내 개인적 사례를 퇴직이나 진로 변경을 위한 일반화된 예로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황이 다르고 개인별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현재의 직장이나 비즈니스를 지속해 나가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미지의 세계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안정에 대한 관성 때문에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하고 답답함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면 용기를 내라는 것이다. 틀림없이 나에게 더 나은 선택의 기회가 있음을 그리고 그 리스크가 막연한 느낌보다 그리 크지 않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브런치 공간에서 이 글을 보시게 될 분들 가운데는 나의 모자란 경륜과 어리석음을 간파하고 지적해주실 수 있는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 믿는다. 나 역시 나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기회는 단 한 번이 아니라는 것. 혹 새로운 선택이 아니함만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도 충분히 고민하고 알아보았다고 생각한다면 해보자. 나의 이상과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지금의 생활이 구축해 놓은 방어막을 뚫어보자. 그리고 새로운 공기를 마셔보자.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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