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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직장을 떠나면 3편

이유 있는 포기와 도전 (2편에 이어)

by 안드레아


증권부에서 내게 배정된 첫 출입처는 여의도 증권거래소. 이곳은 출입처 가운데 비교적 큰 곳이어서 우리 방송국에서는 나를 포함하여 모두 3명의 기자가 출입했다. 이른바 1진, 2진 선배들이 이미 포진해 있었고 나는 3진이었던 것이다. 1진 2진 선배들은 고정 좌석이 주어져 있었는데 신입이며 3진 기자였던 나는 자리도 없어서 공동으로 쓰는 몇 자리를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 나누어 써야만 했다.


당시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던 시절이라 기사를 써내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문장을 쓰는 모든 일들이 참 힘겨웠다. 증권부의 선배들은 대부분 친절히 하나하나 알려 주셨고 이끌어 주시는 편이었으나 같은 출입처의 1진 2진 선배들은 바쁘셔서 그런지 신입인 내게 전혀 신경을 써주지 않아 몹시 서운했고 고립감마저 들었다.


기자실에서 만나 인사를 먼저 해도 보는 둥 마는 둥 좀체 인간적인 교류를 가질 기회가 없었다. 다른 거래처의 동기들 얘기를 들어 보면 부서가 달라도 선배들이 밥도 같이 먹고 기사 쓰는 소스며 요령도 가르쳐 준다고 했다. 아마 내가 여자 후배였다면 좀 달라졌을까.


6월 1일에 입사한 나는 그 뜨거운 여름이 열기를 더해감에 따라 그렇게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한편으로 생각하길 공중파 방송국과 같이 위상이나 처우가 더 나은 곳에 가지 못하고 그냥 여기서 이렇게 비리비리한 모습으로 도퇴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커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도 에너지 넘치고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어느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일상의 삶에 갇힌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버거운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7월 말이 되었다. 신입이지만 며칠의 휴가는 주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쉬고 싶었다. 16년 전 당시 그 며칠의 휴가 동안 어디서 무얼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회사를 나가지 않고 쉬는 동안 그 혼돈의 세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음을 강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쉬는 동안 성당의 친구들 학교 선배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입사 동기들과도 같은 부서 선배들과도 허심탄회하게 대화했다. 동기들은 대부분 만류했다. 스터디 열심히 해서 어렵게 들어왔는데 왜 벌써 나가냐고 하는 동기도 있었고 같이 1년만 버텨 보자고 권유하는 동기들도 있었다. 내가 회사에서 가장 존경했던 같은 증권부 선배 둘은 내게 어떤 강압적 부담을 주지 않았다. 다만 마치 우애 깊은 친 형들처럼 그윽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함께 있고 싶지만 나 자신을 제일 먼저 생각하라고 했다.


*퇴사 결심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짧디 짧은 며칠의 휴가가 끝나갈 무렵. 내 마음은 이미 퇴직서를 다 쓴 상태가 되었다.


자, 그러면 나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무작정 그만두어도 되는 것인가. 퇴사를 기정사실로 하고 다음 선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방송국이라는 직장. 기자 본연의 업무는 꽤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퇴사를 결정하면서 이 부분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내가 이 직장에서 힘들었던 가장 큰 요인은 세 가지 정도였다.


하나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잦은 술자리와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 그로 인한 두려움과 생활의 피로감 누적이었다.


다른 하나는 매일 다니는 출입처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외로움.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


또 다른 하나는 증권부에서 주식을 중심으로 한 경제 기사를 써내야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 부족 및 주변 동기들과의 비교에 따른 좌절감이었다. 더구나 잘 해서 이를 극복해내겠다는 욕구도 들지 않는 것이 더 문제였다. 내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상 사회에 첫발을 디딘 16년 전의 내 스토리를 보시고 각자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좀 더 버티면 이겨낼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그래 적성에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렇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조금 더 버텨서 그 상황을 극복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스스로를 적응시켜 보다 나은 기자로 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의지박약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회사를 다녀도 위에 내가 겪은 어려움 정도는 어디에 가도 겪어내야 하는 정도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랬다. 그때의 나로서는 도저히 더 그곳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도무지 숨이 막혀 하루하루가 불행하고 또 불행했다. 마지막에는 그저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3개월 만에 내가 원하는 대로 회사를 떠났다. 동기 아홉 명 가운데 가장 빨리 퇴사를 결정한 것이다.


2000년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퇴직을 하고 16년이 지난 지금 그 기자직 동기 아홉 명 가운데 그곳에 남아 있는 동기는 딱 한 명이다. PD와 카메라 기자 동기들은 모두 그곳을 떠났다. 기자 동기 가운데 절반 정도는 공중파와 다른 종편채널로 이직했고 절반 정도는 나처럼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가끔 우리나라에 들어가 TV를 켜면 그 시절 동기들이 화면에 나와 뉴스 진행을 하거나 리포트를 하고 있는 걸 보는데 정말 감회가 새롭다.




*새로운 도전


8월의 뜨거웠던 열기 속에서 나는 해방감을 맛보았다. 하루하루가 미칠 듯 괴로웠던 터라 불과 3개월도 채 안 있었던 직장이지만 거의 제대에 비견되는 홀가분함과 기쁨이 따랐다.


퇴사를 하고 잠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면서 다음 계획을 세웠는데 약 3개월 정도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준비하다가 원하는 대로 잘 풀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써보고자 한다. 한 마디로 도전했다가 몇 차례에 걸쳐 실패를 맛보았다. 실패는 했지만 퍽이나 재미있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모든 퇴사가 항상 옳은 결정은 결코 아닐 것이다. 나처럼 직장을 떠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다가 아예 진입에서부터 좌절하거나 그 길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생각한 만큼 성공적이지 않거나 오히려 이전만 못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떠나기 전에 포기하기 전에 해볼 수 있는 노력은 어느 정도 최선을 다해서 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떠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 같다. 알아볼 거 다 알아보고 고민할 만큼 하고 내가 갈 길에 들어서 있는 사람들을 통해 경험을 들어보는 일이 아주 중요하기는 하나 모든 것을 완벽히 컨트롤하거나 예측할 수는 없다. 할 만큼 해보고 나서는 칼을 뽑아야 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무를 베는 일이 될지라도.


내 경우엔 첫 직장을 그렇게 빨리 정리하고 두 번째 도전에서도 깨끗이 실패한 후 전혀 다른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른바 ‘종합상사’라 불리는 무역회사에 입사한 것이다. 그 두 번째 직장에서 13년을 일했다. 첫 직장에 비하면 상당히 긴 시간이었고 거기서도 무수한 시련과 갈등을 느끼며 퇴사의 유혹을 받았지만 어쨌든 한 곳에서 10년을 훌쩍 넘기며 내 20대와 30대를 꼬박 바친 셈이다.


본인의 사례를 위주로 이야기했는데 다음번엔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전해보고자 한다. 지금 고민하고 계신 많은 분들과 앞으로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를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https://brunch.co.kr/@ndrew/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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