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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직장을 떠나면 2편

당신의 이유 있는 포기와 도전

by 안드레아

첫 직장을 3개월 만에 떠났다. 학부 전공이 사회학이었는데 원래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대학교 3, 4학년 때는 유럽연합연구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하여 UN이나 EU 등 국제기구와 국가 연합체 등에 대해 공부하고 관심이 비슷한 학생들과 모여 미래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동아리 활동을 같이 했었다.


그러나 곧 학사 자격만으로 또 사회학 전공으로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은 요원함을 알게 되었다. 알아본 바 가장 빠른 길은 가고자 하는 국제기구가 있는 지역으로 유학을 가서 석사 혹은 박사 과정을 밟고 기회를 봐서 국제기구에서 인턴으로 일하다가 취업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당시 형편으로 유학을 가는 것은 무리였다고 판단했다. 일단 취업을 하고 다시 기회를 보자는 것이었으나 실상 인류와 국제 사회를 위해 공헌해 보겠다는 내 원대한? 꿈은 한물 건너갔던 것이다.


진로를 수정했다. 국제 사회가 아니라 먼저 내가 속한 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어떤 직업인들 사회에 공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시의 나 자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하고 반문한 끝에 언론사 기자직을 준비하기로 했다.


학교에는 언론사를 준비하는 졸업반 학생들이 많이 있었는데 나는 수소문 끝에 한 스터디반에 합류하게 되었다. 시사적 주제에 대한 논술 쓰기, 소프트한 주제의 작문 그리고 상식 과목을 함께 준비하는 모임이었다. 스터디 구성원 가운데 네 명은 나와 같은 학번이었고 한 명은 한 학번 위 남자 선배, 또 한 명은 한 학번 아래 여자 후배였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렇게 모인 사람들과 함께 학교에서 몇 개월을 준비하여 처음으로 기자직에 응시하게 되었다. 지금의 종편채널 가운데 경제 분야에 특화된 곳이었다. 서류 전형, 논술, 카메라 리포트 테스트, 최종 사장 면접으로 이루어진 단계를 하나씩 밟아나가면서 짜릿한 스릴을 느꼈다.


최종 발표가 났다. 기자, 카메라 기자, PD를 함께 뽑는 이 시험에서 나는 최종 9명의 수습 기자직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시 다른 한 기업의 최종 면접까지 마친 상태였으나 부모님과 상의하고 고민해 본 끝에 언론사행을 택하게 되었다.


앞서 이미 수많은 전형에서 불합격의 쓴 잔을 들이켠 상태였기 때문에 합격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게다가 간절히 바랐던 기자직에 합격했기 때문에 당시 기분으로는 마치 삼수 사수를 한 끝에 대입시험을 치르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것 같은 벅찬 기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출근하기 시작한 당일부터 시작된 OJT는 기본이라 치고, 매일 밤마다 이어지는 각 부서별 선배들과의 저녁 자리는 폭탄주와의 전쟁이었다. 하루는 산업부 선배들과, 하루는 정치부 선배들과, 하루는 증권부 선배들과, 하루는 임원들과… 이런 식으로 회사의 각 부서별 선배들과 저녁을 함께 먹고 친교의 시간을 가지면서 신입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입사한 지 한 달이 지나자 매일 이어지던 술자리는 좀 줄었지만 이제는 일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시작되었다. 입사 후 증권부에 배속이 되었는데 이 분야는 내게 정말 너무나 생소했다. 학교 다닐 때 배운 적도 없고 개인적으로 주식을 사서 거래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 분야에 대해 전문가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써내야 하니 이거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갓 들어온 신입한테 수준 높은 기사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자 자신이 내용을 잘 모르면 절대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올 리 없다. 모르는 것은 공부해야 하고 관련 전문가나 선배 기자들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며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방송국 기사는 신문과 달리 길이가 짧지만, 이를테면 1분 20초 정도 되는 리포트 기사를 쓰는 것도 내용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첫 문장 자체가 써지지 않는다.


당시 증권부에는 4명의 동기가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의 남자 동기는 나와 같은 신입으로 들어왔지만 이미 모 신문사 모 은행 등의 경력이 있던 친구였다. 선배들의 트레이닝으로 같은 주제에 대해 기사를 쓰면 이 친구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모를 정도로 후딱 기사 하나를 완성해 제출하는 것이었다. 기사도 써봤고 금융기관에서도 일해 봤으니 나와는 게임이 되질 않았다. 게다가 나보다 3살이 어렸던 나머지 두 여자 동기들도 기사를 곧잘 써내곤 하는 걸 보고 나의 압박감은 무지하게 팽창했던 기억이 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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